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보스의 장담 “한국 세관은 매수됐다”

누가 세관을 멈춰세웠나…권력의 그림자 위에 선 진실은?

세관 마약 사건을 수사했던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경정)은 ‘세관 수사’를 막은 외압의 정점으로 당시 대통령실과 윤석열·김건희 권력을 지목한다. 백 경정은 ‘수사 외압’ 의혹에서 더 나아가 김건희 일가를 말레이시아와 연계된 국내 마약 사업의 배후라고까지 주장한다. 중간에 채워져야 할 팩트들이 부족한 상태에서 곧장 ‘윤석열·김건희 배후설’이 나오다보니 아직 대중적 설득력을 얻거나 수사 단계로 이어지진 못하고 있다. 하지만 ‘윤석열·김건희 권력’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정황들로 볼 때 백 경정의 주장은 거칠긴 하지만 ‘합리적 의심’의 영역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약 밀반입 정보를 고의 패싱하거나 세관 연루 수사를 막기 위해 움직인 경찰 검찰 관세청 국정원 등 관할이 다른 여러 기관에 힘을 미칠 수 있는 곳은 대통령실과 윤석열을 빼곤 설명되지 않는다. 

마약을 몸에 칭칭감고 들어오는 마약 조직원을 세관원이 안내해 통관시키는 건 마약 카르텔이 판치는 ‘남미’에서나 볼 법한 일이다. 인천국제공항에서 백주대낮에 이런 일이 벌어졌는데도 아직 제대로 수사 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실체 규명을 위해 취재와 백 경정과의 인터뷰 등을 토대로 당시 어떤 경로로 수백kg이 밀반입됐는지,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몇 차례로 나눠 시리즈로 재구성했다. 팩트를 근간으로 하되 상황은 상상적 묘사가 가미됐다.
/ 편집인 주 

① [마약게이트]1화 - 필로폰을 두른 말레이시아발 6명의 인간화물
② 마약게이트 2화- '일제검역' 어기고 마약24kg 프리패스 시킨 세관

믿는 구석이 있었던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의 보스

2023년 1월 27일 아침 7시 33분. 불그스레 새벽 빛이 감도는 인천국제공항 활주로위로 쿠알라룸푸르발 KE672편이 매서운 칼바람을 뚫고 천천히 내려 앉고 있었다. 승객들은 졸린 눈으로 창밖을 내다보거나, 입국 카드를 채우며 서둘러 짐을 챙긴다. 이 가운데는 서로를 모른 척 흩어져 앉아 있는 낯선 그림자 여섯 명이 섞여 있었다. 캐린스, 위나, 리고화, 양초우웨이, 유팅비, 로우젠하오.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앉아 있는 캐린스는 연신 눈살을 찌푸린다. 한참 전부터 허벅지를 감고 있는 테이프가 살을 파고들어 욱신거렸다.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와 몇 줄 떨어진 곳엔 있던 위나는 두 손으로 무릎을 움켜쥔 채 고개를 숙이고 있다. 종아리에서 피가 조금씩 스며나오는 느낌이 든지 서너시간이나 됐다. 츄리닝 바지를 걷어 다리쪽을 살펴 보고 싶었으나 시선을 끌 수는 없었다.

비행기가 탑승교에 접현하고 탑승구가 열리자 승객들은 247번게이트를 통과해 하나 둘 쏟아져 나와 떼지어 무빙워크를 따라 입국장으로 흘러든다. 무리 속에 있던 낯선 그림자 6명은 짐짓 태연한 척하지만 그들의 걸음 걸이는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러웠다. 허벅지를 감싼 박스테이프가 걸을 때마다 살을 파고드는 느낌을 주며 미세한 고통을 안겨주고 있었다.

전날(26일) 밤, 쿠알라룸푸르의 변두리에 위치한 허름한 한 주택의 밀실에서 벌어진 일은 마치 의식 같았다. 속옷 차림으로 선 그들 앞에서 마이클의 부하들이 비닐팩으로 감싼 필로폰을 몸에 둘러 빨간색과 파란색 박스테이프로 부착시켰다. 배와 허리 허벅지에 마약이 둘러졌다. 그 위로 마이클이 사온 옷을 입었다. 후드가 있는 헐렁한 상의와 츄리닝 바지를 입고 그 위로 패딩을 걸쳤다. 부족하면 신발 밑창까지 마약을 채웠다. 아디다스와 나이키 신발을 가져와 뒷꿈치 밑부분을 파 마약을 깔창 밑에 넣었다. 한 사람당 3.5kg~4.5kg이 할당됐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이 2023년 1월 26일 쿠알라룸푸르 주택가에서 한국으로의 마약 운반을 위해 몸에 마약을 두르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사진 이미지. 실제 인물이 아님. (자료=뉴스버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이 2023년 1월 26일 쿠알라룸푸르 주택가에서 한국으로의 마약 운반을 위해 몸에 마약을 두르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사진 이미지. 실제 인물이 아님. (자료=뉴스버스)


카메라 플래시가 몇 차례 터졌다. "왜 사진을 찍느냐?" 위나가 불안한 듯 사진을 찍는 마이클에게 물었다. "한국의 우리쪽 사람들에게 보낼 거야. 사진을 보면 너희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마이클은 불안해하는 위나를 안심시키려고 했다. 위나는 "우리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한국 세관원이다. 한국에 있는 보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니, 걱정하지 마라. 한국 세관은 이미 매수됐다." 마이클은 확신에 찬 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몸에 두른 필로폰은 세관 검색에서 십중팔구 잡아내기 때문에 마약을 몸에 감아 들어오는 경우란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있지 않으면 섣불리 감행할 수 없는 일이다. 1kg당 시가 30억원으로 계산하면 3.5~4kg을 두른 1명이 적발되면 100억~120억원이 날라가는 것이다.

마이클은 말레이시아 조직의 보스다. 키는 약 170cm 가량의 단구였으나 상대에게 위압적으로 보이려는 듯 다리 팔 목 이마 등 온몸에 타투칠을 했다. 다리엔 마약 투약 흔적인 주사 바늘 자국도 눈에 띠었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  위챗방에 등장한 한국 세관원의 얼굴 

캐린스는 소파 끝에 앉아 스마트폰을 움켜쥔 채 위챗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화면 위 작은 알림창이 깜박였다. “새 단체방이 개설됐습니다.” 그녀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화면에는 캐린스를 포함해 13명이 모인 방이 나타났다. 프로필 이름들은 낯설었고, 대부분은 알 수 없는 중국어 닉네임이었다.

곧 한 장의 사진이 단체방에 공유됐다. 제복을 입은 한국 세관 직원의 상반신. 뒤이어 또 한 장, 이번엔 역시 제복을 입은 다른 세관 직원의 전신 사진이었다.
“이 얼굴을 찾으면 돼.” 사진에 이어 마이클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캐린스는 사진을 내려 받아두려했으나, 저장할 수 없는 파일이었다.

사진 속 남자의 눈빛은 차갑고 무표정한 듯한 느낌이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도와줄 거야” 그녀는 옆에 앉은 위나를 바라보며 낮게 속삭였다.
위나는 굳게 다문 입술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의 스마트폰에도 같은 사진이 떠 있었다. 하지만 위나는 단체방의 대화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 채팅방에선 중국어로 대화가 오갔지만 위나는 중국어를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캐린스를 통해 채팅방 내용을 전달받아야 했다.  
“걱정하지 마. 그들이 먼저 널 알아볼 거야.”
캐린스는 이어 올라온 마이클의 메시지도 위나에게 전달해줬다. 
캐린스는 손바닥에 땀이 배어드는 걸 느꼈다.
“마이클이 말했잖아. 한국에 도착하면, 세관이 우리를 맞아줄 거라고.” 캐린스가 스스로를 안심시키 듯 말했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이 2023년 1월 26일 밤 한국 세관원의 사진을 전송받아 확인하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사진이미지. 실제 인물이 아님. (자료=뉴스버스)
말레이시아 마약 조직원들이 2023년 1월 26일 밤 한국 세관원의 사진을 전송받아 확인하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사진이미지. 실제 인물이 아님. (자료=뉴스버스)


이들보다 몇 시간 먼저 이곳에 왔던 리고화와 양초우웨이 두 사람 역시 캐린스 위나처럼 포장지로 싼 마약을 허리 배 다리에 빨간색 파란색 테이프로 칭칭 감은 채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향했다. 캐린스와 위나, 리고화와 양초우에이가 2인 1조로 움직인 탓에 그들은 말레이시아에선 같은 조직원인 줄 알지 못했다. 캐린스와 위나, 리고화와 양초우웨이는 각각 짝을 이뤄 택시를 이용해 쿠알라룸푸르 공항으로 이동했다. 말레이시아에선 마이클이 이미 세관에 손을 써둔 탓에 그들은 별도 전용 통로를 안내받아 출국장까지 아무런 제지 없이 통과했다. 가슴 졸이며 출국장까지 왔던 캐린스는 “한국 세관도 매수됐다”는 마이클의 말에 믿음이 갔다.

입국심사대쪽으로 이동하는 동안 리고화는 휴대폰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세관원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마이클이 아직은 사진을 삭제하기 전이었지만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아 리고화는 얼굴 사진을 띄우는데는 실패했다. 

입국 심사를 마친 캐린스가 2층 로비에서 서성이자,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다가온다. 그들이 일단 마중객인지 승객인지 알 수 없었다. 캐린스에 다가오더니 ‘단중’이라고 짧게 속삭였다. ‘단중’은 암호였다. 단중은 “한국 세관은 매수됐다”고 말했던 말레이시아의 보스 마이클의 닉네임이자 또 다른 이름이다. 암호를 먼저 댄 이는 양초우웨이와 리고화였다.

양초우웨이의 ‘단중’ 속삭임으로 기내에서 흩어져 있던 3명이 한곳에 모였다. 이어 위나까지 입국심사대를 나와 네 명이 됐다. 위나는 다리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바람에 뒤쳐져 올 수 밖에 없었다.

위나 역시도 위챗방에서 세관원의 '얼굴' 사진을 다시 확인하려 했지만 버퍼링이 걸려 화면이 멈췄다. 그 순간 불안이 스며들었다.

필로폰 24kg 보다 더 위험한 건 '침묵'

하지만 곧 안도의 순간이 찾아왔다. 1층으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쪽에서 세관 제복을 입은 두 남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마스크도 없이 드러난 얼굴로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들. 위챗방에 올라온 사진과 일치했다. "말레이시아에서 왔느냐?" "예쓰" 일행 중 한 명과 간단한 문답이 오가자, 세관원들은 입국심사대를 먼저 나왔던 유팅비와 로우젠하오까지 합류시켜 자연스럽게 대열을 만들었다. 세관원 두 사람을 가운데 놓고 조직원 여섯이 앞뒤로 흩어진 것처럼 하면서 자연스런 행렬로 이동했다.

2023년 1월 27일 마약을 몸에 부착한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을 한국 세관원들이 안내하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2023년 1월 27일 마약을 몸에 부착한 말레이시아 조직원들을 한국 세관원들이 안내하는 장면을 챗GPT가 재연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종아리로 흐르는 피가 멈추지 않던 위나는 뒤처졌다. 종아리 핏줄이 터져 걷기조차 힘들었던 그녀는 제복 등에 새겨진 CUSTOMS 글자만 보고 비틀거리듯 따라갔다.

이들은 불과 1~2분만에 세관 구역에 도착하자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경험했던 마이클의 ‘전능함’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KE672편은 일제검역 대상이어서 세관 검색대로 빠져나가서도 안되고, 표시선으로 안내되기 때문에 빠져나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승객 전부가 농축산물 검역본부에서 일제 검역을 거쳐야했다. 그런데 이들 6명은 각자 몸에 3.5~4.5kg의 마약을 두르고 세관원의 안내를 받아 빠져나간 통로는 세관 검색대였다. 필로폰 1회 투약분을 0.03g으로 계산하면 8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마약 24kg(시가 720억)이 세관의 협조로 밀반입된 것이다. 이날 하루치일 뿐 이들은 인천공항과  김해공항을 제집 드나들 듯 수백kg의 마약을 말레이시아에서 같은 수법으로 퍼날랐다. 그럼에도 세관의 책임을 묻는 책임 규명은 고사하고, 세관 수사를 막는 자만 있었다.‘윤석열·김건희 배후설’의 시작점이다.
※ 2화로 이어집니다.

이진동 기자 jebobox@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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