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대선에서 나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표를 잠식함으로써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유리해질 것’이라는 중평에 반대 전망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대선 막판에 나는 비슷한 전망을 내놓는다. 2월 10일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가 완주를 선언했다. 많은 이들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에게 다소 불리할 거라 예상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로 진행될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왼쪽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권영길 전 의원,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사진=노무현재단, 뉴스1)
왼쪽부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권영길 전 의원,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 (사진=노무현재단, 뉴스1)

2002대선 민노당 권영길 후보, 노무현보다 이회창에게 불리하게 작용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 지지자의 상당수가 이회창 후보보다 노무현 후보를 더 선호한 것은 맞다. 그 만큼은 권 후보가 노 후보의 지지층을 잠식한 셈이다. 그러나 유권자 지형을 넓게 보고 여러 흐름을 같이 짚어야 한다. 첫째, 권영길의 뚜렷한 진보색은 노무현 후보를 중도로 비치게 만들었고, 이회창 후보는 극우에 가까운 이미지를 형성하도록 했다. 노 후보의 진보적  이미지에 약간의 거리감을 갖고 막판까지 고민하던 스윙보터들에겐 노 후보를 택할 동력이 됐다. 

둘째, 권영길은 이회창과 노무현 둘 다를 ‘기득권’으로 공격했다. 양비론 같지만 노 후보측의 이 후보 공격에 겹쳐져 한나라당쪽이 ‘오래되고 더 심한 부패세력’으로 비쳐졌다. 선거 최대 화두는 ‘정권교체’가 아닌 ‘낡은 정치 청산’이 되었고, ‘제1 기득권자’로 인식된 이회창이 포위되었다. 셋째, 권영길은 지지 기반인 영남 공업단지를 통해 한나라당 이회창의 표밭도 어느 정도 잠식했고, 거대 정당에 불만을 가진 서민층에게도 접근해 들어갔다. 요컨대 권영길은 노무현의 자리를 좁힌 것이 아니라 노무현을 밀면서 이회창을 몬 것이다. 

2022대선 안철수 완주, 윤석열 보다 이재명 무른 지지층 잠식 가능성

2022년 이재명은 2002년 이회창보다 더 불리하다. 2002년에는 판이 평평한 편이었지만, 이번 판은 이재명에게 불리하게 기울어져 있다. 2002년 권영길은 간접적으로 판을 작게 움직였지만, 2022년 안철수는 이재명의 레이스를 직접적으로 침해한다. 

첫째, 정권교체 여론이 압도적이다. 대다수 여론조사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50%를 상회하고 정권연장 여론은 40%를 밑돈다. 후보 검증이 어느 쪽에서 더 활발한지도 선거 판세를 말해준다. 경기도청 불법 의전 논란에 비하면, 윤석열 후보쪽 악재는 제대로 불거지지도 않는 상태다. ‘삼부토건 봐주기 수사’나 ‘김건희 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등 중대 의혹이 제기된 상태이고, 윤 후보측 반박이나 해명이 부실하거나 사실과 어긋난다는 또 다른 의혹을 받고 있는데도 일단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다. ‘윤석열의 문제가 크더라도 이재명과 민주당부터 심판하고 보자’는 대중 심리의 발현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이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1코라시아포럼' 행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오른쪽),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왼쪽)이 지난해 11월 2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1코라시아포럼' 행사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뉴스1)

둘째, 야권 복수 후보가 정권교체 여론을 잡아둠으로써 이재명의 확장을 막고 있다. 2002년 대선이나 2012년 대선에서, 정권교체 여론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당 후보에게 분산되는 경향을 보였고 결국 여당 후보가 승리했다. 이재명 후보도 이 경로를 원한다. 하지만 본격 선거운동기간에 이르렀는데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권교체를 바라면서도 윤석열 후보를 불신하는 유권자들이 이재명 후보를 택하는 흐름이 미약하다. 이 후보 본인의 문제도 크겠지만 안철수 후보가 댐처럼 버티고 있는 효과를 낸다. 

이재명의 ‘진보정당 역이용’이 버겁다는 점도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과의 차이다. 최근 정의당 심상정 후보는 이 후보의 보수화를 맹공하고 있다. 이 후보로서는 “보라, 나는 그렇게 진보적인 것은 아니다. 중도가 지지할 만한 후보다”라고 활용할 일이다. 그러나 오래 전부터 중도 이미지를 가진 안철수와의 영역 경쟁을 피할 수가 없다. 이재명이 심상정보다 안철수와의 연대에 더 공을 들이고 있는 것도 이런 부분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셋째, 안철수 후보는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을 낮출 수 있다. 2002년 ‘진보’인 권영길 후보가 ‘보수’인 이회창 후보를 잠식하는 데 한계가 있었던 것과 달리, 안 후보는 ‘중도’ 정치인으로 인식된다. 정권교체 여론을 50, 정권연장 여론을 40으로 잡을 때, ‘안 후보가 10 이상 득표하면 이재명이 유리하지 않느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하지만 정권연장 여론에도 ‘민주당 지지’가 아닌 ‘국민의힘 거부’가 숨어 있다. ‘야권단일후보 안철수’를 가정하고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후보 지지율이 30%를 밑도는 결과가 여러 차례 나왔다. 물론 불가능한 구도를 전제한 셈이고 이 후보 지지율이 그렇게 추락할 리는 없다. 다만 민주당의 ‘콘크리트’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는 조사다. 나머지 ‘무른 지지층’을 안 후보가 잠식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최근 안 후보 지지율은 7~11%로 나타난다. 이들에게 안 후보가 사퇴할 경우 어느 쪽을 지지할 것인지 물어보면 ‘윤석열 지지’, ‘이재명 지지’ 사이에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다. 아예 선택을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안 후보 지지율이 더 내려가든 반등하든 이런 구성비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종합하면 안철수 완주 효과는 이렇다. 1) 윤석열 지지층 잠식 효과 못지 않게 이재명 지지층 잠식 효과를 낸다. 2) 설령 윤석열쪽을 더 잠식한다고 해도 정권교체 여론이 정권연장 여론을 압도하는 한 어지간해서는 이재명 후보에게 유리할 수 없다. 3) 야권 복수 후보 구도는 정권교체 여론의 축소를 막고 있으며, 거꾸로 정권연장 여론을 이완시키는 소지를 제공하고 있다. 

윤석열 후보가 피해를 보는 시나리오는 한 가지밖에 없다. 윤 후보측에 치명적인 악재가 터져 정권교체 여론에 찬물을 끼얹고, 지지층이 이재명, 안철수 두 갈래로 새어버리는 것이다. 이것은 윤 후보와 국민의힘에게 달린 일이다. 달리 말해 더 이상 단일화를 입길에 올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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