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숲'을 찾아①]
며칠동안 이어지는 장대비의 세례속에 루틴 같은 일상을 떠나고 싶었다.비가 잦아든다는 예보를 듣고 숲 속을 산책하고, 또 책을 읽고 대화도 나눌 수 있는 교집합을 만족시킬 공간을 떠올려 보았다. 한 곳이 떠올랐다.
오동숲속도서관.
전철과 마을버스를 이어 타면 비교적 쉽고 빠르게 도서관에 닿을 수 있지만, 비 예보가 없어 처음 가는 동료를 위해 숲 속 데크길과 산 정상을 거쳐 가는 에두른 루트를 선택했다.
보슬비를 헤치며 지도앱을 따라 익숙하지 않은 골목길과 건강계단을 오르고 숲속 데크길을 헤매다 마침내 초록의 숲 속에 고요히 자리잡고 있는 오동숲속도서관에 도착했다.
바다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등대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휴~우.
이 도서관은 건물 전체가 목재와 유리로 지어져 있어, 내부 어디서든 사면의 숲을 바라볼 수 있다. 창가에 앉아도, 중앙에 앉아도, 나무와 바람이 함께 숨 쉬는 풍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이 건축물의 아름다움은 목조건축대전상, 건축가협회상, 서울시 건축상 최우수상 등 화려한 수상 경력으로도 증명된다.
창가에 자리잡고 책을 보다 숲과 나무를 보다 잠시 눈을 감는다. 땀과 비에 젖은 몸과 마음이 고요해진다. 재즈피아노의 선율이 비와 바람에 잔잔하게 흔들리는 숲속 나뭇잎과 어우러져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그려낸다.
나에게 도서관은 겨울 새벽 남산도서관을 들어가려는 긴 줄과 그 긴 줄의 기다림 끝에 들어간 도서관 지하식당에서 먹었던 뜨끈한 우동의 기억으로 시작된다. 지금과 같은 스터디 카페나 도서관이 많지 않던 중학생 시절, 선배들을 따라 방학때면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벽 첫 버스를 타고 남산 도서관으로 향하곤했다.
해외 근무 후 한국에 돌아와 한국 땅을 모른다는 반성으로 시작한 걷기 여행은 남도의 땅끝마을에서부터 남해, 제주도에 이르기까지 많은 곳으로 이어졌다. 그 여정마다 도서관을 찾았고, 그곳에 머무는 동안 그 지역의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고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도서관은 내 여행 루틴의 일부가 되었다.
이 땅 곳곳을 다니며 그 마을의 체취와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마을도서관을 만날 수 있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나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이 도서관 시스템과 인프라를 보며 세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지난 3월 유발하라리의<AI 시대, 인간의 길>이란 주제의 연세대 강연에 참석한 일이 있다. 강연은 그의 최근 저서 <넥서스(Nexus)>의 주제를 화두로 진행됐다.
지금까지 인류가 발견하고 발전시킨 기술들은 인간의 삶을 위한 도구(Tool), 인간의 의지와 제어에 의해 작동하는 도구였지만AI는 스스로 판단하고 실행까지 하는 ‘에이전시(Agency)'라는 그의 말이 생생하다. 유발 하라리는 AI의 영향이 어디까지 일지 예측할 수 없다는 두려움을 얘기했다. AI시대가 한편으론 섬뜩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는 AI시대에 '인간의 길'을 가기 위한 조건으로 마음의 유연성, 끊임없는 학습을 통한 지적 충전, 사람과의 소통을 위한 감정적 역량, 예술과 운동을 통한 신체적 역량 등을 꼽았다.
몇 가지 키워드와 지시문을 주면 한편의 글과 신문기사 그리고 시까지 써주는 AI의 지적 역량 앞에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나는 그 무엇과 어떻게의 답을 지혜의 곳간인 도서관과 그 속의 보물인 책에서 찾으려 한다. 누군가는 AI로 인해 지식의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지식을 쌓아온 인간의 지혜는 끝나지 않았다. 그 지혜의 숲이며 곳간인 도서관에서 우리는 호흡하고 사유하고 우리 '인간의 길'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앨빈 토플러가 오래전 얘기한 정보화 혁명과 디지털 혁명의 제3의 물결을 넘어 AI라는 또 다른 물결, 아니 물결이 아닌 폭풍을 품은 거센 파도가 몰려오고 있다.
얼마전 방송 대담프로에서 어떤 교수가 “AI는 시니어에겐 조수이지만, 주니어에겐 적수가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고개가 끄덕여졌다. 여기서 시니어란 단지 나이가 아니라 경험과 인사이트, 그리고 지혜를 뜻한다고 생각한다.
전 세계 도서관과 같은 ‘지식의 창고를 학습한 AI가 진정한 빛을 발하는 순간은 그 인간의 지혜와 경험, 인사이트가 더해질 때일 것이다. 인간은 그 지헤와 인사이트로 AI에게 종속되지 않고 인간의 길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오동숲속도서관과 같은 도서관이 하라리가 얘기한 AI시대 인간에게 있어야 할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지혜의 곳간인 도서관과 책을 품고 있으면서 숲 속을 거닐며 바람과 나무와 이야기를 나누는 마음의 산책과 물리적 산책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오동숲속도서관. 인간의 길을 걸어가게 할 지혜를 품고 있는 장소가 아닐까.
도서관에서 내려와 월곡역 근처에서 맛본 꿀맛 보리밥 청국장 정식과 산미 깊고 깔끔한 핸드드립 커피는 비와 땀에 젖은 수고를 충분히 보상해주고도 남았다.
멀리 떠날 수 없는 당신에게 이 무더운 여름 오동숲속도서관은 마음과 몸을 쉬어갈 수 있는 나만의 케렌시아가 되지 않을까? 이번 주말 그곳으로 떠나 보시라.
▶ 오동숲속도서관 가는 방법
① 빠르고 덜 걷는 루트: 6호선 월곡역 3번 출구로 나와 월곡시장에서 마을버스 10번 타고 장위중학교 근처 정류장 하차후 도보 5분
② 힐링 산책 코스: 6호선 상월곡역 1번 출구에서 도보로 월곡초등학교 거쳐 오동근린공원 입구까지 20분 소요→ 오동근린공원에서 숲속데크길을 10분 걸어 월곡산 정상 너럭바위까지 10분 소요→ 너럭바위에서 경치 감상 후 바로 옆의 데크길 오동숲속도서관 안내판을 보고 데크길로 10분 산책 후 오동숲속 도서관 도착
▶ 근처 맛집과 커피 맛집
① 밥집: 장보리 월곡 본점
- 장보리 정식 13,000원, 청국장과 각종 나물, 제육볶음, 세련된 공간과 깔끔하고 정갈한 음식(평점 4.5)
- https://naver.me/Fy2WYpnl
② 커피 맛집: Boys From Mars
- 산도 깊은 깔끔한 핸드드립 아메리카노
- https://naver.me/FgiaLpxf
고규영은 글로벌 마케팅 전문가다. LG전자, LG필리스-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했다. 지난 30년간 B2B와 B2C 시장을 아우르며 시장, 고객, 회사의 마케팅 전략 수립과, 글로벌 영화사, 유명아티스트, 메가인플루언서, 글로벌 유통 등과의 마케팅 협업을 해왔다. 기업 퇴임후엔 전문직 공무원으로 봉직하며 기업 홍보경험을 정부기관에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현재는 기업 및 공공기관 대상으로 마케팅과 AI 관련 강의를 하며 뉴스버스에 기고 활동을 하고 있다. 공저로 <인생후반전, AI와 동행> <AI와 함께한 두 번째 인생노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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