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기득권 방어 본능은 민심의 생존 본능 이기기 어려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골목골목 경청투어:국토종주편'에 나선 6일 충남 금산군 금산터미널 일대에서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몽준, 노무현을 버렸다"

2002년 12월 19일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맞붙은 16대 대선 투표일 조선일보 2면 사설칸 상단 사설에 붙은 제목이다. 

대선 전날 서울 종로 유세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 피켓’을 본 노 후보가 “속도위반하지 말라”며 “정동영도 있고, 추미애도 있다”는 발언이 발단이었다. 그러잖아도 불협화음이던 정몽준 측이 폭발했다. 지지 철회를 했고, 노 후보는 심야에 정몽준(현 아산재단 이사장) 집까지 찾아갔지만 만나지 못했다. 

이런 상황을 조선일보 사설은 싸디싼 용어로 ‘버렸다’고 표현했다. 비단 용어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노-정 단일화 효과가 나타나던 판세를 뒤집을 수 있는 ‘결정적 기회’라고 판단한 듯 너무도 과감하게 ‘흑심’을 마구 노출해버렸다. 

2002년 12월 19일 조선일보 사설.
2002년 12월 19일 조선일보 사설.

요약하자면 그동안 국민들의 노 후보에 대한 지지는 노무현-정몽준 단일화를 전제로 한 것인데 정몽준이 노무현을 버렸으니, 노 후보 지지 국민들도 지금까지 판단기준을 뒤집으라는 것이었다. 노무현에게 표가 가지 않게 하려는 명백한 의도가 드러났다. 

16대 대선 당시 조선일보는 애초부터 노 후보의 경쟁 상대였던 ‘엘리트 대법관’ 출신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고 보더라도 투표 당일 새벽 배달된 이날 신문의 사설은 분명 선을 한참 넘는 발악적 대국민여론전이었다.  

그런데 효과는 정반대였다. 여론조작의 ‘강풍’은 오히려 노무현 지지자들을 결집시키는 ‘역풍’이 됐고, 지자들의 자발적 투표 독려에 불을 붙였다. 그 결과는 57만980표 2.33% 차이로 노무현의 당선이었다.

그로부터 23년, 2025년 21대 대선에서 비슷한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그 행위의 주체가 조선일보에서 대법원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대선 선거운동 시작 11일(대선 33일)을 앞에 두고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라는 ‘최고의 무대’로 끌어올려져 초유의 '번갯불 속도'로 무죄가 유죄로 뒤바뀌어 파기환송됐다. 파기환송심 역시도 번갯불에 콩 볶듯 첫 기일이 잡혔다. 그것도 선거운동기간이다. 

‘번갯불 재판’의 기세는 6월 3일 대선 이전에 후보 자격을 기어이 박탈하고야 말겠다는 의도가 아니면 달리 설명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신속한 선거법 재판으로 ‘사법 신뢰’를 회복하는 차원이라는 설명은 ‘하필 지금이고, 하필이 이재명부터인가’라는 물음 앞에서 설득력을 잃고 만다. 구속기간을 날에서 시간 단위로 계산하는 인권적 고려가 하필이면 윤석열 부터라는 점까지 겹치면 우연 아닌 필연으로 보는 시각이 대세가 된다. 

조희대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지난 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선고를 위해 참석해 있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의 노림수와 기득권의 공포

대법원의 ‘번갯불 재판’을 한 노림수는 뭘까. 설령 6월 3일전 대선 출마 자격 박탈이라는 ‘목표?’에 까진 이르지 않더라도, 이재명에게 표가 가지 않게 하려는 ‘명백한 선거개입’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볼 수 있다. '피선거권 박탈(자격 박탈)'이 예정된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확실한 신호를 줌으로써, 중도층의 표심을 흔들고 이재명 지지자들의 투표 의지를 꺾어놓겠다는 의도로 짐작된다.

이런 움직임의 근저에는 비주류의 권력 장악에 대한 주류 세력의 본능적 공포가 있다. 2002년 조선일보가 노무현을 저지하려 했던 것과 2025년 사법부가 이재명을 탈락시키려는 시도는 동일한 보수 기득권의 위기감의 표현으로 해석할 수 있다.

2002년, 고졸이 전부인 인권변호사 출신의 진보 개혁적 정치인 노무현을 저지하기 위해 조선일보가 선봉에 섰다면, 이번엔 조선일보의 지원 사격을 받는 대법원이 소년공 출신 정치인 이재명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는 것이다.

기득권 방어 본능은 결코 이길 수 없는 '민심의 생존 본능' 

노무현과 이재명,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둘 다 주류 세계와 거리가 먼 ‘불편한 비주류’ 정치인으로서 기득권의 벽을 부수려고 도전장을 내밀었다는 점이다. 직설적이고 거친 언사로 인해 보수언론들이 '경박하고 불안한 인물', '믿을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고 폄훼하는 상황도 비슷하다.

반면 2002년 조선일보가 편들었던 이회창 후보는 경기고-서울법대 출신의 정통 엘리트 대법관이었다. 마찬가지로 이재명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초고속 심리를 주도한 조희대 대법원장 역시 경북고-서울법대 출신의 엘리트 법관이다. 두 사람은 그야말로 주류 중의 주류다. 이재명은 이들과 대조적으로 소년공 출신에 검정고시를 거쳐 중앙대를 나온 인권변호사로, 사회의 밑바닥에서부터 정치적 입지를 다져온 인물이다. 그의 강한 어조와 공격적 정치 스타일은 기득권 세력에겐 불편하고 위협적일 것이다. 

2002년 민심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려 했던 조선일보의 반동과 마찬가지로, 2025년 대법원의 선거개입은 민주 질서를 어지럽히는 사법난동이라 할 만하다. 이에 후보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민주당은 '대법원장·대법관 탄핵 카드'를 준비하고 있다. 단순한 '엄포'에 그칠지, 실제 '탄핵'으로 이어질지는 앞으로의 상황 전개에 달려있다.

하지만 주목할 대목은 대법원의 ‘사법 신뢰’를 명분으로 한 민주적 질서에 대한 기습이 의도와 달리 역효과를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6일 보도된 중앙일보 의뢰 한국갤럽 여론조사에 따르면, 파기환송 결정 이후에도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흔들림이 없었다. 오히려 중도층에서 이재명에 대한 대통령 선호도는 1월 36%→4월 43%→5월 55%로 상승세다. (지난 3~4일 만18세이상 1,006명 대상 전화면접조사)

2002년 노무현을 '버리게' 만들려다 오히려 당선시킨 역사적 아이러니가, 이재명의 자격을 박탈하려다 반대로 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양상으로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주류의 기득권 방어 본능과 민심의 생존 본능이 충돌한 결과다. 이해관계에 기반한 기득권 방어 본능은 민심의 생존 본능을 뛰어넘을 수 없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도 거대한 민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법이다.  [ 뉴스버스 = 이진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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