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규 정치 맥점을 짚다]
지옥도 연 열성지지자와 인플루언서의 네거티브戰
1. 네거티브 캠페인의 성공과 실패
선거는 총칼 없는 전쟁이다. 승자가 거의 모든 것을 차지하고 패자는 나락으로 떨어진다. 정치권에는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정치인은 선거에서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는 말도 있다. 모두 죽고 살기로 임할 수밖에 없다. 선거철만 되면 ‘정책 중심의 선거를 하라’, ‘포지티브(positive) 선거를 하라’는 요구가 빗발치지만 공염불에 불과하다. 전쟁에 뛰어든 장병들이 네거티브(negative) 캠페인을 포기할 리 없다. 적을 물리치는데 이보다 더 효과적인 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1988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아버지 부시의 네거티브 캠페인은 유명하다. 매사추세츠 주지사로 거둔 성과에 힘입어 부시를 많이 앞서가던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는 네거티브 캠페인에 속절없이 무너졌다. 대표적인 사례는 부시 진영이 ‘죄수 주말휴가제도’를 이용해 한 죄수가 납치 강간을 저지른 사건을 TV광고로 제작해 이 제도를 지지한 듀카키스를 공격한 것이다. 2004년 아들 부시가 존 케리를 꺾을 때 주로 활용한 수단도 네거티브 캠페인이었다. 케리의 네거티브 광고 비중은 27%였는데 비해 부시의 네거티브 광고 비중은 75%였다. 우리나라 선거도 예외는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박정희 후보와 맞선 첫 선거 이래 상대 진영의 ‘빨갱이’ 딱지 공세를 막지 못해 세 차례 연거푸 패배했고, 보수의 원조라 할 수 있는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와 손을 잡은 후에야 겨우 승리했다. 이회창 후보는 아들 병역면제 논란을 극복하지 못해 두 번 낙마했다.
네거티브 캠페인의 효과에 관한 이론적 설명은 ‘부정성효과이론(negative effect theory)’이다. 부정적 정보가 눈에 더 잘 띄고 기억에 많이 남는 다는 것이다. 또 좋아하는 후보를 지지할 때보다 싫어하는 후보에 반대할 때 유권자들이 더 잘 결집한다고도 한다. <네거티브. 그 치명적 유혹>의 저자 커윈 스윈트는 “유권자들은 정치판의 추악한 중상모략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실제론 네거티브 캠페인에 효과적으로 반응한다”고 말한다. 조너선 화이트는 <바른 마음>에서 도덕심리학의 첫 번째 원칙으로 ‘직관이 먼저고 전략적(이성적) 추론은 그 다음이다’를 제시했는데 이 역시 네거티브의 효과를 뒷받침한다. 네거티브야 말로 논리적 설득보다 감성적 자극에 치중하지 않는가.
네거티브 캠페인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2007년 민주당의 정동영 후보 진영은 캠페인 기간 내내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를 BBK관련설로 공격했지만 압도적 표차로 패배했다. 지난 4월 7일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은 시종 네거티브로 일관했다. ‘생태탕’ 선거라는 조롱까지 받았지만 마찬가지로 참패했다.
네거티브의 순기능도 무시할 수 없다. “네거티브 캠페인이 비판과 부정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중요한 정치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것도 사실”(강원택)이다. 한마디로 유권자들의 선택에 도움을 준다는 말이다. 다만 이러한 긍정적 기능은 정상적 또는 합법적 네거티브에 한한다. 모두 네거티브 캠페인으로 불리지만 근거 없이 의혹만 지피는 흑색선전, 없는 사실을 조작해 상대방을 모략하는 마타도어(matador), 허위사실 유포 등의 불법적 네거티브는 선거판을 혼탁하게 하고 자칫 선거의 정당성마저 훼손할 수 있다.
2. 이재명‧이낙연 진영의 전례없는 네거티브 캠페인
민주당 대선 경선과 함께 본격적인 대선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네거티브 캠페인도 덩달아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이번 대선에서 펼쳐지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몇 가지 점에서 이전과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민주당 후보경선에서 매우 격한 네거티브 캠페인이 전개되고 있다. 보통 당 경선과정에서 후보자간 네거티브 캠페인은 그다지 심하지 않았다. 경선이 끝나면 서로 손잡고 대선을 치러야 하기 때문이다. 예외적인 사례가 있다면 2007년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가 경선과정에서 상대방의 부정적 요소를 낱낱이 까발린 일이다. 그렇지만 그 때도 당은 분열되지 않았다. 감내할 수준이었다는 뜻이다. 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문재인 후보를 심하게 몰아붙였지만 대부분 TV토론 과정에서 벌어진 논쟁이지 정색을 하고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이재명 이낙연 두 후보 진영이 벌이는 네거티브 캠페인은 거의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공격의 내용도 심각하다. 이재명 진영은 이낙연 후보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다고 공격했다. 탄핵투표는 무기명이므로 이낙연 후보 본인 말고는 누구도 사실을 알 수 없다. 정황증거 밖에 없다. 더구나 당시 이낙연 후보가 속했던 민주당과 노무현 대통령이 속했던 열린민주당은 200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통합했다. 통합 이전의 정치행위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것은 당을 깨자는 것과 같은 말이다.
이낙연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백제발언을 공격했다. 확장성 부족이란 말과 함께 ‘백제가 주체가 되어 한반도를 통합한 적이 없다’는 말은 얼핏 호남불가론처럼 들릴 여지가 있다. 민주당 안에 상당히 퍼져있는, 하지만 누구도 입밖에 내기 어려운 말이 튀어나왔다. 이낙연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발언을 호남불가론으로 몰아갔다. 호남에서조차 이재명 후보에게 밀리던 이낙연 후보로서는 공세를 취할 호재를 만난 것이다. 그 뒤 해명과 공방이 지속되고 있고, 당 선관위의 엄중한 경고가 뒤따랐지만 둘 다 멈출 생각이 없다.
두 후보 진영이 네거티브를 주고받는 방식도 이상하다. 지금까지 당내 경선에서 상대 후보를 공격할 때는 후보가 직접 나서거나 대변인 등 캠프에서 해당 역할을 맡은 공식책임자가 발표하는 게 일반적이다. 어느 정도 격식과 예의를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이재명 후보의 수행실장이 여러 차례 SNS를 통해 이낙연 후보를 저격했다. 만약 수행실장이 저격수로 나선 것이 의도적 선택이라면 마치 조폭 보스가 똘마니를 시켜 상대 조폭 보스를 습격한 것과 비슷하다. 수행실장이 스스로 알아서 한 것이라면 이재명 후보 캠프의 난맥상을 드러낸 것이다.
두 후보의 네거티브 공방의 결과라 단정하긴 아직 이르지만 민주당 안을 들여다본 흥미로운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재명 지지자에게 이낙연이 후보가 되어 윤석열과 대결할 때 누구를 찍겠는가 물었을 때 63.2%는 이낙연을 6.8%는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반대로 이낙연 지지자에게 이재명과 윤석열 대결 시 누구를 찍겠는가 물었을 때 33.5%만 이재명을 31.3%는 윤석열을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JTBC, 리얼미터) 같은 당에 속한 후보라는 사실이 의심스러운 결과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당내에 이재명에 대한 비토층이 꽤 된다는 것이 하나고, 지금까지 알려진 것과 달리 이재명 지지자에 친문 강성 지지자들이 많고 이낙연 지지자에는 중도성향 지지자들이 많다는 것이 다른 하나다. 친문강성 지지자들이 윤석열을 대안으로 선택할 리는 없기 때문이다.
3. 네거티브전 양상 바꿔놓은 SNS와 유튜브
SNS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의 발달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끼친 영향이 크다. 지금까지 네거티브 캠페인의 공식은 이렇다. 선거캠프가 전략을 수립하고 네거티브 콘텐츠를 만들면 후보가 직접 발표하거나 대변인 등 저격수 역할을 맡은 참모가 발표하고 신문 방송 등의 레거시 미디어가 확산시키는 경로였다. 언론은 선거캠프가 발표한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지 않고 검증하며, 내용이 터무니없으면 거르고 비판한다. 그래서 미국의 캠페인 전략가들은 선거캠프가 만든 네거티브 콘텐츠를 여과 없이 전달할 수 있고 거의 무제한 허용되는 정치 광고를 주로 활용했다. 정치 광고에 많은 제약이 있는 우리나라에선 언론이 주요 전달 및 확산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SNS와 유튜브 등 뉴미디어는 이러한 공식을 크게 바꿨다. 선거 캠프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겠지만 자발적 지지자와 인플루언서들이 훨씬 더 많은 양의 네거티브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하고 확산시킨다. 인터넷이 선거 캠페인에서 영향력을 키워온 것은 오래된 일이다. 2002년 대선 때 처음 출현한 정치인 팬클럽 노사모는 온라인 카페에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지지자들의 활동은 온라인 카페나 포탈 등을 돌아다니며 지지하거나 비난하는 댓글을 다는 수준이었다. 지난 대선에선 드루킹이란 집단이 프로그램까지 동원해 문재인 후보를 위한 네거티브 캠페인을 했지만 콘텐츠 배포와 확산이 주된 역할이었다. 콘텐츠를 생산해 배포한 사례가 있다면 김어준 등이 한 팟캐스트 ‘나꼼수’ 정도다. 그나마 영향력의 크기와 효과에 대해서는 과장이 심하다.
선거캠프는 네거티브 콘텐츠를 만들 때 일정한 선을 지킬 수밖에 없다. 역풍을 감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위 자발적 지지자와 인플루언서들에겐 금기가 없다. 자극적인 내용을 선택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그들은 같은 편끼리도 경쟁한다. 자신들의 영향을 확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 더 많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다. 내용은 더 자극적이 된다. 상대 진영과 싸움이 벌어지면 더 한층 자극적이 된다. 선거 캠프는 그들에게 자제를 촉구하거나 개입할 생각이 없다. 문재인 후보의 ‘민주주의 양념발언’ 이후 저런 일은 비난을 받거나 자제를 요청받은 적이 없다. 고무되고 격려를 받았을 뿐이다. 그 결과가 유튜브에 널린 ‘쥴리 이야기’고, 관철동 중고서적 담벼락에 걸린 쥴리 벽화다. 과연 선거캠프가 아니라 자발적 지지자와 인플루언서들이 주도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에게 도움이 될지도 의문이지만 선거민주주의를 위협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지옥도가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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