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정당 권력은 극우 개신교로 이동했다
윤어게인은 국민의힘을 어떻게 망가뜨렸는가
윤석열이 12·3 내란을 일으킨 지 만으로 1년이 다가오고 있다. 2024년 12월 3일 야밤에 선포된 불법적이고 시대착오적인 비상계엄은 의도의 흉포함과 실행의 졸렬함이 극적으로 대비되며 윤석열 정권의 조기 몰락으로 귀결되었다. 윤석열이 덜 포악하거나 혹은 더 치밀한 성격이었다면 우리는 지금 윤석열 정권에서 맞이하는 네 번째 겨울을 앞두고 있었을지 모른다.
의도의 사악함과 실행의 미숙함 사이에 빚어지는 불협화음은 내란수괴 윤석열과 배우자인 김건희가 차례로 영어의 몸이 되었음에도 국민의힘 안에서 여전히 시끄럽게 울려 퍼지고 있다. 당대표 장동혁과 최고위원 김민수가 표현에 약간의 차이만 있을 뿐, 윤석열의 비상계엄은 정당했다고 끈질기게 강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장동혁과 김민수 콤비가 윤석열을 구하겠답시고 열심히 뛰어다니면 뛰어다닐수록 윤석열은 물론이고 국민의힘 또한 되레 더욱더 깊고 어두운 구렁텅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괴이하고 흥미로운 부분이 하나 발견된다. 소위 ‘윤어게인’ 소동 내지 운동과 관련하여 당의 공식적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장동혁이 아니라 선출직 최고위원들 가운데 한 명일 뿐인 김민수가 실질적 주도권을 행사하고 있는듯 싶은 상황이다. 장동혁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이른바 얼굴마담일 따름이지, 대한민국 제1야당의 당권이 김민수에게 시나브로 사실상 조용히 넘어간 형국이라 하겠다.
국민의힘은 올해 8월에 치러진 제6차 전국당원대회에서 윤석열-김건희 부부와의 과감한 절연을 시도하기는커녕 최소한의 안전거리를 유지하는 데조차 실패했다. 윤석열을 면회하겠다고 장담해온 장동혁이 극우 유튜버들의 집단적 지원에 힘입어 당대표에 선출됐다. 계엄과 탄핵에 대한 명징한 사과를 주장한 인물들은 전한길 같은 윤석열 사수대의 조직적 방해로 말미암아 정상적인 선거운동이 아예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압권은 김민수의 최고위원 당선이었다. 김민수가 전당대회 이전부터 보수 개신교를 드러내놓고 정치판에 끌어들였다. 당 지도부에 진입한 김민수는 손현보 부산 세계로교회 목사를 하나님이 보낸 선지자라고 공공연히 추켜올리며 개신교도들이 일제히 일어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는 위험천만한 선동마저 서슴지 않았다. 김민수의 아찔하기 짝이 없는 정치적 불장난은 87년 체제가 들어선 이래 주요 정당 소속 고위당직자로서는 최초로 정교분리의 헌법 원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전직 대통령 박근혜가 최서원, 곧 최순실씨 일행의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되어 탄핵당했을 당시에도 보수세력은 격렬히 반발했다. 그러나 박근혜 탄핵 반대 진영에서 김민수 부류의 극단주의 개신교도들은 주변적 위치와 보조적 역할에만 머물렀다. 영남 출신의 장노년층 유권자들이 박근혜 탄핵 반대 진영의 주축이었다.
윤어게인 세력과 박근혜 탄핵 반대 진영의 중요하고 본질적인 차별성은 극우 개신교회가 주변에서 중심으로, 조력자에서 주동자로 치고 올라온 일에서 비롯되었다. 이를테면 전광훈 전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는 비즈니스적 관점 즉 순전히 장삿속으로 박근혜 탄핵 운동에 가담한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윤어게인 세력은 한국을 완전한 신정 국가로 만들겠다는 확고부동한 신념 아래 21세기판 십자군 전쟁에 부나방처럼 뛰어든 양상이다.
교회가 길러낸 ‘윤어게인’의 청년들
윤석열은 어느 순간부터 청년을 입에 살고 있다. 윤어게인 세력 역시 수시로 청년들을 들먹인다. 그들은 자신들이 청년들과 함께하고 있다는 증거로 집회 전면에 청년들을 내세워왔다. 박근혜 탄핵 반대 시위에서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청년들을 대체 누가 어디에서 동원하고 있다는 말인가?
필자는 극우 개신교회를 청년 공급처로 지목하고 싶다. 윤어게인을 부르짖는 청년들은 입시와 취업, 연애와 결혼이 일차적 관심사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보통의 평범한 청년들이 아니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 손에 이끌려 보수 성향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의 군병’을 자처하게 된 특이하다면 특이하고, 비범하다면 비범하며, 이례적이라면 이례적인 젊은 남녀들이다.
이들은 정치와 종교의 분리 같은 근대적 정치개념 대신 하나님의 말씀이야말로 헌법 중의 헌법이라 믿는 중세적 세계관에 줄곧 노출돼왔다. 이들에게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만장일치로 파면한 헌법재판소의 판결보다는 윤석열이 머잖아 부활한 것이라는 극우 목회자의 맹신적 절규가 훨씬 더 거룩하고 권위 있게 받아들여지는 까닭이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은 국민의힘에 대한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를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미안한 얘기겠으나 이는 부질없는 노릇이다. 왜냐? 당대표 장동혁은 입헌군주제 국가의 군주처럼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고, 실제로는 최고위원 김민수가 당무 전반에 관한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구도인 작금의 국민의힘은 더는 통상적 의미의 정당이 아닌 탓이다. 국회를 예배당으로, 당사를 다락방으로, 장외집회를 심방으로 각각 용도변경해 사용하는 변종 극우 개신교회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의힘은 분당되어야 마땅하다. 관건은 분당의 기준이다. 박근혜 시절이었다면 영남과 수도권으로, 합리적 개혁보수와 강경 수구보수로, 구태들과 젊은 청년세대로 갈라지는 게 정답이었으리라. 윤석열과 김건희의 국민의힘 강점기는 이와 같은 기존의 정치 문법을 철저히 파괴했다. 이제 국민의힘은 장동혁과 김민수처럼 종교를 위해 정치를 하는 무리와, 한동훈과 김재섭 같이 정치를 위해 정치를 하는 사람들로 미련 없이 나뉘어야 옳다. 정교분리 원칙의 재확인이야말로 한국의 보수정당을 재건하는 첫걸임을 터이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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