전 국민 AI도구 활용하면 경쟁력 있는 응용 아이디어 쏟아질 것

초고속 인터넷 빠른 채택 처럼 AI도 전 국민의 빠른 생활화가 무기

지난 18일 뉴스버스 창간4주년 경제포럼에서 흥미로운 논쟁이 벌어졌다. 인공지능 강국을 향한 미래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김시호 연세대 첨단융합공학부 교수와 김판건 미래과학기술지주 대표의 견해가 정면으로 부딪혔다.

김 교수는 “AI 인재 10만 명을 양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 대표는 “요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이 대규모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서 10만 양병설은 오히려 과잉”이라고 반박했다. 커서(Cursor)AI 같은 유명 인공지능 회사들의 인력이 100명 내외인 점을 들어 “양보다 질, 김연아나 손흥민 같은 핵심 인재를 기르는 선택과 집중 전략”을 강조했다.

이에 김 교수는 “1명의 손흥민을 키우려면 많은 수가 그 분야에 있어야 가능하다”며 “핵심인재 하나가 따로 키워지지 않는다. 그 많은 수 중 1명이 손흥민이 되는 것”이라고 맞받았다.

방청석에서 지켜본 이 공개 토론은 매우 흥미로웠다. 이론적 논의가 공개적으로 건전하고 합리적으로 오가는 과정이 참신하고 자극적이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서로 다른 입장이 부딪히는 듯했지만, 사실은 이견이라기보다 다른 각도에서 같은 지점을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의 목소리는 하나로 수렴됐다.

지금 한국의 인재 양성의 절박한 기로에 서 있다는 것, 그리고 인재의 양과 질을 떠나 한국에는 기초과학 투자와, AI 시대에 오히려 더 중요해진 인성·철학 교육이 미래를 이끄는 뿌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 교육 방식이 근본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인식을 같이 했다. 두 사람 다 기술을 다루는 것은 사람이고, 인간에 대한 고민과 철학을 가진 사람이 인공지능 시대를 잘 설계하고 만들어 나갈 것이라는 게 공통된 토대였다.

이 글에 맞춰 챗GPT가 그려준 삽화. (자료=뉴스버스)
이 글에 맞춰 챗GPT가 그려준 삽화. (자료=뉴스버스)

다음은 이 논의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중국의 AI기술이 어느 정도인 줄 안다면 지금은 AI기술에서 거의 ‘임진왜란’ 상황이다. 지난 3년여 동안 벌어진 격차를 하루라도 빨리 돈, 인원, SCM(공급망 관리) 관점에서 끌어올려야 하는 것이 한국 경제의 시대적 과제다. 향후 3년 정도가 ‘골든타임’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김시호 교수의 ‘10만 양병설’은 그 관점에서 최소 단위 투입 규모를 인원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이순신 없는 10만명은 의미가 없을 수 있다. 거북선을 앞세운 조선 수군의 최대 전력을 갖고도 원균은 칠천량에서 조선 수군 최대 패전을 당했다. 이순신이 아닌 원균이 10만 명을 이끈다면? 

그래서 물적 기반의 투입과 함께 이순신, 손흥민, 김연아 같은 핵심 포스트를 어떻게 확보하느냐가 단기적으로는 중요하다. 김판건 대표의 포스트 전략도 유효한 이야기다.

하지만 3년 내지 5년이 골든타임이라면 ‘초단기 전략’이 우선되어야 한다. 10만 양병을 위해선 대학을 통한 인재 배출 등이 필요하지만, 대학 4년이라는 시간을 감안하면 갓 훈련소를 퇴소한 신병으로 전쟁을 치러야 하는 상황이다. 임진왜란에 빗대어 정리하면, 왜군은 이미 부산에 상륙하여 충청도까지 올라온 상황이다. 의병, 승병, 정규군 등을 총망라하여 동원해야 하고, 명나라에서 명군도 데려와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다.

국내 AI인력 양산을 위해 현재 각 기업별, 지자체별, 단체별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는 교육과 지원을 통합·조정할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지 않을까? 최근 2조원 이상 투자 이야기가 들리는데, 그것은 필요한 인프라 중 ‘돈’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렇다면 ‘인원’ 부분에 대한 모든 개별 리소스의 통합과 재분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금은 양도 질도 모두 쫓아야 하는 시기다. 조선 후기 성호 이익은 외세의 위협 앞에서 “10만 병사를 길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전체 장정의 2~3%에 해당하는 숫자였다. 경제, 농업, 병참까지 전 국가적 재편이 필요했던 이 구상은 숫자를 넘어선 선언이자 결의였다. 오늘날 AI 인재 10만 양병설도 그 정신과 닮아 있다. 국가 전략 전체를 그쪽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 세계 모든 국가가 AI에 올인하는 시대다. 자본과 인프라에서 우리가 열세임은 자명하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사람뿐이다. 그러니 더 치열하게, 더 깊이 양성해야 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전 국민이 일상에서 AI를 활용하기 시작해야 한다. 기술, 엔지니어, 인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은 우리의 강점이다. 바로 '국민의 집중력과 빠른 적응력'이다.

초고속 인터넷 시대, 전 국민의 빠른 통신망 구축과 무선통신 확산을 통해 우리가 인터넷 선도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국민들의 신속한 채택과 활용, 그에 기반한 응용서비스 출시 때문이었다.

요즘 우리나라 화장품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콜마 같은 기술 기반 ODM 업체가 스킨케어의 기반을 만들고, 수많은 작은 브랜드들이 그 위에 자기만의 색깔과 마케팅, 감각과 이야기를 덧입혔다. 내로라 하는 화장품 대기업보다 오히려 작은 브랜드들이 전 세계 소비자의 마음을 먼저 움직이고 있다. 다양한 아이디어로 말이다.

AI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다. 인재 양성, GPU 수급 등 대기업과 국가가 할 역할이 있지만, 그 위에 올라가는 응용은 수많은 일상과 직업, 사용자의 필요에 의해 비롯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은 AI 모델의 속도를 3배로 높이고 있고, 중국은 논문 수와 특허에서 세계 최상위권을 달린다. 우리가 그 경쟁에서 뒤처져 있는 건 확실하다. 그래서 '전 국민 5000만 AI 활용'을 드라이브 해야 한다. 

우리의 무기는 그 어느 나라보다 빠른 국민들이다. 새로운 도구를 누구보다 빠르게 생활화하고, 그 안에서 기회를 만들어온 나라다. 정부가 인재를 키운다면, 국민은 일상에서 그것을 활용해야 한다. 학자와 엔지니어만이 아니라 엄마와 교사, 직장인과 배달원, 학생과 예술가가 모두 AI를 도구로 쓰기 시작할 때, 비로소 우리는 다른 나라보다 더 빠르게 응용 아이디어를 쌓아올릴 수 있다.

AI는 결국 사람이 한다. 사람이 많아야 그중에 한 명의 김연아, 한 명의 이순신이 나온다. 그리고 우리가 AI를 얼마나 잘 쓰느냐가, 우리가 AI를 얼마나 잘 키우느냐를 결정할 것이다. 그러니 ‘10만 양병설’을 넘어 당장 ‘5000만 활용설’을 내세우고 기업 국가는 인프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김희연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 시대 기업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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