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주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운데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히는 정정‧반론 표시제와 열람차단 청구권은 언론중재위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신설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마련을 주도한 더불어민주당 미디어특위 관계자는 뉴스버스와 통화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가운데 언론중재위 의견을 반영한 게 몇 가지 있다”면서 “(언론중재위가) ①언론중재위원 수 증원 ②정정‧반론 표시제 ③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언론중재위 관계자도 “지난 6월 9일 민주당 미디어특위 간담회에 이석형 위원장이 참석해 기사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과 위원 정수 확대를 요구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포함된 세 조항 모두 언론중재위 권한을 크게 확대‧강화 할 수 있는 규정들이다. 특히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언론중재위의 숙원사업이었다.
하지만 기사 열람 차단은 언론의 보도 내용을 법원의 확정 판결 이전에 사실상 ‘삭제’하는 효과를 갖는 것이어서 언론중재위가 이 권한을 행사하게 될 경우 헌법에 위배될 소지가 농후하다. 언론중재위는 스스로는 ‘준사법 독립기구’임을 내세우고 있으나, 행정부 영향력 아래에 있는 정부기구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현행 임기3년의 중재위원 90명의 위촉 권한을 갖는 것도 문체부 장관이다.
언중위, 언론피해 구제강화 명분삼아 몸집 불리기‧권한 강화 시도?
현행 언론중재법에 따르면 언론중재위는 언론사에 정정‧반론‧추후 보도와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권한만 갖고 있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공포되면 언론사의 기사에 대한 일반 대중의 접근권을 차단할 수 있는 ‘권한’을 추가로 갖게 된다.
언론중재위는 ‘기사 삭제 청구권’ 도입을 위해 여야 가리지 않고 사전 정지 작업을 해왔다. 이번 개정안에 신설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기사 삭제 청구권 도입을 위한 사전 포석이자 대(對)국회 로비의 산물로 해석된다.
언론중재위는 2014년 11월 국제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기사 삭제권’의 법적 근거가 되는 ‘잊힐 권리(Right to be forgotten)’ 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인터넷 공간의 잘못된 기사와 새로운 피해 구제 방안’에 대한 정책 심포지엄을 열고 언론중재법상의 정정‧반론‧추후 보도 청구권에 ‘기사 삭제 청구권’을 추가할 수 있는지 여부를 논의했다.
2015년 6월에도 ‘기사 삭제 청구권과 잊힐 권리’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고, 같은 해 8월에는 언론중재위 정기세미나에서 언론중재법 적용 대상을 포털 기사의 댓글, 토론방, 카페, 블로그까지 확대하고 기사 삭제 청구권, 검색 차단 청구권 등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논의했다.
언론중재위는 2015년 10월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언론 피해 구제 제도: 언론중재법 개정안 쟁점과 해설’ 세미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발표했다. 해당 개정안에는 인격권을 침해하는 기사를 언론사의 서버까지 포함해 삭제‧수정 보완할 수 있는 권리를 언론중재법 제17조의 3에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언중위가 요구한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이번 개정안 제17조의 2로 신설됐다.
그러나 언론중재위의 ‘기사 삭제 청구권’ 법제화 주장은 학계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기사 삭제 청구권 도입은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고,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두 기본권의 가치를 비교형량해보더라도 인격권 보호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정도를 넘어서 ‘침해’할 위험이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때문인지 언론중재위는 ‘기사 삭제 청구권’에서 한발 물러나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을 이번 개정안에 포함시키도록 여당 측에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은 언뜻 보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보통신망법상의 ‘임시(블라인드)조치’와 유사한 제도로 보인다. 그러나 개정안 조항에는 ‘열람 차단 기한’이 규정돼 있지 않고, 열람 차단에 대한 복원절차 역시 명시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이름만 ‘열람 차단 청구권’일뿐 사실상 ‘기사 삭제 청구권’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행정부 영향력 아래 있는 언중위...법적 모태는 전두환 신군부의 ‘언론기본법’
1981년 만들어져 40년 동안 존립해 온 언론중재위원회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아 볼수 없는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기구다. 독일, 일본, 프랑스 등 상당수 국가들은 언론 보도 관련 분쟁을 사법부가 처리하도록 정하고 있다.
학계 일각에서는 우리 나라 언중위의 역할과 언론중재제도에 대해 긍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지만, 언론 자유를 폭넓게 보장한 선진국 들은 물론이고 전세계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의 언론중재제도를 모방하여 도입한 사례는 없다. 우리의 언론중재제도가 바람직한 모델이 아니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언론중재위원회의 법적 모태는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5공화국 시절 만들어낸 언론기본법이다. 군사독재 정권이 언론통폐합 등 폭압적 방법만으로 언론을 통제하기 어려워지자, 반론보도 등을 수월하게 이끌어내기 위해 만든 법이라는 게 학계의 해석이다.
언론의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할 정부가 언론중재위를 통해 반론청구권을 빈번하게 행사해 온 다수의 통계자료를 통해서도 언중위가 국가기관의 반론권 등을 과보호 해왔다는 사실은 입증된다.
언론중재위는 정정‧반론‧추후보도 청구에 대해 관행적으로 청구 기각을 하지 않는다. 정부기관이기 때문에 ‘조정’ 실적을 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또 조정 불성립시 자동적으로 소송으로 이어지도록 절차를 두고 있고, 중재부장의 직권조정, 반론수용거부가 있을 경우 반론보도문의 분량 최소화 및 표현완화 등을 중재 조건 등으로 제시해 조정 성립을 유도하는 행태를 보여 왔다.
이 때문에 정부기구인 언론중재위가 기사 열람 차단 청구에 대한 판단 내지는 조정 권한을 갖는 것만으로도 언론 자유 침해 가능성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언론중재위는 준사법적 기관임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언론규제 기관이다. 결국 기사 열람 차단 청구권 신설 요구 등은 규제 기관이 자신의 규제 권한 확대를 꾀한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볼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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