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공천, 대파, 도주대사, 회칼테러, 입틀막·구틀막, 의정갈등 등
4·10 총선의 결과가 나왔다. 여·야 모두 '심판'이라는 키워드를 이용해 유권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했지만, 윤석열 정부 3년차에 치뤄진 선거에서 국민들은 범야권에 192석을 몰아주면서 확실하게 '정권 심판' 손을 들어줬다.
선거 기간 동안 이슈로 떠올랐던 '키워드'를 살펴보면 '민심의 흐름'이 감지된다. 100여일간의 22대 국회의원 선거 국면을 키워드로 되짚어봤다.
'방탄공천'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총선 마지막 날까지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를 향해 '범죄자'라는 단어를 쓰면서 비난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부터 이 대표 등을 향해 사용했던 단어를 정치권으로 옮긴 뒤에도 여과없이 쓴 것. 한 위원장은 선거기간 동안 '이·조 심판'이라는 구호를 외쳤지만, 국민들은 오히려 '정권 심판'에 힘을 실었다.
김건희 여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연루 의혹 등 규명하는 내용이 담긴 '김건희 특검법' 국회 재의결 전까지 국민의힘 공천은 현역 불패였다. 특검법 재의결 과정에서 '이탈표'를 막기 위해 현역을 탈락시키지 않는 공천을 하자, '방탄 공천'이 회자되기 시작했다. 특검법이 부결된 뒤 국민의힘은 기다렸다는 듯 곧장 현역 의원들 컷오프에 나섰다.
875원 대파
"나도 시장을 많이 가봐서 그래도 (대파가)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이 든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을 방문해 대파 한단을 손에 들고 한 발언이다. 해당 매장은 윤 대통령 방문 일주일 전까지만해도 대파를 875원의 3배 넘는 가격에 팔았는데, 윤 대통령이 방문하는 날 할인을 했다.
윤 대통령이 "875원이면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발언한 직후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비판적인 발언들이 쏟아졌다. 지기 시작했고, 더불어민주당은 “대파 한 단에 9000원, 배추 한 포기에 5000원이 넘는다”며 “국민께서 느끼는 체감경기를 안다면 다른 나라보다 물가 상승률이 낮다는 소리는 못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윤 대통령의 발언을 두둔하는 국민의힘 총선 후보들의 발언으로 인해 대파 논란은 더욱 커졌다. 대표적으로 이수정 국민의힘 후보는 지난달 25일 "대파 한 봉지에 몇 뿌리가 있느냐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875원은 한 뿌리 얘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가, 논란이 커지자 다음날 자신의 SNS를 통해 대파 관련 영상을 올렸다가 지우기도 했다.
대파 논란은 결국 투표 당일까지 유권자들의 마음을 흔든 가장 큰 이슈가 됐다. 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도 이 이슈를 투표 당일까지 끌어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중앙선관위가 ‘대파’를 정치적 표현물로 간주해 투표소 반입을 제한한 일이 알려져 논란이 커졌다. 이에 유권자들은 본투표 당일까지 자신들의 SNS를 통해 대파를 썰어서 통에 담아 가지고 간 사진, 투표소 앞에 대파를 세워두고 투표를 하고 나오는 사진 등을 올리기도 했다.
'도주대사'와 '회칼 테러'
지난달 10일 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핵심 피의자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를 받던 이종섭 전 장관이 주호주대사로 임명돼 출국했다. 공수처가 수사를 위해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 해놨는데,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법무부가 바로 출국금지를 해제하고 이 전 장관이 도망치다시피 해외로 떠난 것.
이후 '도주대사' '런종섭'이라는 비판이 커지자 이 전 장관은 출국한지 일주일 만에 귀국했다. 방산협력 공관장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귀국했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도피성 출국'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 급조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나왔다. 회의 개최가 최종 확정된 시점은 이 대사의 귀국이 임박해서였다.
귀국 이후 이 전 장관은 공수처에 '조속한 수사'를 요청했지만, 이 전 장관 관련 논란은 계속 커졌고, 이 대사는 결국 주호주 대사직을 사퇴해야했다.
이 전 장관의 사의 표명은 '공수처 압박용'이라는 평가가 나왔지만, 총선에는 오히려 악영향을 끼쳤다.
특히 보수 언론과 여당이 민주당의 공천을 두고 키웠던 '비명횡사, 친명횡재' 논란은 도주대사 논란에 묻혔다. 이에 더해 지난달 14일 황상무 당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까지 ‘기자 회칼 테러’ 발언으로 뭇매를 맞았다. 이종섭·황상무 겹악재는 두 사람 모두 사퇴하면서 일단락됐으나, 유권자들에게 현 정권의 부정적 인상을 각인시키는 계기로 작용했다.
입틀막, 구틀막
윤석열 대통령이 찾은 행사에서 현역 국회의원, 카이스트 졸업생, 의사까지 입이 틀어막힌 채 사지가 들려 끌려 나갔다. 이들이 끌려나가는 모습은 영상으로도 공개가 됐는데, 대통령실은 이에 대해 명확한 사과를 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이에 페이스북 사용자들은 “윤석열은 카이스트 과잉 경호 국가폭력 사과하라”는 제목으로 윤 정권의 ‘입틀막(입을 틀어막음)’ 비판 글과 함께 스스로 자신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는 풍자 사진을 올리는 (입막고 사진 올리기) 릴레이 캠페인을 했다. '틀어막다'라는 용어는 윤 정권을 비판하는데 자주 등장했다. 선관위에서 대파를 정치적 표현이라고 제한한 것에 대해서는 '파틀막'이라고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총선을 앞두고 MBC 프로그램인 '복면가왕' 제작진은 방송 9주년을 맞아 '9'를 강조한 특집방송을 준비했으나, 조국혁신당의 기호와 같아 총선을 앞두고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 방송을 미뤘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구(9)틀막'이라며 “조국혁신당을 상징해서 (방송을) 그만둬야 한다면 KBS 9시 뉴스도 그만둬야 한다. KBS 9시 뉴스 초기화면 색깔은 조국혁신당의 색과 같다”고 했다.
의정갈등
정부의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방침으로 정부와 의사가 충돌하며 의료 공백이 장기화했다. 처음엔 정부의 증원 정책에 찬성하던 여론도 의사 파업이 장기화하면서 피로감을 느끼며 돌아섰다.
한 위원장은 “숫자에 매몰될 문제는 아니다”라며 대통령실에 전향적인 입장 전환을 요청했고, 윤 대통령은 지난 1일 의료계와 협상 여지를 열어두는 내용의 대국민 담화를 발표했다. 대국민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2,000명 인원을 못박으면서 역풍을 부채질했다.
의정갈등 초기 윤석열 정부의 시도는 긍정 여론이 80%에 달할 정도로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주던 국민 여론은 갈등 국면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서서히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의료 공백으로 인한 불편과 불안감이 확대됐지만 의료계와의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정부의 갈등 중재 능력에 대한 회의감도 커졌다.
오히려 총선이 다가올수록 정부가 실마리를 풀어내기보다 전공의에게 협상을 종용하는 듯한 모습까지 보이면서 여당 지지층 사이에서도 이반 현상이 일었다. 결국 40% 고지를 되찾았던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5주 내내 하락세를 보이며 30%대로 회귀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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