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수괴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 관전법

윤석열과 김건희 부부를 위한 무수한 가정들

김건희씨가 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공동취재단)
김건희씨가 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고 귀가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공동취재단)

레드 카펫은 없었다

마스크도 없었다. 휠체어도 없었다. 그는 화장기 옅은 얼굴 전체를 선명하게 드러낸 채 당당하게 또는 태연하게 자기 발로 걸어서 민중기 특별검사팀의 사무실이 입주해 있는 서울 광화문의 KT 빌딩 2층으로 향했다. 검은색을 즐겨 입는 평상시의 옷차림 습관은 우리나라 대통령 배우자로서는 헌정 사상 최초로 피의자 신분이 되어 대중의 시선 앞에 수치스럽게 서야만 하는 이날도 예외가 아니었다.

멀게는 이른바 조국 사태로부터 시작된, 가까이는 유튜브 채널 '서울의소리'와의 7시간 통화 녹취록 공개 파문으로부터 비롯된 ‘김건희 게이트’는 전직 대통령 윤석열의 부인 김건희씨가 2025년 8월 6일 수요일 오전 10시 10분이 조금 지난 시간에 특검 사무실에 공개 출석함으로써 종착역에 거의 다다랐다.

비에 젖은 콘크리트 바닥 위를 걷는 김건희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어쩌면 그는 머릿속으로 내로라하는 영화제에 초대손님 자격으로 참석하는 유명 여배우들처럼 가슴골이 깊게 파인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서 붉은 융단(Red Carpet) 위를 사뿐사뿐 걸어가는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현실 부정의 순간은 김건희씨에게 찰나도 허락되지 않았다. 웬만한 시상식 버금가게 이곳저곳에서 연달아 현란하게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가 김건희가 오랜 회피 끝에 마침내 정면으로 맞닥뜨린 잔인한 현실을 냉혹하게 일깨웠기 때문이다.

김건희의 사실상 장기간의 도피 행각은 남편 윤석열이 특수부 검사로, 박영수 특검팀의 수사팀장으로, 검찰총장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으로 휘둘렀던 막강한 공권력 덕분에 순전히 가능했다. 신정아 전 동국대학교 교수도,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금은 최서원으로 이름을 개명한 최순실 씨도, 심지어 정경심 전 동양대 교수도 “난 네가 기뻐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지독하다 못해 아예 광기 어리고 극단적인 아내 사랑으로 충만한 힘센 남편을 두지 못한 탓에 고통스러운 영어의 생활을 했을지 모를 노릇이다.

김건희씨에게 현재 적용된 범죄 혐의는 무려 16가지에 달한다. 주가 조작으로 출발해 금품 수수를 거쳐 공천 개입까지, 이쯤 되면 가히 ‘범죄의 만기친람’ 수준인 셈이다. 필자가 융통성 있는 글쟁이였다면 김 씨를 특검 사무실로 인도한 16개 혐의 전부를 일일이 나열하는 방식으로 영리하게 칼럼의 분량을 채웠을 터이다.

그런데 나는 김건희의 특검 출석 광경에서 가수 겸 작곡가 박진영이 왕년에 불렀던 인기 히트곡  '그녀는 예뻤다'가 하필이면 주책맞게 떠올랐다.

그렇다. 12살 연하의 띠동갑 반려자 김건희는 윤석열에게는 너무 예뻤다. 하늘에서 온 천사였다. 문제는 JYP의 원래 노래 가사와는 달리 김건희가 윤석열을 사랑하지 않았을 확률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김건희가 윤석열을 진심으로 아끼고 존중하고 사랑했다면 건강상태도 별로 좋지 않을 늙은 술고래 남편을 헤어나기 힘든 파멸의 구렁텅이로 비극적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게 뻔하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돌이켜보면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과 16개 범죄 혐의의 피의자 김건희의 관계만큼 무궁무진한 가정법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한국 사회에서는 드물 게 확실하다.

만약에 김건희가 20대 대선 국면에서 약속했던 대로 내조에만 꾸준히 전념했다면, 만약에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요구한 바처럼 김건희가 22대 국회의원 총선거 직전에 제대로 된 대국민 사과를 했다면, 만약에 이창수 지검장 체제의 서울중앙지검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굴욕적인 출장 조사 대신에 김건희를 정식으로 검찰청사에 소환하여 엄정하게 수사했더라면. 이제는 부질없는 가정법의 소재가 돼버린, 윤석열 정부의 운명을 판가름한 결정적 장면들이다.

윤석열은 시대착오적 친위 군사쿠데타를 일으켰다가 감옥에서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처지로 전락했다. 김건희 또한 조만간 법원에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전직 대통령 부부가 동시에 옥중에서 콩밥을 먹는 초유의 부끄러운 진기록을 남길 것으로 보인다.

김건희씨가 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공동취재단)
김건희씨가 6일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웨스트에 마련된 민중기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사진공동취재단)

‘속옷 농성’은 김건희를 띄우려는 윤석열의 큰 그림이었나

그럼에도 김건희는 특검 포토라인에 서는 당일조차 윤석열과 비교해 결과적으로 돋보였다. 여기에는 윤석열이 구치소 수감 이후 보여준 찌질하고 비루한 행태들의 공이 컸다.

첫째로 시종일관 뻣뻣하고 오만하던 남편과는 정반대로 김건희는 속마음이야 어떻든지 간에 일단은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과했다.

둘째로 취재 기자들이 던지는 집요한 질문에 기분 나쁜 표정을 노골적으로 지으면서 일절 입을 열지 않던 윤석열과는 다르게 김건희는 “저같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로 운을 떼는 짤막한 답변을 했다.

셋째로 법기술자 윤석열의 주특기였던 진술거부권, 즉 묵비권을 김건희는 행사하지 않았다.

윤석열의 추레한 몽니와 볼썽사나운 뻗대기는 아내를 상대적으로 우아하고 품위 있게 보이도록 도우려는 의도적 행동이었을까?

특검 수사에 임하는 자세만 고려하면 윤석열은 잡범 같았고, 김건희는 국사범처럼 느껴졌다. 김건희와 윤석열 가운데 누가 몸통이고 깃털이었는지, 누가 주인이고 누가 노예였는지, 누가 명령하는 상급자이고 누가 지시에 복종하는 하급자인지 그 서열과 위계와 주종관계가 뚜렷이 감지되는 대목이었다.

윤석열이 대통령 당선인 신분으로 한껏 으스대던 무렵의 일화를 글의 말미 부분에서 잠깐 소개하는 것으로 졸필의 결론을 갈음하련다.

김건희를 대선운동 기간 비공식적으로 수행했던 어느 지인이 윤석열 정부의 국정운영이 성공하려면 어떤 일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 내 의견을 물었다. 나는 5년 임기 동안 영부인을 강동구 명일동 친정으로 돌려보낸 다음 대통령 내외가 서로 전화통화도, 문자메시지 교환도 하지 말고 한 달에 한 번쯤 만나는 것으로 회포를 달래라고 진지하게 조언했다. ‘김명신’으로 살았던 과거를 흔적 없이 지우려고 발버둥 치는 김건희의 그릇된 욕망과 과도한 허영심이 윤석열 정권을 치명적 위기로 몰아넣을 게 불 보듯이 자명한 까닭에서였다.

김건희는 명일동 친정으로 물론 예상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때의 잘못된 선택과 판단으로 말미암아 김건희는 친정집으로 영영 돌아가지 못할 수도 있다. 윤석열 역시 남은 인생에서 다시는 따뜻한 집밥을 먹지 못하리라.

‘국정의 사유화’와 ‘권력의 개인화’ 등의 점잖고 거창한 학문적 담론은 이 어리석고 파렴치한 커플에게는 지나치게 사치스러운 분석 틀일 테다. 아내는 남편을 철저히 도구로만 이용했고, 남편은 진정으로 아내를 위하는 길이 뭔지를 이해할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그 처절한 종말의 후과가 두고두고 후세의 반면교사로 자리매김해 기본적인 공사 구분도, 최소한의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하는 권력자 부부가 이 땅에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기를 바란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내용을 입력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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