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밤 11시기준 사망 154명, 부상 132명
이태원 대형 참사, 한국사회 방재시스템 실패 노출
단정과 원흉 찾기는 시스템 점검과 개선 흐름 방해
최선의 참사 대응책은 가까운 곳 위험요소 해결부터
이태원 핼러윈 데이 참사는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단일 사건으로 최대 피해가 발생한 사건이 됐다. 30일 밤 11시 현재 사망 154명, 부상 132명 등 무려 286명의 사상자가 났다. 한국사회는 방재센터로서의 역할에 또 한 번 실패했다.
늦었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 친지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같은 사고의 재발을 막는 소임은 다해야 한다. 수 차례의 참사에서 경험한 반인간적, 반사회적 언행이 다시 활개쳐서는 안 된다.
혐오와 비하부터 억제해야 한다. 내가 지역활동을 했던 2012년 구미에서도 불산 누출 사태 와중에 겪은 일이기도 하다. 작업중 불산 누출로 사망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목소리가 있었던가 하면, “시민들이 투표를 잘못해서 자초한 것”이라는 비방까지 돌았다. 노동자들이 왜 급하게 공정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왜 어느 정치세력도 사건을 방지하는 제도적 노력에 충분히 나서지 못했는지를 묻어버리는 말들이었다.
이번 핼러윈 참사 이전 이미 ‘건전한 사고방식을 방해’하는 ‘핼로윈데이’, ‘귀신놀이’, ‘’주술행사’를 거부한다는 게시물이 인터넷으로 퍼져나갔다. 1990년대 중반 한국에는 악마주의 음악을 악마의 꼬드김으로 간주하던 사람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사탄 뮤지션으로 비난 받던 일부는 독실한 교회 신자도 있었다. 핼러윈데이도 악령을 쫓는 날에서 유래되었다. 악마로 낙인 찍는 것이야말로 악마적이다.
‘미국 귀신놀이’라는 국수주의적 폄훼도 등장한다. 해외에서 누군가가 한국 쥐불놀이를 ‘미개한 풍습’이라고 비웃는다면 동의할 수 있는가. 이런 사람들이 ‘전통’이라고 여기는 각종 세리머니가 모두 한반도에서 시작되었는지도 의문이다. 미국 뉴욕에서는 보행자 통행로를 확보하기 위해 100여개 구간에 ‘차 없는 거리’를 확보한다는 사실은 아는지 모르겠다.
사건 사고를 계기로 평소 입안에 물고 다닌 생각을 그대로 뱉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번 피해자 중의 다수는 청년이고 여성이다. 외국인 피해자도 적지 않다. 청년, 여성, 외국인에 대한 혐오 발언이 우려된다. 인파가 많은 곳을 찾는 것은 죄가 아니다. 어차피 사람들이 모여서 먹고 마시는 주말 밤이었다. 코스튬을 하고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해서 특별히 더 ‘상업주의에 절은 것’이 되지는 않는다.
특정 시공간에 사람이 많이 몰렸다고 해서 참사를 막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길거리 군데군데에 안전 인력이 배치되어 있고 그들이 유기적으로 소통한다면 사고 직전의 과밀을 방지할 수 있다. 핼러윈에 100만인파가 몰리는 일본 시부야에서는 10개 이상의 임시 감시탑이 설치되어 ‘DJ 폴리스’라고 불리우는 경찰관들이 인파가 멈추지 않고 이동하도록 유도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에 배치된 경찰관들은 방역수칙 위반이나 마약 투약을 단속하는 수준이었다. 배치 인력에게 통행 안전을 맡길 수 없다면 추가 인력이 필요한 것이었고, 추가 인력이 있었다면 도움이 되었을 것임을 시부야 등 해외 사례가 증명한다.
이상민 "경찰 미리 배치했어도 해결될 문제 아니었다" 망언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었던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했다”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의 단정은 실언이 아니라 망언이다.
행정안전부는 이미 ‘2021년 지역축제장 안전관리 매뉴얼’을 세워놓았다. 이태원에서 이것이 첫 단계에서부터 작동하지않은 것은 ‘지역축제 개최자’의 부재 때문이었다. 개최자가 안전관리 유관 기관의 의견을 받아 계획을 세우고 지자체에 제출하면 유관 기관들이 안전관리에 나서게 되어 있었다. 이태원에서는 왜 개최자가 없었는지, 개최자가 없다고 특별대책이 나오지 않은 연유는 무엇인지 돌아봐야 한다.
민관의 연계가 허술했고, 관에게 적극적으로 요구해서 관철할 수 있을만큼 상인과 주민들의 공동체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점을 추상적으로나마 지적할 수 있겠다. 이점을 선제적으로 짚고 구체적으로 파고드는 작업은 1차적으로 정부와 지자체의 몫이다. 이상민 장관의 발언은 시스템의 점검을 방해한다.
구조적인 문제를 회피하고 ‘원흉’부터 찾는 시도도 시스템의 개선 과정을 교란한다. 민주당 민주연구원의 남영희 부원장은 게시했다가 삭제한 글에서 "백번 양보해도 이 모든 원인은 용산 국방부 대통령실로 집중된 경호 인력 탓"이라고 밝혔다. 대통령실 이전으로 인한 인력 배치가 이번 참사에 어떤 악영향을 끼쳤는지는 좀 더 시간을 두고 점검해도 되는 일이다. 이미 일어나서 알려진 사실인 이상 반드시 급하게 입을 열 필요는 없었다. ‘경찰 배치가 적절했는지 따져보겠다’고만 밝혀도 충분했다. ‘남 탓’하기에 골몰했다는 평가를 자초하는 이가 어떻게 정치권의 중책을 맡는지 의문이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잘 보이지 않는 지금, 동료 시민들께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사태에 감정적으로 과몰입하는 것은 진전과 개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참사 때 SNS로 확인되지 않은 사실이 널리 유포되는 원동력이 ‘악의’가 아닌 ‘선의’인 경우도 많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에 과민이나 과잉 해석에 빠진 결과로 말이다.
또 이태원 말고도 여러 곳에서 막을 수 있는 사고가 터지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지금도 SPC계열 빵 공장의 산업재해 사건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고, 경북 봉화군 아연 탄광에서 두 명의 광부가 구조되지 못했다. 꼭 이들 현장에 넉넉한 관심을 가지라는 뜻이 아니다. 바로 가까이에도 위험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이곳을 마주하고 해법을 마련하는 길이 이번 참사에 대응하는 최선책이다. 시민들의 여력을 모으는 일이 헌혈 못지 않게 급하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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