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에는 미래의 전국구 스타가 없다

선동열이 무등산 폭격기로만 남았다면

‘내로남불’은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표현을 축약한 단어이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도 공식적으로 등재된 이 말은 정파와 이념의 차이와는 무관하게 한국의 제도정치권 전반에 광범위하게 만연된 위선과 이중잣대를 냉소적으로 풍자하는 관용어로 이미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돼왔다.

문제는 나에게는 한없이 관대하고 남에게는 무조건 박절한 내로남불의 비루하고 비뚤어진 행태가 이제는 직업 정치인의 경계선을 훌쩍 뛰어넘어 여야의 소위 강성 지지층을 중심으로 일반 유권자에게까지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이다. 지루할 만큼 길었던 올해 2025년 추석 연휴는 이들 강성 지지층의 내로남불이 정치인들의 내로남불 못잖게 우리나라 정치의 정상적 작동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음을 뚜렷이 확인한 계기가 되었다.

5일 추석 맞이 '스타(크래프트)' 정치인대회에서 프로게이머들과 한팀을 이뤄 게임에 나선 이준석(가운데) 개혁신당 대표와 김재섭(오른쪽) 국민의힘 의원. (사진=mbc화면 캡처)
5일 추석 맞이 '스타(크래프트)' 정치인대회에서 프로게이머들과 한팀을 이뤄 게임에 나선 이준석(가운데) 개혁신당 대표와 김재섭(오른쪽) 국민의힘 의원. (사진=mbc화면 캡처)


올해 한가위 내로남불의 향연은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이 그 문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민주당 모경종 의원,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참여하기로 예정된 <추석맞이 정치인 스타크래프트 대회>가 민주당 강성 지지층의 거센 압력과 반발에 굴복한 모 의원의 일방적 불참 선언으로 말미암아 야당 정치인들만 참가하는 형태로 규모가 축소됐기 때문이다. 모 의원의 돌연한 보이콧에도 불구하고 여러 명의 유명 전직 프로게이머들이 가세하면서 대회는 무사히 마무리됐다는 후문이다.

이준석은 1985년생, 김재섭은 1987년생, 모경종은 1989년생이다. 여야를 대표하는 1990년대생 현역 국회의원들이 동참하는 행사를 쌍수 들고 가장 반겨야 할 정당은 2030 세대. 특히 지금의 젊은 남성들 사이에서 여론조사 지지율이 죽을 쑤고 있는 집권 여당임은 굳이 두말할 나위가 없으리라.

그러나 정청래 대표 체제의 민주당은 당 지도부도, 당의 핵심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중장년 세대도 청년 세대의 지지를 얻는 데는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인다. 특정한 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장악하는 일이 폭넓은 세대의 보편적 지지에 힘입어 정권을 잡는 일보다 그들에게는 더 중요하고도 익숙한 일로 자리매김한 탓이다. 특정 세대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당권을 장악하는 일이 폭넓은 세대의 보편적 지지에 힘입어 정권을 잡는 일보다 더 중요하고 익숙한 일로 자리매김하기는 장동혁 체제의 국민의힘 당권파와 국힘의 극렬 지지자들 또한 마찬가지임은 물론이다.

모경종 의원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이다. 김재섭 의원과 견주어 당의 눈치를 더 살펴야 하는 처지다. 그렇지만 이를테면 69년생 강성 지지층이나 59년생 지도부의 심기를 부지런히 경호하는 게 89년생 초선 의원에게 부여된 본질적 역할일까? 장강의 앞물에 투항하고 동화된 장강의 뒷물은 더는 참다운 뒷물결이 아님을 모 의원은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주기 바란다. 그가 청년 대표성을 내세우며 정치를 할 수 있는 기간이 몇 년 남지 않은 연유에서다.

민주당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은 자당에 소속된 젊은 유망주를 홈경기만 뛸 수 있는 반쪽짜리 선수로 만들지 못해 안달하는 듯싶은 모습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단일대오를 구실로 선수들의 원정경기 출전을 엄격히 금지한 상태다. 비유하자면 현재의 민주당은 마치 해태 타이거스가 선동열에게 광주 무등야구장에서만 마운드에 서도록 강요하는 격이라 하겠다.

만약 선동열이 구단의 터무니없는 단일대오 방침에 군말 없이 복종해 부산에서도, 대구에서도, 대전에서도, 인천에서도, 그리고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도 공을 던지지 않았다면 그가 무슨 수로 국보급 투수가 되고, 더 나아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해 ‘나고야의 태양’으로 화려하게 빛날 수 있었겠는가? 더불어민주당에서 젊고 유능한 전국구 스타급 정치인이 가까운 미래에 출현하지 못한다면 지도부와 강성 지지층은 남을 원망해선 안 된다. 당내 유망주들의 날개를 자신들 손으로 잘라낸 데 대해 먼저 처절하게 반성해야만 옳다.

추석날인 6일 방송된 jtbc의 예능프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사진=jtbc 캡처)
추석날인 6일 방송된 jtbc의 예능프로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 중인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 (사진=jtbc 캡처)


국민의힘, 냉장고 안으로 ‘셀프 감금’되다

정청래 대표 체제에 들어와 민주당은 외연 확장을 포기한 기색이 역력하다. 50대 이상 중장년 세대가 주력인 더불어민주당 강성 지지층은 원정경기는 처음부터 아예 기권패를 각오한 채 이른바 안방 불패로 군림하면서 5할 승률만 거둬도 지극히 만족해하는 표정이다. 진보적이기는 하되 진취적이지는 못한 사실이야말로 민주당과 그 지지층이 가진 치명적 한계로 평가돼왔다.

그렇지만 집권 여당과 그 열성 지지 세력에게는 확실하게 믿는 구석이 하나 있다. 바로 국민의힘이다. 국민의힘은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의 강점기를 거치면서 확장성과 유연성과 역동성을 완전히 상실하고 말았다.

예능을 예능으로 수용하지 못하고 다큐로 받아들이면 결국에는 스스로만 우스꽝스러워지기 마련이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과 영부인 김혜경 여사가 동반 출연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의 추석 안방극장 방송을 공격하고 흠집 내는 데 당력을 총집중하고 있다시피 하다.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는 분명 중차대한 사태이다.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공무원 한 명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안타까운 사건도 벌어졌다. 그럼에도 필자는 묻고 싶다. 이 대통령과 김 여사가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하지 않았다고 또는 두 사람의 출연분을 영원히 비공개에 부쳤다고 대한민국 국가 층위에서 어떤 유의미하고 근본적인 이로움이 있겠는가?

국민의힘은 뒤숭숭한 나라 분위기를 이유로 들며 대통령 부부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맹비난했다. 그럼 나라 분위기도 뒤숭숭한데 대체공휴일까지 지정해가면서 추석 명절은 왜 쇠나? 다들 자발적으로 연휴 반납하고 밤새워 열심히 일해야 마땅하지. 국민의힘은 내란 프레임에 갇혀 허우적대는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급기야 냉장고 안에 셀프 감금을 하는 짓마저 불사할 기세다.

윤석열이 물리적 계엄령을 시도했다면, 국민의힘은 정신적 계엄령을 꾀하는 중이다. 본디 정신적 계엄령을 동원해 국면 반전을 도모하는 전략은 21세기에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민주당 계열 정당의 주특기이자 전유물이었다. 이는 청년들이 민주당을 고루하고 꽉 막힌 진보 꼰대들의 당으로 여기며 경원시하는 원인으로 작용해왔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으로부터 배울 게 없어서 걸핏하면 정신적 계엄령을 발동시켜 판세를 바꾸려는 얄팍한 술책이나 고작 모방·답습하려 하는가? 그 얄팍한 정치공학적 술책이 종국에는 역효과를 불러와 민주당이 청년들로부터 비호감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는데도….

국민의힘은 대통령 부부가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대응책을 차라리 다른 방향에서 모색하는 게 훨씬 더 나았다. 예를 들어 올추석에 대통령 부부가 나온 프로그램에 내년 설날에는 야당 당수 내외가 동일한 비중으로 나란히 출연할 수 있게끔 해달라고 방송사 측에 강력하게 요구하는 게 진정으로 지혜롭고 효과적인 반격이었다.

이러한 견지에서 판단하면 <냉장고를 부탁해>와 관련해선 개혁신당 측의 반응도 미숙하고 상투적이기 짝이 없다. 개혁신당은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에 대한 시시콜콜한 꼬투리 잡기 대신에 이준석 대표와 이 대표의 어머니도 방송의 형평성과 공정성 보장 차원에서 해당 프로그램에 출연하겠다고 방송사 측에 통 크게 제안하는 과감한 역발상을 해야만 했다.

정당마다 각자 금 그어놓고 그 안에서 방구석 여포 노릇에 열중하는 작금의 정치 현실은 정책과 비전의 부재를 따지기조차 사치스러울 지경이다. 여권과 야권을 막론하고, 거대 양당과 군소 정당을 불문하고 빈곤한 신축력과 확장력의 보충이 우선은 시급한 과제인 까닭일 테다. 진즉에 잔여량에 빨간불이 들어온 신축력과 확장력을 빨리 재충전해야 170석 여당이 전대협 식의 시대착오적 단일대오 운운하는 꼴불견을, 불법적 비상계엄에 찬성했던 야당이 예능 프로 방영 저지에 목숨을 거는 추태를 내년 추석엔 되풀이하지 않으리라.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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