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부활의 출발점은 2024년의 22대 총선
한국 정치의 이도류 조국
이재명 정부가 제80주년 광복절을 기념하여 2025년 8월 15일 자로 대규모 특별사면을 단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반목의 정치를 끝내고, 국민 대화합을 도모하는 차원에서 총 2,188명에 대해 특별사면 및 복권을 실시하기로 하였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빛을 되찾아주기로 결정한 2,188명은 소상공인, 청년, 운전업 종사자 등 서민생계형 형사범은 물론이고 여야 정치인, 노동계, 농민 등 각계각층을 폭넓게 아우르고 있다. 무려 2,188명에 달하는 적잖은 숫자의 특별사면 및 복권 대상자들의 다양한 면면은 단 한 사람의 이름으로 상징적으로 집약될 수가 있다. 조국.
이제 한국 사회에서 특정한 일개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 조국(曺國)은 추상명사 조국(祖國)보다 더 뜨거우면서도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단어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전 서울대학교 법대 교수,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 전 법무부 장관, 전 조국혁신당 대표이자 전 국회의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강남 좌파의 기수이자 선두주자.
이와 같은 화려한 경력에 더하여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와 잘생긴 얼굴까지 복되게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성이 차지 않는지 울림 있는 묵직하고 중후한 목소리마저 여벌 아닌 여벌로 소유하고 있다. 누리꾼들이 즐겨 쓰는 표현을 잠시 빌리자면 한마디로 만화에나 나올 법한 사기 캐릭터가 다름 아닌 조국이라는 미중년의 사나이라 하겠다. 조국처럼 모든 것을 다 갖춘 정치인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조 전 대표가 단언하건대 전무후무할 듯싶다.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투타 겸업의 이도류로 맹활약 중인 일본인 야구 선수 오타니 쇼헤이가 현역선수 생활을 마치고 만약에 제도권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다면 조국 정도의 사기 캐릭터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 이는 조국이 심지어 오타니와 견주어도 전연 꿀리지 않을 정도로 독보적인 대중적 스타성을 뽐내왔다는 뜻이다.
그러나 조국은 오타니는커녕 여의도 이웃집 정청래만큼도 드높이 비상하지를 못했다. 그가 내란수괴 윤석열이 마지막 회심의 승부수로 던졌던 친위 군사쿠데타가 실패한 후과로 말미암아 국회 본회의에서 탄핵소추를 당한 이틀 후인 2024년 12월 16일 서울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시작한 탓이었다. 대법원이 조국에게 확정 판결을 내리며 적용한 죄목은 자녀 입시 비리와 청와대 감찰 무마 등과 관련된 사항들이었다. 문재인 정부의 황태자로 불리며 승승장구했던 대한민국 주류 진보 진영의 기린아에게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 흠결이고 얼룩이었다.
이쯤에서 솔직하게 밝혀두자. 필자는 조국 전 대표를 그가 현실정치에 입문하기 훨씬 이전부터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해온 터이다. 김용민 사단법인 평화나무 이사장이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의 진행자 겸 프로듀서로 활동하던 시절 펴냈던 사회비평서 <조국 현상을 말한다>에는 내가 조국 당시 서울대 교수를 주제로 김 이사장과 나눴던 걸쭉한 장문의 대담이 수록돼 있다. 노혜경 시인,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 등 책에 자신의 의견을 보탰던 다른 인사들과는 판이하게 나는 조국 교수를 인정사정없이 혹평해놓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조국 대망론을 피력해 베스트셀러 반열에 장기간 당당히 올랐던 김용민 이사장의 책에서 독자들이 가장 열독했던 부분은 내가 등장하는 대목이었다고 한다. 대다수가 조국의 열성 팬이었을 독자들에게 문제의 대목은 욕하면서 본다는 막장드라마와 아마 동급으로 여겨졌던 모양이다. 따라서 나는 조국이 올해 8·15 특사의 수혜자 집단에 포함된 점을 맹렬하게 질타해야만 논지의 일관성 측면에서 아귀가 맞으리라.
특별사면의 추동력은 언제나 민심
그렇지만 필자는 야당과 언론이 이번 사면을 둘러싸고 쏟아내는 비판적 성명과 기사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조국을 영어의 몸이 되게끔 만든 이른바 ‘조국 사태’가 본질적으로 문재인 정부 내부의 주도권을 장악하려는 치열한 권력 투쟁의 산물이었듯이, 쑥스럽고 남우세스러운 혐의와 의혹으로 교도소에 유폐된 조국이 개선장군처럼 돌아오게 된 상황 또한 냉혹한 정치 싸움의 결과물인 연유에서이다.
단도직입적으로 가정해보자. 2022년의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하지 못했다면 조국과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 대신에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가 곧바로 나란히 콩밥을 먹었을 게 분명하다. 윤석열이 검찰과 군대에 의지하지 않고 정상적인 선거 정치를 통해 야당을 민주적으로 제압하려고 시도·노력했다면 올해 8월 15일 정부가 주최하는 광복절 기념식 단상에는 윤석열이 대통령 자격을 유지하며 건재하게 앉아 있었으리라. 반면, 조국은 그 씁쓸한 광경을 감방 안에서 텔레비전 뉴스로 바라보며 울분을 삭여야만 했으리라.
그렇다. 현대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정치인의 최종적 성패와 거취는 투표장에서 먼저 가려지기 마련이다. 알고 보면 법은 투표장에서 정해진 일을 단지 사후적으로 공식화할 따름이다. 따라서 통상적인 사법적 절차를 단박에 뛰어넘는 ‘특별사면’이란 고도의 정치적 행위는 민심의 선택으로 탄생한 선출된 권력이 그 행위의 주체가 될 때만이 정당성이 충분히 담보될 수 있다.
작년 4월 치러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거대 양당의 위성 정당을 전부 제치고 비례대표 득표율 1위를 차지한 순간, 조국은 감옥에 잠시 가둘 수는 있어도 오래 가둘 수는 없는 몸이 되었다. 비례대표 1위 정당의 당수를 장기간 감옥에 집어넣는 건 총선 민심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반민주적 폭거가 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 계열 정당의 지지자들은 조국을 윤석열이 무소불위로 행사해온 무도하고 자의적인 검찰 권력에 희생된 순교자로 인식했다. 그들은 조국에게 진 마음의 빚을 조국혁신당을 비례대표 1등 정당으로 만들어주는 방식으로 갚았다.
이걸로 조국에 대한 부채는 전부 청산된 것일까? 당연히 청산되지 않았다. 조국은 윤석열의 비참한 몰락에 뒤이은 조기 대선 정국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직전에 공민권을 상실하면서 감옥에 갔다. 그 과정에서 조 전 대표는 의도하지 않게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일종의 정치적 긴급대출을 제공해줬다. 어떤 긴급대출이냐? 이재명 대표가 사실상 부전승으로 야권 단일 후보가 되는 길을 조국이 터주었기 때문이다. ( 이어 ②회는 8월 20 게재됩니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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