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언론 징벌적 손배제, '反봉쇄소송‧逆봉쇄소송법' 등 보완 제도 갖추고 있어
민주당이 추진중인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제30조의 2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이다.
법원이 재판을 통해 언론 보도에 고의‧중과실이 있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법이 열거한 조항에 해당할 경우 무조건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해 손해배상을 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대 5배의 손해배상이 가능하게 한 조항이 논란이 되는 이유 역시, 액수의 문제 보다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도록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엔 ‘고의 중과실’을 법원이 판단했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제소당한 언론사가 고의‧중과실이 없음을 입증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는 것이다.
언론 보도로 피해를 당한 국민이 있다면 당연히 그 피해를 구제해야 한다는 점에서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 구제를 강화하자는 취지에는 반대할 명분이 없다.
그럼에도 국내 기자들뿐만 아니라 국경 없는 기자회 등 외신기자들까지 이번 개정안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나선 데는 불보듯 뻔한 ‘전략적 봉쇄소송’의 (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 남발 가능성과 이로 인한 언론 기능의 위축을 우려해서다.
전략적 봉쇄소송은 언론을 침묵시키거나 비판에 제동을 걸 목적에서 언론사 등에 큰 법적 비용 부담을 유발하는 거액의 소송을 전략적으로 제기하는 것을 말한다. 거액 소송에 대응해야 하는 언론사나 기자들 입장에선 유무형의 압박을 받게 되고 당연히 위축될 수 밖에 없다.
외신들까지 반발하자 언론중재법 개정을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27일 ‘외신기자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외신들이 당장 문제 삼은 부분 역시 ‘전략적 봉쇄소송’ 가능성과, 소송의 오‧남용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앞서 민주당 및 민주당 관계자들은 수차례 외국 사례를 언급하며 언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전 세계적 추세인 것처럼 선전했다. 그러나 핵심은 뺀 채 외국 사례를 호도했다.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성격의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국가들은 언론의 자유가 위축될 것을 우려해 ‘봉쇄소송’에 맞설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는 점이다.
美, 언론 입막음소송 확인되면 제소자에게 언론측 소송‧변호사비 물려
민주당 관계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 정당성의 근거로 내세운 국가는 미국이다. 우리와 달리 기본권의 지위에 차등을 두고, 표현의 자유를 제1의 기본권으로 인정하고 있는 미국도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는 게 민주당의 논거였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악용한 ‘봉쇄소송’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반 봉쇄소송법(Anti-SLAPP)’과 ‘역 봉쇄소송법(SLAPP-Back)’ 제도를 마련해 두고 있다.
반 봉쇄소송법은 피소된 언론등이 심리적‧재정적 압박으로 인한 취재‧보도 활동의 위축을 막기 위해 ‘속전속결’ 방식을 취하고 있다. 소송을 제기한 내용이 언론의 비판 봉쇄를 위한 목적으로 확인되면 소송 초기에 신속하게 소(訴)를 각하(special motion to dismiss)할 수 있는 절차가 마련돼 있는 것이다.
미국은 개별 주(州)가 주법(州法)을 각각 만들어 법률의 양태가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미국 전체 50개 주 가운데 반 봉쇄소송법을 시행 중인 곳은 32개 주에 달한다. 미국의 대표적인 반 봉쇄소송법은 뉴욕 주법이다. 뉴욕 주가 1993년 반 봉쇄소송법을 도입한 이후 반 봉쇄소송법을 도입한 대다수 주가 뉴욕 주 모델을 따르고 있다.
뉴욕 주의 반 봉쇄법은 ▲봉쇄소송 초기에 피소된 언론 등에서 각하 신청을 할 수 있도록 하고 ▲피소자의 신청이 있을 경우 빠른 시간 내에 심문절차를 진행해 ▲법원이 신속한 결정을 하도록 함으로써, 피소자가 큰 심리적‧재정적 부담 없이 소송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봉쇄소송의 목적이 피소되는 사람에게 방어를 위한 변호사 비용 지출 등 재정적 부담을 주는 것이라는 점에 착안해 법원이 봉쇄소송이라고 인정하면, 소송을 낸 측에서 피소자(target)에게 금전적 배상까지 하도록 정하고 있다. 미국 내 언론법 전문가들은 물론 국내 학자들도 뉴욕 주의 반 봉쇄법이 피소된 언론사등의 경제적 부담을 완화하고, 제소자(filer)의 보복적 소송을 저지하는 효과가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반 봉쇄소송법은 캐나다 온타리오 주도 마련해 두고 있다. 온타리오 주는 2015년 ‘공공참여보호법’을 제정하고, 봉쇄소송을 당한 피고는 소장을 받은 후 언제라도 원고의 청구를 각하해달라는 요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주는 비판과 견제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권력이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와 봉쇄소송 제도를 오‧남용 하는 것을 원천 금지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워싱턴주법은 국가기관에 대한 보도에 대해서는 민사책임을 면제하는 규정을 명시하고 있다.
미, ‘입막음 소송’ 낸 제소자에 역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
법원이 입막음 소송이라는 점을 인정해 ‘각하’ 했을 경우,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낸 측에 역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을 하도록 정한 ‘역 봉쇄소송(SLAPP Back)법’을 도입한 주(州)도 있다.
미국 네바다주와 하와이주는 봉쇄소송을 당한 사람이 소를 제기한 사람을 상대로 반소(反訴)를 제기해 금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고 있다. 이 경우 봉쇄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sanction)’을 해야 한다.
민주당 추진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언론 기능만 위축시키는 반쪽 자리
민주당이 주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격권’과 ‘언론의 자유’라는 두 기본권의 균형을 무너뜨렸다는 점이다.
한국 언론법학회는 지난 5일 학회 차원의 긴급 토론회를 열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추진하는 민주당이 개인의 프라이버시, 초상권, 음성권, 명예 등을 강하게 보호하겠다는 취지만 앞세워 언론 자유와 언론의 기능을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은 몰각했다고 지적했다. 숙의과정조차 없이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권력 감시와 비판을 통해 ‘공공의 참여’를 이끄는 언론의 역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조항을 일방적으로 제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개정안의 외관상 입법 목적은 언론피해구제 강화다. 뉴스의 전파력이 큰 디지털 시대에 언론 피해 구제를 강화하겠다는 입법 목적이야 충분히 수긍할 수 있지만, 언론을 위축시키지 않으려면 피해 구제 강화와 동시에 언론의 기능 훼손을 방지하는 입법을 하는 것이 타당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상정이 30일로 미뤄지긴했지만, 민주당의 강행방침은 아직 변함이 없다. 개정안에 반대하는 국민의힘은 본회의 통과를 저지하기 위한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예고한 상태다. 하지만 과거 우리 국회의 필리버스터 사례를 보면, 개정안 수정보다는 법안 통과 ‘시간 끌기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170석을 보유한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경우, 최소한 개정안에 담긴 독소조항의 폐해를 막기위해서라도 ‘보완 입법’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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