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박스권에 갇힌 이재명의 지지율
1월 중순을 지나면서 대선 분위기가 다시 바뀌었다. 여러 조사에서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은 반등했고,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은 하락 내지 정체상태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가 지난 14∼15일 전국 성인 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선후보 지지도를 조사한 결과, 윤 후보 지지율은 전주 대비 6.2%p 상승한 41.4%를 기록했다. 이 후보는 1.4%p 하락한 36.2%를 나타냈다. 선두가 바뀌었다.
한국갤럽이 <머니투데이 더300> 의뢰로 1월 17~18일 전국 성인 남녀 1천1명을 대상으로 한 대선후보 지지도 조사에서 윤 후보는 36.1%, 이 후보 34.9%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2주 전 조사와 비교하면 이 후보는 2.7%p 하락하고, 윤 후보는 6.9%p 급등하면서 오차범위 안이지만 역시 선두가 바뀌었다.
케이스탯리서치·엠브레인퍼블릭·코리아리서치인터내셔널·한국리서치 4개 여론조사기관 공동으로 실시하는 전국지표조사(NBS, National Barometer Survey) 12월 3주차 조사에서 이 후보는 34%, 윤 후보는 33%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전주 대비 이 후보는 3%p 하락하고, 윤 후보는 5%p 상승했다. 순위는 그대로 유지되었지만 두 후보의 격차가 9%p에서 1%p로 줄었다. 안철수 후보는 2%p 내린 12%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재명 후보의 어려움은 순위 역전만이 아니다. 오랜 기간 지지율이 30%의 박스권에서 탈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다. 지난 한 달간 여러 조사에서 윤 후보를 앞섰지만 대부분 윤 후보의 추락 덕이다. KSOI조사에서 지난 한 달간 지지율이 40%를 넘긴 것은 40.3%를 기록한 12월 중순 조사와 41.0%를 기록한 12월 말 조사뿐이다. 한국갤럽 자체조사에서는 37%가 고점이고, NBS조사에서는 39%가 최고치다. 상대 후보인 윤석열 후보의 지지율이 20% 중후반으로 떨어졌을 때조차 이재명 후보는 40% 벽을 넘지 못했다.
무슨 수를 써도 요지부동이다. 게다가 윤 후보는 빠르게 안정감을 찾아가고 있다. 민주당이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했던 김건희 씨 녹취록 폭로도 별 영향이 없었다. 반면 이 후보는 강성 친문들의 반발, 매주 이어지는 대장동 재판, 형수 욕설 녹취록 폭로 등 악재가 계속 이어진다. 이 후보는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이 난관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2. 대장동 이슈 등 초기 대응 방향 잘못 잡아 신뢰 위기 봉착
이재명 후보도 박스권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름대로 무던히 애를 썼다. 중도층을 잡기 위해 기본소득을 비롯한 본인의 진보적 의제들을 대부분 포기하거나 유보했다. 박정희의 성장정책을 추켜세우고,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의 ‘사회서비스 일자리 100만개’ 공약을 가져오기도 했다.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정책이라면 다 수용할 것이라며, 자신을 실용주의자로 포장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소극적 입장을 보였고, 중대재난처벌법은 적용이 쉽지 않을 것이란 말로 재계를 안심시켰다. 부동산 정책 등에서 문재인 정부와 차별화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보의 지지율이 약보합세를 보인다는 것은 아직까지 이 후보의 변신이 그다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것을 뜻한다. 아마 앞으로도 효과가 없을 것이다. 이 후보 지지율이 정체한 원인이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다. 이 후보의 위기는 그의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정책노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 후보의 위기는 신뢰의 위기이다. 한마디로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자타공인 그는 임기응변과 변신에 능하다. 임기응변과 변신으로 한 순간을 넘길 수 있을지 모르나 믿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는 강화된다. 실용주의자라는 말은 뒤집으면 그때그때 부닥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말을 바꾸는 사람이라는 뜻이 된다. 지금은 중도층을 잡기 위해 정책노선을 수정하지만 권력을 잡으면 언제라도 다시 바뀔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의 신뢰에 금이 간 데에는 그가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의혹에 대응하는 태도가 크게 작용했다. 대장동에 대한 대응이 대표적이다. 대장동 의혹에 대한 그의 첫 대응은 전면부인과 상대방에게 덮어씌우기였다. 이미 언론에 상당한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그는 대장동이 단군이래 최대 치적이라 주장했고, 본인이 경기관광공사 사장으로 임명한 유동규는 잘 모른다 했다. 나중에 코너에 몰리면서 마지못해 인정하고, 조금씩 후퇴했다. 처음부터 성남시장으로서 대장동 개발과정을 세밀하게 관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일정 부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를 취했으면 지금처럼 신뢰가 훼손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본인의 강점인 업무추진능력에 흠집이 나는 것을 피하려다 신뢰위기라는 더 큰 위기에 봉착했다. 여우를 피하려다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3. 국정운영 방향 예측하게 해 줄 안정감 갖춘 인물 찾아야
정책노선 수정이 대선후보가 중도층을 소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때에 따라 같이 일할 사람, 즉 차기 정부에서 함께 일할 사람을 보여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후보는 자신의 고유한 철학을 견지하더라도 함께 일할 사람을 통해 차기 정부의 정책노선을 미리 선보이는 방식이다.
영국정치에서는 이른바 섀도 캐비닛(shadow cabinet, 예비내각)이 아예 제도화되어 있다. 미국 대선에서는 선거과정에서 경제와 외교안보 등 주요 정책분야에서 후보에 조언을 하는 전문가 집단의 명단이 공개되고, 대선에서 승리하면 그들이 주요 직책을 맡아 같이 정부를 꾸려간다. 그들의 존재가 국정운영의 방향을 일정 정도 예측하게 해준다.
김대중 후보는 꼬리표처럼 따라붙던 이념시비를 DJP연합과 참모들을 통해 해소했다. 김종필 자민련 총재, 박태준 포철명예회장, 3공의 재경부장관 출신 김용환 부총재 등이 있는 한 경제정책에서 이념시비가 일어날 여지가 없었다. 군 전략통인 임동원 아태재단 사무총장이 외교안보정책을 총괄하는데 안보불안에 대한 공격이 먹힐 리 없다. 박근혜 후보는 자신의 입으로 복지국가를 내세웠을 뿐 아니라 경제민주화의 상징인 김종인 박사를 영입해 경제정책 총괄역할을 맡겼다. 박근혜 후보는 집권 후 김종인 박사를 내침으로써 국민을 기만했지만, 김대중 후보는 집권 초반 IMF위기를 극복하고, 국정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데 자민련 인맥을 대거 활용했다. 일례로 이헌재 전 금감위원장도 김용환 부총재가 천거한 인물이다.
이재명 후보 주변에는 이 후보의 선명성을 보완하고, 안정감을 부여하며, 이재명 정부를 예측가능하게 해줄 사람들이 없다. 경제전문가로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무려 1,800명에 이른다 하지만 눈에 띄는 인물은 없다. 한때 최배근 건대 교수가 이 후보의 경제 멘토로 거론되었지만, 집권 후 경제정책의 수장을 맡을 만한 인물로 보기 어렵다. 현재 경제공약을 총괄하는 것으로 알려진 하준경 교수도 무게감이 약하다. 외교안보분야에선 위성락 전 미주국장이 중요한 일을 담당하고 있다 하나 실무형이지 외교전략가의 면모를 보여준 바 없다. 이 후보를 돕는 것으로 알려진 문정인 전 대통령 특보는 이 후보와 민주당의 친중성향에 대한 의구심을 굳혀주는 역할만 하고 있다. 결국 모든 메시지가 이 후보의 입을 통해서만 나오게 되고, 이 후보 혼자 뛰는 모습만 보이면서 안정감은 더 줄어들며, 중도를 겨냥한 이 후보의 정책 선회는 신뢰를 더욱 약화시키는 악순환에 빠진 형국이다.
이 후보 측도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핫라인을 통해 박용만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이상돈 전 교수 등을 영입하기 위한 물밑 교섭을 진행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지금 분위기에서 거론된 사람들이 움직일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진작했어야 했다.
4. 설 연휴 지나면 판세 굳혀져…시간에 쫓기는 이재명의 선택은?
이재명 추세하락, 윤석열 추세상승, 안철수 약보합의 현 추세를 뒤집기에는 시간이 별로 없다. 판을 흔들만한 새로운 변수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 후보 자신과 민주당도 큰 거 한방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다지만 나올만한 건 다 나왔다. 다음 주말부터 시작되는 설 연휴를 지나면 대선 판세는 거의 굳혀질 것이다. 설 연휴가 지나면 대선은 불과 한 달 남짓 남는다. 더구나 야권에는 후보단일화라는 비장의 무기가 하나 더 남아 있다. 단일화 자체는 무산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설 연휴 시작 전에 단일화 논의가 열리면 연휴 밥상머리 화제를 지배할 것이고, 정권교체에 대한 기대감이 올라간다. 이재명 후보에게 남은 카드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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