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현상’을 다시 말한다 ②
다 된 밥에 코 빠뜨린 격인 ‘비방’ 한 단어
조국이 돌아왔다. 이재명 정부의 첫 번째 광복절 대규모 특별사면으로 서울 남부교도소에서 석방된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이하 ‘조국’으로 호칭)의 압도적 존재감이 단숨에 정국을 뒤덮었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의 최신 조사결과 기준으로 취임 80일을 맞는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 비율이 50퍼센트대 초반까지 급락한 상황마저 조국에 대한 때이른 특사 때문이라는 정치 전문가들과 시사평론가들의 진단과 분석이 봇물을 이룰 정도다.
이른바 조국 사태가 발발한 후인 지난 6년의 세월은, 대법원에서 실형이 확정돼 수감생활을 해야만 했던 8개월의 기간은 조 전 대표에게는 혹독하기 짝이 없는 고난과 연단의 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생긴 가장 뼈아픈 손실은 가족이 평범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데 있다. 아내인 정경심 전 동양대 교양학부 교수는 학자로서의 삶을 이어가기 어렵게 되었고, 장녀 조민 씨는 의사로 성공하는 꿈을 완전히 접어야만 했다.
반면, 얻은 것도 있었다. 최고의 소득은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과 진보적 시민사회단체들을 총망라하는 범여권을 통틀어 정치적 서사의 측면은 물론이고 개인적 이름값의 관점에서도 조국이 차기 대선 주자로서 으뜸가는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만약 지금 당장 조국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 두 사람을 후보 단일화 무대에 올린 다음 누가 범여권의 단일후보로 적합할지를 겨루게 한다면 백이면 백, 전자인 조국이 후자인 정청래를 일방적으로 앞설 게 분명하다.
조국 조기 사면복권이 기정사실이 되었을 즈음 언론과 정치권에 더해 일반 대중까지 그가 감옥에서 나와 보여줄 메시지와 행보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조국은 현재 시점에서 한국 정치의 슈퍼스타이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옥문을 나선 조국이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에 석방 일성으로 올린 글을 두세 번 되풀이해 읽었다. 읽을 때마다 마지막 문장이 마치 목에 걸린 생선 가시처럼 거북하게 느껴졌다.
“저에 대한 비판, 반대, 비방 모두 다 받아 안으면서 정치를 하겠습니다.”
조국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미리 대신해 써놓은 글에 조국이 결재를 해줬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길이 없다. 문제는 ‘비방’이라는 냉소적 어감의 단어였다.
조국의 열성 지지자들은 굳이 이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윤석열이 휘두른 검찰 권력의 잔인하고 무자비한 먼지 털이식 별건 수사로, 보복 수사로, 표적 수사로 말미암아 조국 일가가 억울한 고초를 당했다고 진즉부터 생각하고 있다. 관건은 조국의 안타까운 처지를 동정할지 말지 고민하던 중립적 입장에 놓인 사람들의 호의와 연민을 구하는 일이다. 이들은 윤석열이 벌인 시대착오적 친위군사쿠데타와 김건희가 자행한 국정농단 범죄에 분노하면서 윤 정권의 최대 피해자인 조국에게 마음의 문을 막 열려던 참이었다.
비방. 이 한 단어는 사람들이 마음의 문을 다시금 닫게끔 하는 데 딱 알맞은 표현이었다. 조국이 이제는 여러모로 변했을 것이란 중도층의 희망과 청년세대의 기대감에 ‘비방’이 그야말로 일순간에 찬물을 끼얹은 탓이었다.
자유를 되찾은 지 아직 일주일도 채 되지 않은 조국에게 필자를 포함한 우리 사회의 보통 사람들이 어쩌면 너무 많은 걸 바라고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조국의 전광석화 같은 광폭 행보는 국민들로 하여금 그에 대해 적잖은 희망과 기대감을 품도록 만들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조국은 출소 나흘 만에 김어준 딴지일보 총수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하는 형식을 빌려 곧바로 현실정치 활동을 재개했다. 그는 한겨레신문과 경향신문 등 내로라하는 진보 성향의 언론사들과 잇달아 인터뷰를 갖고서 내년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화하며 민주당과의 합당은 없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조국은 오는 주말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평산마을을 방문할 예정이다. 조국의 화려한 정계 복귀를 계기로 범여권의 무게중심이 이재명 대통령의 용산 대통령실로부터 문 전 대통령, 정청래 민주당 대표, 조국 3인을 세 개의 꼭짓점으로 하는 친문 진영으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는 인상조차 주는 지경이다. 영어의 몸이 되기 전의 조국이 개인플레이에 치중했다면, 광복절 특사로 공민권을 회복한 조국은 친문 진영이 펼치는 팀플레이에 철저히 충실한 모습인 셈이라 하겠다.
코딩 배우는 조국이 혁신의 시작
김용민 평화나무 이사장이 근 15년 년 전에 예견·포착했던 조국 현상은 재차 일어날 수 있을까? 개인플레이에 치중하는 조국과 팀플레이에 충실한 조국 사이에는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외연 확장보다는 내부 결집을 우선시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조국과 정치인 조국 간에는, 제도권 원내 정당의 당수가 되기 전의 조국과 된 다음의 조국 간에는, 윤석열이 몰락하기 이전과 몰락한 후의 조국 간에는 긍정적 맥락에서의 근본적 변화는 여전히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 구체적 물증이 뭐냐고?
돌아온 조국이 SNS에 올린 두 개의 사진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하나는 된장찌개 사진이었다. 이 된장찌개로 인해 강남좌파의 위선이 이렇고 저렇고 하며 시끄러운 모양새인데, 인간적으로 정말 진지하게 부탁하는 바이다. 우리 제발 먹는 것 가지고 더는 왈가왈부하지 말자.
또 다른 하나가 '8개월간의 폐문독서물(閉門讀書物)'이라는 설명이 붙은 사진이었다. 나는 사진 속에 등장하는 책들의 제목을 일일이 유심히 살펴봤다. 그리고 자신감 있게 결론을 내렸다. “조국은 조국이다. 하나도 안 변했네.”
조국의 독서목록 가운데 첨단기술이나 무역전쟁에 관련된 서적이 한 권이라도 들어 있었다면 그가 바뀌었다는 작지만 의미 있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새로움이란 게 뭔가? 전에는 하지 않던 행동을 하는 거다. 그게 뉴스가 되고, 화두가 되면서 중요한 개혁과 쇄신의 변곡점을 창출하기 마련이다.
조국과 이준석은 참 바뀌지 않는다. 조국은 낡은 1980년대식 사회과학의 틀을 좀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역시 공감과 조율 능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공계 출신의 한계를 극복할 조짐이 여태껏 없다.
사회과학 서적을 읽는 조국에게서 무슨 새로움과 색다름이 있겠는가? 컴퓨터 프로그램을 코딩했다고 자랑하는 이준석으로부터 어떠한 획기적 전환의 기운이 감지될 수가 있겠는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변화와 혁신은 비록 서투른 솜씨일지언정 코딩을 하는 조국으로부터 움트는 법이다. 기존의 통념과 선입관을 창조적으로 파괴하는 통쾌하고 대담한 방향 선회는 제왕학의 고전일 자치통감과 정관정요를 통독하며 인문학의 향기를 맡으려 애쓰는 늦깎이 사회과학도 이준석으로부터 목격되기 마련이다.
정권교체의 결실이자 전리품일 사면복권을 받아 귀환한 조국은 종전의 하던 작업을 관성대로 계속 ‘더 열심히’ 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시 일기 시작된 조국 현상의 파고는 한층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찻잔을 넘치는 태풍으로까지 발전하지는 지켜봐야 할 듯 싶다.
새로운 시대는 꼭 새로운 인물들에 의해서만 개막되지는 않는다. 낡고 때 묻은 옛 인사들이 민중과 함께하는 위대한 도전과 모험에 나서겠다는 결연한 자세와 각오 아래 새로운 일들에 과감히 손댐으로써도 잉태된다. 코딩을 배우는 조국을, 자치통감과 정관정요를 읽는 이준석을 언제쯤에나 볼 수 있으려나. 올해 광복절도 이미 지났건만 오늘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