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내란이 벌어진 지 1년이 다 되어가지만 주범인 윤석열과 김용현, 이상민 일당은 여전히 뻔뻔하게 합법 계엄을 주장하고 있다. 진실이 계속 드러나는 데도 온갖 법비(法匪) 행태로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 윤석열은 최근 비상계엄 선포 직후 “막상 해보면 별 것 아니다”라고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 또 경찰이 2차 체포영장 집행을 앞두고는 경호처 직원들을 향해 “체포영장은 불법”이라며 “나에 대한 지지율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설 명절까지만 잘 버틴다면 전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결국 계엄 선포는 그 자신의 정치적
국민의힘이 다시 사법부를 향해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재판 재개를 요구하고 나섰다. 장동혁 대표는 지난 5일 “이재명 대통령에 대한 5개의 재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이 지난 5월 유죄 취지를 실어 파기환송한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사건 재판을 재개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며 해당 재판부인 서울고등법원 판사 3명의 이름까지 거론했다. 이 대통령의 재판을 재개해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대선 때 유권자의 선택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과거사에 매여 한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제1야당의 정치력 부족이 딱하고 한심
지난 2022년 3월 치러진 20대 대선을 앞두고 진보 언론에서는 윤석열 후보의 부인 김건희씨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두고 고민이 있었다. 술집에서 일한 적이 있다는 의혹을 정면으로 파헤쳐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결국 직접적인 불법 행위가 없는 한 그것만으로 비판은 곤란하다는 의견이 우세해지면서 후보 부인의 과거에 대한 검증은 유야무야됐다. “쥴리면 어떠냐”는 주장이 진보 진영의 페미니즘 정서와 맞물린 셈이었다. 지금 시점에서 보면 명백한 오판이다. 최근 드러나고 있는 김건희의 온갖 비상식적인 언행과 국정 개입을 보노라면 입이 다물어지
추석 연휴가 막 시작된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체포했다. 지난해 한 유튜브 채널에 나가 “좌파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는 집단”이라고 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위반한 혐의를 적용했다. 6차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아 체포가 불가피했다는 이유도 밝혔다. 하지만 방통위원장 자동 면직 이틀만에 이뤄진 체포는 나흘만에 법원에 의해 원인 무효가 됐다. 이진숙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는 전사라도 된 양 수갑찬 두 손을 들어보이며 "전쟁이 시작됐다"고 외쳤다. 법원도 이진숙 체포의 적법성을 전면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로 위철환 변호사를 지명한 이후 보름이 지났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9일 위 후보자를 두고 “대한변협 최초의 직선제 회장을 역임한 30여년 경력의 법조인”이라고 소개한 뒤 “선거를 부정하는 무차별적인 음모론으로부터 민주적 절차를 보호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선관위를 만들어갈 적임자”라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위 지명자를 보내 선관위를 음모론자들로부터 지키고 기관의 신뢰도도 높인다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위 지명자는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연수원 18기 동기인 데다 경기도 변협회
검찰개혁에 대한 이재명 대통령의 견해는 놀랍도록 냉철했다. 이 대통령은 11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수사와 기소 분리 방침을 명확히 한 뒤 “감정을 완전히 배제하고, 논리적이고 치밀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검찰청 폐지 등 정부조직법 개정 시행을 논의하려면 1년도 짧지만 그 안에 해내야 한다”고 했다. 검찰의 보완수사권 유지 여부에 대해서는 “구더기 무섭다고 장독을 없애면 되겠느냐”며 보완수사를 허용할 뜻을 비쳤다. 정부가 입법을 주도할 것이라면서 사회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인만큼 “전문가, 여당·야당,
계엄과 탄핵 후 국민의힘을 이끌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가 22일 열렸다. 결국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반대파(반탄파)인 김문수·장동혁 후보가 결선에 진출했다. 누가 당선돼든 유력정당에서 극우 지도자가 최초로 당의 키를 쥐는 초유의 순간을 맞게 됐다. 최고위원을 뽑는 선거에서도 신동욱과 김민수, 김재원 등 반탄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한국 보수정당의 종언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번 전당대회의 특징은 민심과 당심이 극심한 괴리를 보였다는 점이다. 당원 선거인단 투표(80%)와 일반 국민 여론조사(20%)를 반영해 당 대
지난 4일 밤, 국민의힘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방송법 개정안 통과를 막는다며 무제한 토론을 하는 장면을 보았다. 처음 발언자로 나선 신동욱 의원은 “허접하기 짝이 없는 법안을 갖고 언론을 수중에 넣으려고 하고 있다”며 “언론 개혁, 방송 개혁이라고 하지 말고 민주당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 민주노총 방송 만들기 프로젝트라고 불러달라”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갓 정치에 입문한 앵커 출신 의원이 저렇게 망가졌나 하는 비애감이 들었다. 이번 방송법 개정안은 1987년 이후 방송민주화 투쟁에서 나온 핵심 주장, 곧 정권이 공영
기자로서 역사적인 현장에 있다고 느낀 경우가 몇번 있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4년 12월, 국방부 출입기자로 한국군이 미군으로부터 평시작전권을 환수하는 장면을 경험한 것도 그 중 하나다. 당시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이었던 최돈걸 육군 소장이 흥분한 목소리로 내용을 발표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지금껏 우리 군 장성들은 부대 이동 훈련 하나조차 스스로 하지 못했다”면서 “이제 평작권 환수로 그것이 가능해졌다”고 감개무량해 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잘 준비해서 전시작전권도 가져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30년이 더
공직자의 도덕성 검증을 거론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후 이틀만에 자신의 재산을 전격 공개한 후 이어진 공직자 재산 등록 및 공개이다. 당시 나는 경찰청에 출입하고 있었는데, 경무관 이상 고위 경찰관들이 불투명한 재산 형성 때문에 줄줄이 옷을 벗었다. 언론에 이름이 4번까지만 거론되면 살고, 5번 등장하면 낙마한다고 해서 ‘4당5락’이라는 말도 있었다. 의혹을 해명하겠다며 기자를 붙들고 하소연하던 간부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래도 김영삼은 단호했다. 관선 서울특별시장 김상철은 그린벨트를
윤석열 내란의 전모를 밝힐 특검 수사가 첫 단계에서 법원에 의해 제동이 걸렸다. 조은석 내란 특검이 윤석열에 대해 특수공무집행 방해 등 혐의로 청구한 체포영장을 법원이 25일 기각한 것이다. 그러자 윤석열과 그 변호인들은 기다렸다는 듯 특검을 향해 “검찰청 지하를 통해 비공개로 나가게 해주면 출석하겠다”고 했다. 말로는 “수사에 당당히 응하겠다”고 하면서 실제론 온갖 꼼수를 동원해 수사를 회피하고 있는 것이다. 희대의 망발에 시민들의 억장이 무너지고 있다. 특검이 윤석열을 향해 체포영장을 청구한 사유는 두 가지다. 첫번째는 지난 1
세상은 온통 이재명 정부의 향배에 관심을 두지만, 나는 국민의힘을 주목한다. 대한민국이 진짜 잘 되려면 국민의힘이 달라져야 한다고 믿는다. 한 사회는 보수와 진보 양 날개로 난다는 말이 아니라도, 지금보다 건강한 보수당이 절실한 때는 없었다. 정상적이라면 이런 말은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대선에서 진 당이 쇄신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일이 국민의힘에서는 통하지 않고 있다. 처절하게 변해야 다음 집권을 도모할 수 있다는 상식이 국민의힘에서는 실종돼 있다.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이 제안한 5개 혁신안은
죄를 지었다고 의심된다고 해서 무조건 인신을 구속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것이 시민의 권리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자율이 광범위하게 보장돼야 할 언론 영역에서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래도 이건 아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할 수 없다. 12.3 계엄 당일 선관위에서 ‘99명의 중국인 간첩단’이 체포됐다는 기사를 쓴 스카이데일리 소속 기자 허모 씨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말이다. 의도적인 허위 보도로 선거관리에 심대한 악영향을 미친 점에서 허씨는 법의 관용을 받아서는 안됐다. 그것이 정의에 부합했
단연코, 이렇게 웃기는 코미디 대선판은 없었다. 전당대회를 통해 선출된 김문수 후보와 당 지도부가 밀고 있는 한덕수 예비 후보를 놓고 단일화를 시도하는 국민의힘 얘기다. 김문수 후보는 단일화 담판장에 나온 한덕수를 향해 “남들이 다 경선을 치를 땐 밖에 있다, 왜 이제 나와 자리를 내놓으라고 하느냐”고 공박했다. 한덕수는 “22번 단일화를 외쳐놓고 왜 당장 단일화를 하지 못하느냐”고 김문수의 식언을 따지고 들었다. 실시간 생중계된 63분간의 대화는 두 사람의 욕심과 무논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단일화에 대한 마음이 달라진 김문수의
국방부를 출입하던 1990년대 중반, 당시 군 지휘부에는 5∙18 때 현장에 투입됐던 장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부장관이 된 육사 17기 김동진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20사단 61연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돼 시민군 진압 임무를 맡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그는 5∙18 가담자라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하나회 척결을 주도한 덕에 좌천은커녕 승승장구했다.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 척결이라는 과업을 과도하게 의식해 군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불편했다. 불의에 편승한 군인들을 처벌하지 않은 채 오
김대중 대통령 정부 시절인 2002년 6월 마늘파동이 불거졌을 때 한덕수 경제수석을 처음 봤다. 중국산 마늘의 수입으로 농민 피해가 크다며 농협이 과거 중국과 체결한 마늘 협상에 공개되지 않은 조항이 있다고 문제 제기를 했다. 협상 결과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출입기자들이 입장을 들으러 방으로 갔을 때 한 수석은 주저 없이 “(통상교섭본부장으로 협상을 주도했던) 내가 책임을 진다”고 말했다. 논란은 그것으로 일단락됐다. 대학 3학년 때 행정고시에 합격한 ‘소년 출세자’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깔끔하고 선명한 처신에 깊
미국의 제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은 1974년 8월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자진사임했지만, 그의 몰락은 이미 그 전에 배태되어 있었다. 닉슨은 1972년 재선을 위한 대선에서 역사상 유례가 드문 압승을 거뒀다. 무려 49개주에서 승리하며 득표율 60.7%를 올렸다. 그런데 그의 이런 압승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었다. 훗날 낱낱이 밝혀졌듯 닉슨 캠프는 온갖 편법과 더러운 정치 공작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그 한 사례였을 뿐이다. 그리고, 이런 불법을 주도한 것은 법률가 출신 참모들이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1969년
대검찰청이 지난 13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내란 사건 1심 재판부의 구속 취소 결정에 항고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전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법원을 대표하여 “저희(법원)는 즉시항고를 통해 상급심의 판단을 받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도 이를 무시했다. 그런데 구속기간을 계산할 때는 종전처럼 시간이 아니라 날짜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전국 검찰청에 지침을 내려보냈다. 이번 구속취소 사태의 출발점은 검찰이 공수처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윤석열 기소에 시간을 끈 것이다. 검찰의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런데도 전가의
헌법재판소는 27일 “대통령 아래 편제된 감사원이 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직무감찰을 한다면 선관위의 공정성, 중립성에 대한 국민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이 선관위를 상대로 강도높은 직무감찰을 벌인 것이 헌법 정신에 반한다는 것이다. 선관위가 감사원을 상대로 권한쟁의 심판 청구를 낸 지 1년 7개월만에 내려진 결정으로, 윤석열 정부 감사원의 막무가내 권한 행사를 바로잡았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감사원의 선관위 감찰은 처음부터 위법성이 뚜렷했다. 헌법은 감사원의 직무감찰 대상을 ‘행정기관 및
1995년 6월 치러진 제1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이래, 지난 30년 가까이 언론인으로서 선거관리위원회를 지켜봤다. 대략 출입기자로 10년, 데스크로 10년, 자문위원으로 10년 동안 관찰하면서 숱한 일들을 목격했다. 2002년 12월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노무현 민주당 후보에게 패배한 직후, 한나라당이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한 일이 먼저 떠오른다. 대선 직후 이 후보 지지모임인 ‘창사랑’이 “나는 17년차 국정원 중간 간부입니다”로 시작하는 정체불명의 글에 자극받아 당을 압박한 게 발단이었다. 중앙선관위는 “한나라당이 돈을 내면 재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