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제정, 간호사들 숙원…의사·간호조무사·요양보호사 단체 반발

간호법 제정시 '제2의약분업 사태' 우려

여야 후보, 보건의료계 이해관계 조정 방안 있는지 의문

李·尹 '간호법 제정' 공약과 약속, 눈앞 간호사 표심만 봤나?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과 불법진료·불법의료기관 퇴출을 위한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들이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간호법 제정과 불법진료·불법의료기관 퇴출을 위한 수요집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간호법 제정은 제2의 의약분업에 비견된다. 간호법 제정은 간호계의 숙원임과 동시에 의료계 직역 갈등의 원인이다. 그 만큼 보건의료계에선 '뜨거운 감자'라는 의미다.

그런데 간호법 제정을 둘러싼 의료계의 첨예하고도 사활을 건 직역 갈등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가 둘다 올라타 불을 댕겼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직능본부는 17일 ‘간호법 제정, 지금이 골든타임입니다’라는 슬로건 아래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전 국회에서 간호법을 조속히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11일 자신의 SNS에 ‘언제나 국민 곁을 지키는 간호사, 이제는 이재명이 지키겠습니다’라는 글을 올리며 간호법 제정을 공약했다. 이 후보는 간호법의 구체적 내용으로 ▲방문간호 및 방문의료 서비스의 전국적 확대 ▲간호‧간병 통합서비스의 보편화 ▲간호인력 확보와 적정 배치 ▲처우개선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 마련 등을 언급했다. 민주당의 기자회견은 이 후보의 공약 실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후보 역시 지난 11일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 서울연수원을 찾았을 당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 회장의 간호법 제정 요구에 대해 “숙원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저도 의원들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함께 레벨D방호복을 입고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1)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왼쪽)가 11일 오후 서울 중구 대한간호협회에서 신경림 대한간호협회장과 함께 레벨D방호복을 입고 간담회장에 들어서고 있다. (사진=뉴스1)

여야 후보 모두 '간호법 제정'을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국민의힘 보다는 민주당이 좀더 적극적인 모양새다. 

두 후보가 간호법 제정 추진 방침을 밝히자, 의료계에선 직역 간 찬성-반대로 나뉘어 엇갈린 목소리들이 분출하기 시작했다. 민주당의 '대선 전 간호법 제정' 방침이 나오자 19일 대한의사협회 등 10개 보건의료단체들은 즉각 간호법 제정 철회 목소리를 내며 대규모 집회 등 집단행동을 예고했다.

각 당이 대선에 '올인'하고 있는 국면에서 50일도 채 남지 않은 대통령 선거일 전까지 정치권이 의료계의 첨예한 이해 관계를 조정한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런 상황인 까닭에 '간호법 제정'을 공약 또는 긍정하는 두 후보 모두 직역간 첨예한 이해관계 조정 방안이 있는지부터 의문이다.

현재 국회 의안으로 계류돼 있는 '간호법 안'을 중심으로 간호법이 제정되면 어떻게 바뀔지, '왜 뜨거운 감자'인지를 짚어본다.

1. 간호법 제정되면? ... 현행 의료체계 대폭 수정 불가피

① 간호사 처방 ‧ 단독개원도 가능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간호법 안(案)은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서정숙 국민의힘 의원안 등 2건과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이 발의한 간호‧조산법안 1건 등 총 3건이다.

3건의 법률안 모두 현행 의료법이 정하고 있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진료 보조’에서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변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뉴스버스) 
                                                               (표=뉴스버스) 

이에 따라 개정안이 실제 법률로서 생명력을 얻으면 법에 따라 허용되는 간호사의 업무 범위가 대폭 확대된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간호사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의 ‘지도’를 받으며 의사의 진료 행위를 보조하는 업무를 할 수 있지만, 간호법안(案)에 따르면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의사의 진료를 보조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해당 조항은 간호사가 환자 진료업무를 독자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될 수 있다. 간호사의 업무범위가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로 확장되면 간호사는 의사 없이 의료기관을 단독 개원할 수도 있고, 환자 진료에 필요한 업무의 일환으로 ‘처방’ 등도 할 수 있게 된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간호법안과 유사한 간호법이 시행 중인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간호사가 독자적으로 약 처방을 할 수 있고, 의사 없이 단독 개원을 할 수 있다.

의사협회도 이 부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19일 의협 용산 임시회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정하고 있는 간호법안에 대해 “간호사가 별도의 의료기관을 개설해 의사의 처방에 따른 ‘독자적’ 간호행위를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또 “간호법은 간호사 처우 개선과 무관하며, 오히려 향후 간호사들이 의료기관을 단독 개설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고 부연했다.

② ‘의료기관의 간호사 확충’ 규정...의원급 병원, 간호사 의무 채용해야

또 간호법안은 간호사를 의료 전문 인력으로, 간호조무사와 요양보호사 등을 간호 보조 인력으로 위상 정립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간호법 제정이 이뤄질 경우 간호사의 정의, 업무범위 등이 재정립되고 간호사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의료계 직역간 힘의 균형이 흔들릴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간호법안은 의원급 병원도 간호사를 의무 고용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현행 보건의료기본법과 의료법에 따라 의원급 병원 다수가 간호사 대신 간호조무사를 채용해 진료를 보조하도록 하고 있는데, 간호법이 통과될 경우 의원급 병원도 간호사를 의무 고용해야 하므로 경제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개원의협회는 간호사 인력이 제한된 만큼 간호법이 통과돼 의원급 의원들도 간호사 의무 고용에 나설 경우 수요-공급 원칙에 따라, 간호사 인건비 상승 등 경제적 부담이 추가될 것이라는 우려 등을 근거로 간호법 제정이 ‘직역 이기주의’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같은 맥락으로 간호조무사계에서는 의원급 병원에서 간호사를 의무 고용하도록 법이 제정될 경우 간호조무사의 일자리에 악영향을 줄 것으로 보고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고 있다.

요양보호사협회도 간호법 제정을 극렬 반대하고 있다. 간호법안이 “간호조무사 및 요양보호사를 간호사의 지도 및 감독 하에 두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다. 요양보호사들은 노인복지법에 따라 자격 취득을 하고 의료 및 간호 인력이 아님에도 간호법의 규율대상으로 포함돼 간호사의 지도‧감독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이화여대 서울병원 보구녀관에서 진행된 청년 간호사들과 간담회에서 간호사들의 발언을 듣고있다. (사진=뉴스1)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17일 오전 서울 강서구에 위치한 이화여대 서울병원 보구녀관에서 진행된 청년 간호사들과 간담회에서 간호사들의 발언을 듣고있다. (사진=뉴스1)

2. '간호법 제정' 과정에서 '제2의 의약분업 사태' 촉발 가능성

여당이 “대선 전 간호법 제정” 목소리를 내자 간호계를 제외한 보건의료 단체는 일제히 반발하고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돼 있는 간호법안이 입법 될 경우 간호사 처우 개선 등에만 그치지 않고 타 직역과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른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1999년 말부터 2000년 말까지 1년 여 동안 사회를 혼란케 했던 ‘의약분업 사태’도 의사와 약사의 기능과 역할이 분리되면서 경제적 이해관계가 달라짐에 따라 의사 파업 등 집단행동으로 이어졌다.

1999년 7월 7일 이전에 의약분업을 실시하도록 정한 약사법 규정은 1993년 만들어졌다. ‘의약분업’을 법으로 정한 뒤 6년 여의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지 않아 의사협회와 약사회가 국회에 의약분업 시행을 연기해 줄 것을 청원하는 일도 발생했다. 결국 국회는 의약분업 시행을 1년 간 연기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의사들의 파업, 정부‧약사들 간의 반복된 협상으로 의료대란과 의료공백 사태가 빚어지는 등 국민 불편이 초래됐다.

보건복지통계연보(2020)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의료면허를 등록한 의료 인력은 의사 12만 6,795명, 간호사 41만 4,983명으로 간호사가 의사대비 3배가량 많다. 간호법 제정에 적극적인 두 후보 모두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격무에 시달리는 간호 인력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염두에 둔 간호계 표심공략 차원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복잡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다. 의료법 전문가들은 "간호법 제정은 의료계 직역간 첨예한 대립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대선 후보가 특정 직역의 표심만을 노려 선심성 공약으로 내세울 사안이 전혀 아니다"고 지적한다.  

대선 국면에서 간호법 제정이 공약으로 제안된 것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당시 민주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모두 간호법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간호법 제정에는 실패했다.

지난 2020년 국회 입법조사처가 발간한 보고서는 “간호법이 제정되기 위해서는 간호계와 의사 및 간호조무사의 찬반논쟁을 조정하기 위한 기준을 설정하고, 갈등 요인이 되는 쟁점 사항을 해결할 수 있는 논의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선행돼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3. 외국은?... 세계 80여개국 간호법 단독법으로 입법

간호사 업무와 직군을 전문 영역으로 인정하고, 개별법으로 규정하는 게 세계적 추세이긴 하다. 의료 복지를 추구하는 소위 선진국 대부분은 의료인의 직종별 전문성을 인정해 의사법, 치과의사법 등 의료인 직역별 개별법으로 두고 있다. 간호법도 마찬가지다.

국제간호협회(ICN‧ International Council of Nurses)는 간호법이 제정되지 않은 국가를 위해 ‘표준간호법’을 마련해 두었고, 현재 우리 국회에 계류되어있는 간호법안 3건도 이를 모델로 삼고 있다.

국제간호협회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개별법으로 간호법을 제정한 국가 수는 80여개다. 캐나다는 모든 주에서 주(州)차원의 간호법(Nursing Act)을 마련해 두고 있고, 미국은 모든 주가 1923년을 기점으로 간호법을 단독 개별 법률(Nursing Practice Act)로 제정했다. 독일, 영국, 스페인 등 서유럽 국가와 태국, 중국, 싱가포르, 홍콩 등 아시아권 국가들 다수도 간호법을 별도 법률로 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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