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생명인 ‘중립성’ 시비 불가피

위기의 선관위 흔들 또하나의 악재

이 대통령의 측근 기용 중단해야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진=연합뉴스)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중앙선거관리위원 후보자로 위철환 변호사를 지명한 이후 보름이 지났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 9일 위 후보자를 두고 “대한변협 최초의 직선제 회장을 역임한 30여년 경력의 법조인”이라고 소개한 뒤 “선거를 부정하는 무차별적인 음모론으로부터 민주적 절차를 보호하고 국민에게 신뢰받는 선관위를 만들어갈 적임자”라고 지명 배경을 설명했다. 위 지명자를 보내 선관위를 음모론자들로부터 지키고 기관의 신뢰도도 높인다는데, 과연 그렇게 될까? 

위 지명자는 이 대통령과 가까운 사이다. 연수원 18기 동기인 데다 경기도 변협회장을 지낼 때 종종 식사를 함께 했다고 한다. 민주당과 인연도 깊다. 2017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통령후보 중앙선거대책본부 공명선거본부 공동본부장을 지냈고, 2023년에는 민주당 중앙당 윤리심판원장을 지냈다. 지난 20대 대선을 앞두고는‘전국 변호사 및 법학교수 이재명 후보 지지 선언’ 명단에 이름을 올린 바도 있다. 누가 봐도 이 대통령의 측근이며, 민주당과 가까운 인사이다. 최보윤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연수원 동기이자 식사 메이트, 대선 공개 지지 선언까지 했던 인사를 중앙선관위원에 앉히면 국민이 납득하겠느냐”며 “선관위의 중립성과 독립성을 뿌리째 흔드는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다음 달 1일 위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야당의 공세가 예상된다. 

선관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은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이다. 이 독립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무너지면 선관위가 관리하는 모든 선거의 결과가 의심을 받게 된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제5의 헌법기관의 존립 기반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중앙선관위는 대통령이 임명하는 3인과 국회에서 선출하는 3인,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3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이들 중 호선해 위원장과 상임위원을 각각 1명씩 뽑는데, 상임위원은 보통 대통령이 임명하는 위원이 관행적으로 맡아왔다. 상임위원은 3년 임기 동안 대법관이 겸직하는 중앙선관위장을 보좌하고 사무총장을 통해 사무처의 사무를 감독한다. 전국적으로 3000명에 달하는 사무처 직원들을 총괄지휘하는 사무총장과 더불어 선관위를 움직이는 양대 실력자인데,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점에서 힘이 실리게 된다. 

중앙선관위 상임위원은 과거에도 몇차례 논란을 빚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명한 헌법학자 출신 강경근은 온갖 기행으로 선관위에 상처를 입혔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해주 전 선관위 기획조정실장을 상임위원으로 지명해 선관위 중립성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조 상임위원은 선관위에서 퇴임한 후 문재인 캠프에서 일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 이것만으로도 야당의 거센 비판에 직면했고, 상임위원 3년 재임 내내 중립성 시비에 시달렸다. 문 대통령은 장관급 자리 하나 챙긴 것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인선을 하고 말았다. 

여당에서는 위 후보자 지명이 조 전 상임위원의 경우와 다르다고 주장한다. 위 지명자는 우선 조 전 상임위원처럼 선관위 출신이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민주당의 당적을 가진 적이 없으니 중립성이 시비의 대상이 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선관위원의 중립성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실제로 중립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중립적으로 비쳐지는 것도 그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이재명 지지 선언을 하고, 민주당의 당직을 수행한 점만으로도 위 후보자에 대해 중립성 시비가 제기될 여지가 충분하다. 강훈식 비서실장의 “(위 후보자가)음모론을 막는다”거나 “(선관위의)국민신뢰를 높인다”는 말은 듣기 민망할 정도이다. 중립적 인사들이 노력을 기울여도 못한 일을 중립성 시비에 제기된 위 후보자가 무슨 수로 이뤄낸단 말인가. 

최근 헌법학자들은 대통령과 국회와 대법원장이 3명씩 임명 또는 지명해 선관위를 구성하는 현행 방식도 선관위의 중립성을 담보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대통령 3명에 더해 국회 다수당이 또 뽑고,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또 3명을 선관위원으로 추천하면 실제로는 위원 9명 중 7~8명이 대통령의 영향 아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대통령 지명 몫을 줄이자는 제안도 이미 나와 있다. 게다가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면서 선관위의 중립성이 더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런 때에 이 대통령이 선관위의 중립성을 강화하기는커녕 뒷전으로 밀어놓는 인선을 해 몹시 유감스럽다. 이 대통령이 선관위 중립성을 가벼이 본 게 아닌가 우려된다. 대통령이 상임위원을 통해 선거 관리에 이득을 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 어느 정도 입증됐다. 최근 임기를 마친 김필곤 전 전상임위원도 자신을 지명한 윤석열을 대변하고자 무던히 애를 썼지만 아무 일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지난 4월 갤럽 조사 결과, 선관위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상승한 것으로 나왔다. 윤석열 탄핵에 반대하는 응답자들의 90%가 선관위를 신뢰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57%의 응답자가 신뢰를 보냈다. 비교대상 6개 기관 중 헌법재판소 다음으로 높다. 위 지명자 인선이 발표된 후 선관위 직원들 사이에서 걱정의 한숨소리가 쏟아진다. 지난 몇년 동안 복합 위기의 터널을 겨우 빠져나오고 있던 터에 악재가 더해졌다는 것이다. 인사가 만사인데, 이 대통령에게서 가끔 이상한 인사가 튀어나온다. 흠결없는 인사들이 있을텐데 왜 굳이 위 후보자를 지명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런 인사가 누적되면 이 대통령에게 큰 부담이 된다. 이 대통령이 되돌아봐야 할 일이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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