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대응 매뉴얼 무시한 초동수사
2차가해 군법 위반엔 눈 감았다

 

대한민국 공군 제15비행단 소속이었던 공군 부사관 이 모 중사가 성폭력 피해를 입고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은 지 102일째다. 유족은 아직도 이 중사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다.

반면 군은 이 중사를 죽음으로 내몬 군 관계자들에게 줄줄이 ‘면죄부’를 주고 있다. 공군 여중사 사건 수사가 군내 성범죄에 경종을 울리지 못하자, 그 사이 해군과 육군에선 연이어 성범죄 사건이 일어났다. 해군의 성추행 피해 여중사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공군 여중사에 가해진 성폭력 사건은 초동 수사부터 부실했고, 2차가해자에 대한 군법 위반을 눈감는 등 ‘면죄부를 주기위한 수사’였다. 수사 과정을 처음부터 되짚었다.

 군대 내 성폭력으로 벼랑끝 선택을 한 공군 제15비행단 소속 이 모 중사 추모관. (사진=뉴스1)
 군대 내 성폭력으로 벼랑끝 선택을 한 공군 제15비행단 소속 이 모 중사 추모관. (사진=뉴스1)

공군항공과학고를 졸업하고 의무복무 중이던 이 중사는 지난 3월 2일 선임인 장모 중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 사건 직후 이 중사는 성폭력 대응 ‘매뉴얼’에 따라, 즉시 상관에게 피해 사실을 신고하고 가해자와의 분리를 위해 청원 휴가를 신청했다. 반면 부대 내 상급자들은 국방부가 마련한 성폭력 대응 조치 절차를 무시하고, 오히려 이 중사를 회유‧압박했다.

이 중사의 신고 후 사건 무마‧은폐 시도가 계속됐던 만큼 수사는 처음부터 부실했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공간 분리라는 피해자 보호의 제1원칙이 지켜지지 않았으며, 군 경찰은 사건 발생 15일째 되는 날에야 가해자를 처음 조사했다.

가해자 분리 원칙 무시‧ 피해자 회유‧압박 방치한 대대장 ‘무혐의’

이 중사는 지난 3월 2일 직속 상관에게 귀가길 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 이 중사는 차에서 내려 상황을 모면하자 즉시 상급자에게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했다.

그러나 이 중사 소속 대대의 대대장인 김 모 중령은 성폭력 사건 대응 매뉴얼에 따르지 않고 사건 발생 다음날 밤 9시가 넘어서야, 사건을 군사경찰에 신고했다. 또 이 중사에 대한 2차 가해행위에 대해 보고를 받고도 2차 가해를 방치했다. 징계권을 갖고 있었지만 2차 가해자들의 가해행위를 방지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그에 대한 책임을 묻지도 않았다.

이뿐 만이 아니다. 이 중사 측이 가해자와의 공간 분리를 위해 청원휴가를 요청했지만, 청원 휴가 중에도 이 중사를 계속 영내 관사에 머무르게 했다. 명분은 이 중사의 심리치료 등이었다. 또 「군인복무기본법」 에 따라 성폭력 사건 발생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상관에게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었지만, 보고하지 않았다. 군법이 정하고 있는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김 모 중령으로 인해 이 중사는 성추행 가해자인 장 모 중사, 그리고 사건 무마를 위한 압박과 종용 등 2차 가해를 한 노모 상사 등과 한 부대 내에 계속 머무르게 됐다. 피해자인 이 중사와 가해자 및 2차 가해자의 숙소 간 거리는 수백 미터에 불과했다.

피해자인 이 중사가 가해자와 즉시 분리되고, 가해자와 조직으로부터 2차 가해를 당하지 않았다면 스물넷의 이 중사는 목숨까지 끊어야 하는 벼랑으로 내몰리진 않았을 것이다.

이 중사 유족들은 김 중령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군 검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지난 7월 9일 군 검찰은 김 중령을 무혐의 처분했다.

뉴스버스는 유족 측으로부터 김 중령에 대한 군 검찰의 불기소처분이유서를 제공 받아 내용을 검토했다. 군 검찰은 2차가해 방지 및 2차가해자 징계 등을 하지 않은 직무유기에 해당하는 구체적 정황들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피해자의 2차가해자 처벌에 대한 명시적 처벌 의사 표현이 있었는지 여부를 결정적 판단 근거로 삼아 김 중령을 불기소 처분했다. 피해자 유족측에서는 이 중사가 명시적으로 처벌해달라는 의사표시를 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김 중령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 다툼의 소지가 됐다.

하지만 2차가해 행위는 피해자의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의사표시가 있을 때만 처벌하거나 징계에 회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군법에 따라 김 중령은 성폭행 사건 발생 사실을 알게 된 ‘즉시’ 상부에 보고 할 의무가 있었지만, ‘법적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 명확한 군법 위반에 해당한다. 따라서 군 검찰은 법령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김 중령에게 직무유기의 책임을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김 중령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다.

“가해자가 이 중사 좋아했다”...가해자 두둔 군사경찰대대장도 ‘무혐의’

이 중사는 사건 발생 직후 신고했지만 가해자 조사까지는 보름이 걸렸다. 군 경찰은 가해자 조사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불구속 수사 방침을 세우고 상부에 보고했다.

사건 발생 5일 후인 3월 7일 사건을 인지한 공군본부 수사실무자가 공군 20전투비행단 산하 군사경찰대대장 고모 중령에게 “강제추행 중 제일 심각한 수준이다. 구속영장 검토하느냐”고 확인한 사실이 있지만, 고 중령은 “불구속이 원칙”이라고 답변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고 중령의 발언과 달리 수사규칙은 군 내 중대 성범죄의 경우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고 모 중령은 “가해자가 이 중사를 좋아했다” “(추행 당시) 이 중사가 가만히 있었다” “장 중사가 이 중사에게 사과했다”는 등 사건처리와 상관없는 불필요한 내용들을 상부에 보고했다. 성폭력을 단순 사생활 내지는 연애감정에서 발생한 사적 접촉으로 오해할 소지를 제공하는 표현들이었다.

다수 법조인은 고 중령의 언행을 “가해자에게 심정적으로 기울어져 가해자를 두둔하고자 했던 정황”이라고 평가했다. 수사과정에서 범죄 사건 처리와 전혀 상관이 없는 가해자의 피해자에 대한 감정 및 피해자의 태도를 언급하는 것은 전형적인 2차 가해에 해당한다.

수사‧재판 과정에서 초동 수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초기 수사자료를 근거로 향후 기소와 재판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수사권자가 가해자를 두둔하려는 의도를 갖고 수사 방향성을 설정할 경우 수사와 재판이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고 중령의 2차가해와 가해자 두둔 행위가 법령상의 의무를 위반하고 있지만, 군 검찰은 고 중령을 무혐의 처분했다. 무혐의 처분에 대한 유족 측의 반발과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의 입건 권고에 따라 지난 6월 25일 고 중령은 군 검찰단으로 다시 송치됐다. 그러나 현재까지 군 검찰은 기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전출부대장에게 “애가 이상하다”고 비방한 중대장도 ’무혐의‘

전출가도록 고의 따돌림 한 ‘튕기기’ 중대장도 '무혐의‘

피해자의 마지막 기댈 곳인 ‘수사기관’ 조차 가해자를 두둔하는 상황에 내몰린 이 중사는 부대 전출을 요청하고, 군은 지난 5월 인사이동을 결정했다.

군의 인사이동이 확정되자, 이 중사의 원 소속 부대인 20전투비행단 중대장 김 모 중령은 전출 부대인 15전투비행단 중대장 안 모 중령에게 전화를 걸어 이 중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렸다. 김 중령은 성폭력 피해 사실을 소문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애가 좀 이상하다”는 말을 전하며 이 중사를 비방했다.

안 중령은 부대 공식 주관회의에서 참석자들에게 이 중사의 피해사실을 널리 알렸다. 이 중사가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 15비행단 소속 어 모 대위는 이 중사와 함께 근무하게 될 부사관들을 모아 놓고 이 중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전파했다.

이들의 성폭력 피해사실 전파로 인해 이 중사는 신규 전입 부대에서 조직적 따돌림을 당했다.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괴롭히고 따돌려 스스로가 다른 부대로 전출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소위 ‘튕기기’가 있었다. 이 중사 사후 전입 부대에서 ‘튕기기’행위가 있었음을 알게 된 유족은 김 중령, 안 중령, 어 대위를 ‘직권남용 가혹행위’로 군 검찰에 고소했지만, 군 검찰은 지난 8월 13일 이들을 모두 ‘혐의 없음’ 처분했다. 군 검찰의 불기소 처분 이유 중에는 ‘튕기기’라는 말 자체를 알지 못한다는 어 대위의 일방적 주장이 불기소 사유로 기재돼 있다.

그러나 이들의 행위는 명백히 군법에 위반된다. 「군인복무기본법」 제27조는 상급자, 하급자나 동료를 음해하는 행위를 군기 문란 행위로 보고 금지하고 있다. 또 같은 법 제44조는 성폭력 등을 신고한 사람의 인적사항이나 그가 신고자임을 알수 있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 중사의 성폭력 피해 사실이 부대 간에 전파됐다는 것은 군 검찰 수사심의위원회를 통해 인정된 사실이다. 그럼에도 군 검찰은 김 중령, 안 중령, 어 대위의 군법 위반을 눈 감고, 유족 측이 고소한 직권남용 가혹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들 3명에게 면죄부를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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