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 오지 않은 '별의 순간'들을 추억하며
홍준표, 모래처럼 와서 모래처럼 가다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이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당내 경선의 최종 결선 무대에 진출했다. 두 사람은 내란수괴 혐의로 형사재판을 받는 중인 전직 대통령 윤석열에 관해 엇갈린 태도를 보여온 터이다.
김 전 장관은 윤석열의 행동이 일종의 정당방위에 해당한다는 식의 입장이었다. 반면, 한 전 장관은 윤석열이 선포한 비상계엄을 해제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데서 보이듯 작년 총선 국면 이후론 윤석열은 물론이고 그의 배우자인 김건희 씨와도 불편하고 껄끄러운 관계를 이어왔다. 김문수와 한동훈의 경합이 내용상으로는 윤석열과 한동훈의 맞대결처럼 자리매김한 까닭이다.
한동훈은 윤석열과 김문수 두 사람만을 상대로 싸우는 게 아니다. 그는 국민의힘 바깥에서 대선 출마를 목적으로 몸풀기에 한창인 국무총리 겸 대통령 권한대행 한덕수와도 드잡이해야만 할 처지이다. 강남에서 곱게 자란 전형적인 8학군 범생이일 한동훈에게 한 명도 아닌 세 명을 동시에 대적할 수 있는 배짱과 실력이 있는지는 앞으로 며칠 안에 명확하게 판가름 날 전망이다.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선출 2차 경선은 네 명에서 두 명을 추리는 작업이었다. 올림픽 대회였다면 동메달이라도 노릴 수 있었으련만 이번 4강전의 경우에는 결승에 오르지 못한 탈락자 두 명은 쓸쓸하게 집으로 직행해야만 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실제로 곧장 귀갓길을 택했다. 그는 최종 결선 진출이 무산된 직후 자신에게는 더 이상의 역할과 명분이 없다며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했다. 홍 전 시장은 정계 은퇴와 함께 국민의힘에서도 탈당할 작정임을 밝혔다.
정치인 홍준표는 어찌 보면 풍운아이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문제아였다. 숱한 부침과 기복을 거듭하며 국회의원 5선을 하고, 당 대표 두 번에 광역자치단체장 세 번을 하고, 대통령 후보자도 한 차례 해봤다는 맥락에서 그는 분명 풍운아였다. 그러나 직업정치인으로 30년을 생활하면서 자기만의 독자적 세력을 단 한 번도 구축해보지 못했다는 측면에서 그는 문제아였다. 군소 진보정당도 아닌 거대 보수정당에 서른 해 동안 몸담은 내내 줄곧 외톨이였다면 이는 남 탓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책임일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시간을 30년 전으로 잠시 거슬러 올라가자. 푸르고 풋풋했던 모래시계 검사 홍준표 눈앞에는 양 갈래 길이 놓여 있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신한국당과 김대중 총재의 새정치국민회의 전부 홍준표를 영입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기울였다. 갈림길에 선 홍준표는 호남당인 김대중 당 대신에 영남당인 김영삼 당을 선택했다. 당장은 편안하고 쾌적한 길이었다. 만약 홍준표가 처음은 좁은 길이었을지언정 차츰차츰 넓은 길로 변해갈 민주당 계열의 정당을 골라 정치권에 데뷔했다면 나중에 어떤 운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DJ 후로는 오히려 영남 태생의 대선 주자들이 호남 민심의 압도적 역선택을 구가하며 앞길이 훤히 트인 꽃길을 걸었던 지난 20여 년간의 민주당의 역사와 이력을 우리가 염두에 둔다면 노무현의 자리에, 문재인의 자리에, 지금의 이재명의 자리에 어쩌면 홍준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홍준표는 작은 싸움에는 강했다. 허나 큰 싸움에 나서면 소심해지기 일쑤였다. 작은 경기에만 강한 성정이 정치인의 길에 들어서는 입구에서는 그를 영남당으로 가게끔 유도했다. 큰 승부에 약한 홍준표 특유의 징크스는 그가 정치인 생활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윤석열의 친위 군사쿠데타를 옹호하도록 이끎으로써 홍 전 시장을 자당의 대선 후보 경선의 결승에도 올라가지 못하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렇게 홍준표는 모래처럼 왔다가 모래처럼 사라져갔다.
안철수,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을 멈출 때다
안철수 의원 또한 홍준표 전 대구광역시장처럼 당내 결승전의 문턱에서 분루를 삼켜야 했다. 이로써 안철수는 대통령의 꿈을 다시금 5년 후로 또 미뤄야만 했다.
그렇지만 지금부터 5년의 세월이 흐른다고 하여 정치인 안철수의 위상에 유의미한 긍정적인 변동이 있을 성싶지는 않다.
안 의원은 “앞으로도 국민과 함께 민생을 살피고, 다가올 미래를 준비하겠습니다”는 소감을 피력하며 현실정치를 그만둘 의사가 현재로서는 추호도 없음을 재확인했다.
우리나라의 웬만한 유권자들 가운데 안철수를 한 번도 지지해보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철수가 그 주인공이었던 ‘안철수 현상’의 돌풍이 전국을 강타했던 배경이다.
한국의 어지간한 유권자들 가운데 안철수를 두 번 이상 연속으로 지지해본 사람 역시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한때 60퍼센트대까지 치솟았던 그의 드높은 지지율이 작금의 시점에 이르러 각종 여론조사 결과들에서 1프로 안팎으로 쪼그라든 이유가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홍준표와 안철수는 세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첫째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치에 입문했다는 점이다.
둘째는 장시간 정치를 해오며 수많은 인물과 어울려봤다는 점이다.
셋째는 안철수나 홍준표를 겪어본 무수한 숫자의 인사들 가운데 두 사람 주위에 여전히 남아 있는 사람이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안철수가 생각하는 정치의 본질적 개념은 뭘까? 그는 “정치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고 정의한 듯하다. 그런 연유로 안철수는 타자와의 상호 작용이 필요 없는 종목인 마라톤에 뛰어든 것으로 짐작된다. 아마추어 마라토너의 기록을 기준으로 3시간이 훌쩍 넘는 동안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에만 전념할 수 있으니 안철수에게 이보다 더 안성맞춤인 운동이 또 어디 있으랴?
안철수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에 몰두하는 동안 그의 내로라하는 경쟁자들은 다른 사람들과의 투쟁에서 승리하고자 부지런히 동지들을 규합하고 세력기반을 확충해나갔다. 안철수가 정치를 열심히 하면 할수록 그의 지지도가 되레 나날이 추락해온 비밀 아닌 비밀이다.
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관찰자들은 안철수가 변하리라고 이제는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단지 그가 언제까지 대한민국 정치판의 고인 물로 남아 있을지 호기심이 발동할 뿐이다. 이런 착잡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이 정치를 계속하는 게 안철수 본인의 자기만족을 빼놓는다면 과연 무슨 명분과 의의가 있을까? 차라리 정치 이외의 분야에서 민중과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하는 게 안철수 스스로를 위해서나, 선거 때마다 그의 모습을 꼬박꼬박 봐야만 하는 국민들을 위해서나 더 나은 선택이 아닐까?
전도유망한 기린아로 출발해 쓰라린 루저(Loser) 신세로 귀착된 홍준표와 안철수의 사례는 최초의 선택이 잘못되면 그 후과가 얼마나 심각하고 치명적인지를 실증적으로 웅변하고 있다고 하겠다.
홍준표 전 시장은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 정치를 시작해야만 옳았다. 그는 영남지역당에 안주·자족함으로써 꿈도 희망도 없는 평범하고 흔하디흔한 구태 기득권 정치인이 되었다. 안철수 의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직을 허투루 양보하지 말았어야만 했다. 박원순에게 안일하게 후보를 양보하는 그 순간은 안철수의 고질병이 두고두고 되고 만 악몽 같은 철수정치의 서막이 열리는 순간이었다.
다른 선택을 했다면 대통령 자리에 올랐을지도 모를 두 사람의 ‘별의 순간’은 별이 하늘 위로 완전히 뜨기도 전에 일찌감치 마침표가 찍혔다. 끝내 오지 않은 그들의 별의 순간을 추억하며 시민 홍준표와 영원한 대권 주자 안철수의 마음의 평화를 진심으로 기원하는 바이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