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같은 이변 나오기 힘든 민주당의 경선 구조
현재 지지율이 그대로 경선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

모바일 투표는 경선의 역동성 나오기 쉽지 않아

1.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극적 드라마 만들 수 있을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의 막이 올랐다. 지난 6월 30일 9명의 후보자가 등록을 하고 TV토론을 시작했다. 예상한 바대로 8명의 후보가 선두주자인 이재명 후보를 몰아붙이는 형국이다. 지난 4일, 이광재 후보가 정세균 후보로 단일화하면서 후보는 8명으로 줄었다. 오는 11일에는 6명으로 압축하는 예비경선, 소위 컷오프 결과가 발표될 예정이다. 경선 본선은 8월 7일 대전충남 지역에서 시작해 전국을 순회한 후 9월 5일 서울에서 마감한다. 국민선거인단의 투표는 중간에 두 번, 마지막 서울 등 세 번으로 나누어 집계 및 발표하고, 권리당원, 대의원 등의 투표결과는 지역별 순회일정에 따라 발표한다. 많이 복잡하다. 어쨌든 경선기획단과 당선관위가 경선과정이 조금이라도 더 드라마틱하게 진행되도록 고심한 흔적이 보인다. 

사람들은 운동경기에서 지고 있던 팀이나 선수가 경기 막판에 결과를 뒤집을 때 열광한다.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서 이준석이 승리한 것처럼 말이다. 최소한 엎치락뒤치락하고 긴박감이 넘쳐야 흥미를 느낀다. 느슨하고 결과가 뻔하면 흥미가 반감된다. 경마에서는 잘 달리는 말에게 부담중량을 더 얹어 경쟁을 치열하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다고 대선 후보 경선에서 경쟁을 흥미롭게 만들려고 앞서가는 후보에게 핸디캡을 적용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의 경선구도나 경선방식으로 민주당 경선기획단의 기대한 만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이 극적인 드라마가 될 수 있을까?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합동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재명, 이낙연, 추미애, 박용진, 최문순, 정세균, 양승조, 김두관 후보. (사진=뉴스1)
지난 6일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들이 서울 마포구 상암 MBC 방송센터에서 열린 합동 TV토론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세균 이재명 양승조 박용진 이낙연 추미애 김두관 최문순 후보 
(사진=뉴스1)

2. 신화는 없었지만, 한편의 드라마였던 2002년 경선
역대 가장 극적인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뭐니뭐니해도 2002년 16대 대선후보 경선이다. 김대중 후보가 결선투표에서 김영삼 후보를 꺾은 1971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도 이변이었지만 그땐 대의원 투표였고, 결과도 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후보의 경선승리에 비해 그 극적 효과는 덜했다.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3월 9일에 시작해 8주간 진행되었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두 차례씩 16개 광역자치단체를 순회하며 열렸다. 경선 개시를 두 달 앞둔 그해 초까지 노무현 후보는 이인제 후보에 계속 열세였다. 2002년 3월 9일 제주에서 첫 경선이 열렸다. 노무현 후보는 한화갑, 이인제 후보에 이어 3위에 머물렀다. 하지만 다음날 울산경선에서 1위를 차지했고, 그 결과가 여론조사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울산경선 직후의 여론조사에서 비록 1%포인트 차이지만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는 처음 이회창 후보를 이기는 것으로 나왔다.(문화일보) 그 이전까지 민주당내에서는 노무현 후보를 앞섰던 이인제 후보조차 단 한 번도 이회창 후보를 이기지 못했다. 물밑에서 커다란 변화가 시작되었다. 광주의 선거인단은 이 변화를 감지했고, 다음주말 광주 경선에서 이인제는 보여주지 못했던 승리 가능성을 처음으로 보여준 노무현 후보에게 대거 표를 던졌다. 노무현 후보의 완승이었다. 이른바 노풍이 불었고, 노무현 후보는 파죽지세로 순회경선을 이어간 후 최종 승리했다. 한편의 잘 만든 드라마였다. 

다만 노무현 후보의 경선 승리를 사실과 달리 신화화하는 것만은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왕왕 노무현 후보가 지지율 1%에서 시작해 승리했다는 말이 들린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지금도 그런 기사가 나온다. 그러나 경선 시작 2개월을 앞둔 2002년 신년 여론조사는 다른 사실을 전한다. 여야 구분 없는 선호도는 이회창 31.7%, 이인제 16.8%, 박근혜 8.3%, 노무현 8.2%이다. 민주당 후보 적합도는 이인제 30.6%, 노무현 15.8%, 정동영 6.2%다.(이상 한국일보) 노무현은 민주당 후보 중에서 비록 이인제에 밀리지만 확고한 2위다. 다른 매체 조사에서 민주당 후보 적합도는 이인제 41.0%, 노무현 21.6%이고, 나머지 후보들은 모두 한 자리 숫자이다.(중앙일보) 이러한 지지율 간격은 대략 2001년 봄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지지율을 바탕으로 노무현 후보는 2001년 가을 한화갑, 김근태, 정동영 후보에게 이인제를 이기기 위한 4자연대를 제안했다. 실상은 노무현 본인으로 단일화하자는 반이인제연대를 언론은 고맙게도 개혁연대라 불러줬다. 또 당시에 결선투표 대신에 선호투표제(후보자에게 순위를 매기는 방식)를 채택했기 때문에 단일화가 성사되지 않아도 과반 넘는 후보가 없을 경우 3위 이하 후보의 2순위 표를 얻어 승리하는 경우를 대비하는 것이기도 했다. 경선이 싱겁게 끝나 선호투표의 결과를 확인할 필요가 없었지만 어쨌든 4자연대를 시도한 것은 경선에서 승리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었다. 

2002년 민주당 경선경험을 통해 확인할 수 사실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노무현 후보가 1%에서 시작해 뒤집었다는 말은 사실과 다른 신화이다. 노무현 후보는 비록 이인제 후보에 오랜 기간 밀렸지만 나머지 후보를 월등히 뛰어넘는 2위였다. 8주에 걸쳐 충분한 시간을 두고 진행한 순회경선이 선거인단으로 하여금 전략적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3. 친문 적통 후보 부재…친문은 분화중

2002년과 비슷한 경선룰로 치른 2007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은 조직력과 인지도에서 앞선 정동영 후보가 무난히 승리했다. 처음부터 이변이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2012년 경선은 3파전이었다. 문재인, 손학규, 김두관이 붙었다. 문재인 지지율이 조금 앞섰고, 어려운 시기에 당 대표를 두 번이나 지낸 손학규는 조직력에서 우세했다. 소위 친문이 민주당내에서 지금처럼 강한 조직력을 갖추고 있지 않을 때라 만약 2002년 또는 2007년과 비슷한 경선룰을 적용했다면 박빙의 승부가 벌어졌을 것이다. 친문들은 집요하게 경선룰 변경을 요구했다. 2007년부터 요구하던 소위 모바일 투표의 전면적인 도입이다. 친문 진영은 2007년 선거인단 등록과정에서 벌어진 집단 대리접수사태(박스떼기)의 재발을 막아야 하고, 경선에서 모바일 투표라는 현대적 수단을 적극 활용하는 혁신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속셈은 달랐다. 온라인 활동에 열성적인 지지자들을 다수 가진 문재인 후보 입장에서는 모바일 투표가 지지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는데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문제의식이 희박했던 손학규 후보측은 모바일 투표를 수용했고, 경선기간도 2002년에 비해 짧았다. 모바일 투표의 특성상 순회경선 일정에 맞춰 투표하고 개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투표 방식, 개표 및 발표방식, 일정 등 경선방식이 이변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였다. 결국 두 후보의 경선 득표율 차이는 평균 지지율 차이보다 더 벌어졌다.

친문이 2015년 이후 민주당을 구조적으로 완전히 장악한 것도 모바일 투표라는 제도의 역할이 컸다. 민주당을 구조적으로 완전히 장악하는 계기가 한 번 더 온다. 문재인 민주당 대표의 지도력이 흔들릴 때 지지자들이 대거 온라인 당원으로 민주당에 입당했다. 그 후 민주당에서 치러진 거의 모든 당내 선거는 모바일 투표로 진행되었고 천편일률적인 결과가 나왔다. 당대표, 최고위원, 청년위원장, 여성위원장 등 거의 모든 지도부 선거에서 친문 대 비문 또는 주류 대 비주류로 대결했을 경우 득표율은 언제나 65대 35였다. 

다만 지난 전대를 거치면서 약간의 변화가 나타났다. 친문이 분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분화는 더 확연해졌다. 친문 적통 후보가 없다는 사실이 분화를 가속화했다. 혹자는 친문들이 이재명 지사의 후보 선출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하지만 이미 친문 주류는 이재명 후보 진영에 가담한지 오래다. 아마 범친문으로 분류되지만 애매한 이낙연 후보가 아닌 친문 적통 후보가 존재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부질없는 가정이다. 지난 전당대회에서 송영길 대표가 승리한 것도 친문 분화의 산물이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경기지사가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부동산 시장법 제정’ 국회토론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4. 후보들 바람과 달리 이변 쉽지 않은 구조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아직까지는 이재명 후보가 단연 선두다. 추격중인 7명의 후보는 아마도 이변을 바랄 것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변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쉽지 않다. 그 이유를 살펴보자. 

첫째, 구도를 바꿀 계기를 포착하기 어렵고, 변화를 만들 시간이 부족하다. 2002년 노무현은 울산경선 승리를 통해 변화의 계기를 포착했고, 그 변화가 선거인단 속에서 확산되면서 경선구도를 뒤집었다. 이번 민주당 경선은 투표결과를 묶어서 발표하고 일정도 짧다. 

둘째, 이번 경선 투표도 여전히 주 방식은 모바일이다. 모바일 투표로는 경선의 역동성이 나오기 어렵다. 경선 투표결과가 여론조사 지지율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 나오고 있는 지지율이 그대로 경선결과로 나올 것이다. 

셋째, 설혹 이변이 생기더라도 이낙연 후보가 아닌 다른 후보가 이변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노무현 후보가 1%에서 올라가 경선을 뒤집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라 신화다. 두 달도 남지 않은 지금 한 자리수의 지지율에 머물러있는 후보들이 치고 올라가 경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다. 

넷째, 이낙연 후보의 역전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나마 결선투표가 있으므로 1차에서 이재명 후보의 과반을 저지할 수 있다면 실낱같은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쉽지 않다. 2002년 노무현 후보는 4자연대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反(반)이인제를 만들려는 시도를 했고, 그 4자가 성향상 묶일 수 있었다. 지난해까지 압도적 1위를 달렸던 이낙연 후보는 그런 노력을 하지 않았고, 나머지 후보와의 친연성도 높지 않다. 다시 말해 결선투표에 탈락한 후보를 지지했던 선거인단이 이낙연 후보로 쏠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 한 가지 더 있다. 믿기 어렵겠지만 민주당 일각에 존재하는 호남후보불가론도 선거인단의 선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다섯째, 앞서 언급했듯이 친문이 일치단결해 이재명 후보를 거부하는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친문은 확실히 분화했고, 친문 주류는 차선으로 이재명을 선택했다. 그 선택이 바뀔 계기가 눈에 띄지 않는다.   

5.  이재명의 고약한 딜레마
민주당 경선 결과는 거의 정해졌다. 흥미를 끌 요인을 찾기 어렵다. 경선일정, 투표방식, 집계 및 발표방식 등 경선계획의 모든 요소가 가능하면 이변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안되어 있다. 민주당이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격하는 후보들의 공세가 격해지자 이재명 후보의 반응도 신경질적으로 변한다. 초조해 보이기까지 한다. 전혀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이는데 말이다. 

경쟁 후보들의 이재명 후보에 대한 공격내용을 보면 이재명 후보가 짜증을 낼 법도 하다. 정책토론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아무리 도덕성 검증도 필요하다고는 하나 인신공격성 꼬투리잡기가 많다. 경선 선두주자가 감내해야할 운명이다. 이재명 후보에게는 본선 승리라는 다른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본선 승리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가 당의 단합이다. 당의 단합에 가장 앞장서야 할 책임도 경선 승자에게 있다. 참 고약한 딜레마다. 이제 남은 일은 이재명 후보가 당의 단합을 해치지 않을 수준에서 경쟁 후보의 격한 공세를 얼마나 잘 이겨내고, 어떻게 경선을 지혜롭게 요리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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