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신문 정정보도 청구만으로도 '정정보도 요청' 게시 강제는 대표적 독소조항
법안 곳곳 모호한 표현과 자의적 해석 가능성...헌법 위배 소지 커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정 소위원장이 27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차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박정 소위원장이 27일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스1)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를 통과했다. 여야 간 6시간에 걸친 대립 끝에 결국 소위 위원 6명 중 4명(민주당 3‧열린민주당 1)이 찬성해 소위 문턱을 넘어섰다.

인터넷 신문사업자와 非 인터넷 신문사업자를 다르게 취급해 인터넷 신문사업자의 경우 정정보도 청구만으로도 그 ‘즉시’ 보도된 기사에 정정보도 청구 요청이 있음을 ‘게시’하도록 강제하는 규정은 대표적 독소조항으로 꼽힌다. 

1. 모호한 용어로 과도한 규제...헌법상 명확성 원칙 위배

우리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물론 미국의 연방대법원 등 세계 각국의 법원들은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자의적 해석의 여지없이 ‘명확’해야 한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내용이 불명확하거나 적용 대상 범위가 포괄적이고 광범위할 경우 헌법적 보호를 받아야 하는 표현까지 과도한 규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과도한 규제로 자유로운 표현활동이 심각하게 위축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법조항은 누구나 예측 가능해야 하며 국가기관이 자의적으로 적용할 수 없도록 명확해야 한다는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배될 소지가 높다는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해당 법안은 허위‧조작 보도를 ‘징벌’하는 맥락에서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도록 정하고 있는데, 허위와 조작의 범위, 판단 주체, 판단 시점을 명확하게 하고 있지 않을뿐더러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적용대상이 되는 ‘언론보도의 범위’ 조차 모호하다.

법안은 또 고위공직자나 공직후보자 등에 대해서는 “악의를 가지고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에 한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한다”는 단서규정을 달고 있으나 ‘악의적’이라는 단어가 자의적으로 해석될 소지가 많다.

이번 개정안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악의적’의 해석을 명확히 하기 위한 시도로 4가지 상황을 규정하고 있다. 이 가운데 하나가 <‘보복성’ 허위‧조작 보도>다. ‘악의성’의 자의적 해석을 피하려는 차원에서 ‘보복성’으로 범위를 줄인 듯하지만, ‘보복성’ 역시 자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크다는 게 법률가들의 지적이다.

법안의 핵심 조항이 명확성 원칙을 결여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헌재의 위헌심사를 받게 될 경우 ‘명확성 원칙’ 위배로 위헌 판단을 받을 개연성이 높다. 설령 헌재의 위헌심사를 어렵게 통과한다고 해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법률이라는 점 때문에 법원이 ‘악의적’ ‘보복성’ 등을 엄격하게 해석‧적용할 경우 해당 조항을 통한 징벌적 손해배상 실현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분석된다.

2. ‘고의‧중과실’은 법원 판단 영역...법조항 규제는 ‘언론 자유에 대한 테러’

이번 개정안의 최고 독소조항으로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을 꼽을 수 있다. 개정안은 법조항에 ‘고의‧중과실’을 범했다고 추정하는 ‘6가지’ 경우를 나열하고 있다. 고의‧중과실이 추정되면 손해액의 5배에 해당하는 금액을 배상해야 한다.

언론보도의 고의‧중과실 여부는 법원이 개별 사건에서 여러 사정을 따져 판단하는 법원의 영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런데 이번 개정안에는 사실상 ‘고의‧중과실’로 ‘간주’하는 내용들이 열거돼 있고, 이에 해당하면 징벌적 손해배상 명령 대상이 된다.

이 때문에 언론규제법 조항에 고의‧중과실 추정을 확정적이고 명시적으로 규정한 것은 언론 자유에 대한 ‘테러’와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양홍석 법무법인 이공 변호사는 “법률에 고의, 중과실 추정 규정을 둘 수는 있겠지만 이는 사회적으로 불법성이 분명하거나 사회적 위해가 명확한 사안의 경우에나 간혹 인정된다”며 “언론의 보도에 대한 고의, 중과실 추정 규정을 언론규제법에 뒀다는 것은 언론의 기능과 역할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비판했다.

또 ‘고의‧중과실’로 추정되도록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 불명확하고, 자의적 해석 여지가 다분한 내용들이어서 기본권인 언론 자유에 대한 제한을 넘어 ‘침해’에 이른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례로 해당 조항 가운데 제목이나 사진 등으로 ‘왜곡’을 했을 경우 고의, 중과실을 추정토록 하고 있는데, 문제는 ‘왜곡’의 개념이 불명확하고, 자의적 해석이 개입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데 있다.

3. 징벌적 손해배상이 추구하는 ‘징벌’, 이미 형법에서 규정 

실시간으로 뉴스를 생산하는 언론사에게 중과실을 이유로 징벌적 민사책임을 부과하는 법률은 필연적으로 언론자유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형법과 정보통신망법 등에 이미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추구하는 ‘징벌’을 형벌로 정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헌법재판소는 지난 2월 25일 형법상 ‘사실적시 명예훼손죄’와 ‘허위사실적시 명예훼손죄’는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또 지난 3월 25일 정보통신망법 상 명예훼손 조항도 합헌으로 판단했고, 지난 4월 29일에는 정보통신망법 상 사이버명예훼손죄를 재판관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합헌 선언했다. 개정 언론중재법안이 추구하는 ‘징벌’의 효과를 기존 형법 등으로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형식적’ 입법목적은 인격권 침해에 따른 고통에 대한 적절한 배상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피해자의 피해를 보상하기 위한 제도라기보다, 불법행위를 한 가해자에 대한 형벌, 제재 그리고 법 강제를 목적으로 하는 제도로 영미법상의 제도다. 영미법에는 언론 보도 등에 따른 인격권 침해 사례에 민사 책임만 부과할 뿐, 형사적 책임은 지우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에 대한 민사적 책임을 ‘징벌’ 수준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이미 표현의 자유에 대한 책임을 형사벌로 묻는 장치가 촘촘히 마련돼 있다. 그렇다면 우리 법체계와 상응하지 않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섣불리 도입하기 보다는, 법원의 손해배상액 산정 현실화 등을 통해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는 방안이 훨씬 바람직하다는 게 법조계 시각이다.  

그럼에도 개정 법안은 입법목적 달성 효과보다 언론 위축효과가 더 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언론계가 ‘언론 재갈법’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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