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은 선원을 유혹 배를 침몰시키는 '세이렌의 노랫소리'

국힘, 원칙없는 패배와 원칙있는 패배의 갈림길

국민의힘 윤상현, 강승규 의원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탄핵심판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상현, 강승규 의원이 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윤석열 탄핵심판 각하 촉구 릴레이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의 이기적인 메시지

‘이기적인 몸매의 소유자’라는 표현이 텔레비전 방송 예능 프로그램과 여러 언론매체의 연예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한동안 널리 유행한 적이 있었다. 대중의 찬사와 부러움을 자아내는 늘씬한 몸매를 가진 미모의 여성들을 묘사할 경우 주로 쓰이는 상투적 수식어였다.

현재는 타인의 외모에 관한 무례하고 무분별한 품평으로 여겨져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철퇴를 맞은 상황이다. 해당 표현이 최근에 눈에 잘 뜨이지 않는 현상에는 아마도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가 적잖은 영향을 주었을 성싶다.

그럼에도 내가 이 한물간 유행어를 굳이 다시 꺼내든 까닭은 필자와 윤석열 대통령을 하나로 묶는 거의 유일한 공통분모가 ‘이타적인 몸매’를 보유했다는 데 있기 때문이다. 두툼한 뱃살이 유난히 특징적으로 도드라지는 우리 두 사람의 체형을 접하고서 질투나 시기심이 발동할 인간은 여간해서는 없을 게 분명하다.

문제는 윤석열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이 이타적인 몸매와는 정반대로 무척이나 이기적인 메시지를 시종일관 발신·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석열은 법원의 석연치 않은 구속취소 결정과, 검찰의 역시나 석연치 않은 즉시항고 포기에 힘입어 2025년 3월 8일 토요일 오후 의왕 구치소에서 석방될 수 있었다.

구치소 문을 유유히 걸어 나온 윤석열이 법률대리인단을 통해 발표한 이른바 입장문에는 진심 어린 후회와 반성의 빛이 예상대로 전연 발견되지 않았다. 가뜩이나 심각했던 우리 사회의 정치적 갈등과 이념적 분열이 작년 12월 3일에 돌연히 선포된 비상계엄으로 말미암아 내전 직전 단계로까지 악화한 데 대한 일말의 양심의 가책조차 윤석열은 내비치지 않았다.

윤석열은 비상계엄 선포부터 시작해 국회에서의 계엄해제 결의와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거쳐 윤석열 본인의 구속수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그와 부하들이 벌인 모든 불미스럽고 불법적인 행동이 초래한 결과물들을 “대통령의 헌법상 권한에 따라 공직자로서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하다가 겪는 고초로 태연하게 정당화했다.

그러면서 윤석열은 “그동안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들, 그리고 우리 미래세대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라고 했다. 열혈 지지층인 극우세력을 더욱더 단단히 결집하기 위해 선동과 갈라치기에 한층 열중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이는 나라가 결딴이 나든, 경제가 폭삭 망하든, 민주주의가 수십 년을 후퇴하든 하등 개의치 않겠다는 얘기였다. 대한민국 역대 최고 통치자들 가운데 저 혼자 살아남겠다는 생존욕망으로 가득 찬 이기적인 메시지를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쉬지 않고 언죽번죽 내놓는 위정자는 20대 대통령 윤석열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으리라.

윤석열은 국민을 계층과 지역과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장벽을 뛰어넘어 고루 어울리게 하는 일에는 애초부터 의지와 관심이 없었다. 그의 대통령 취임사에는 ‘통합’이나 ‘화합’이라는 두 단어가 놀랍게도 단 한 차례도 언급돼 있지 않다. 그는 특정한 지역과 종파와 정파만의 우두머리가 되기로 처음부터 확고하게 작심했던 셈이다.

필자가 정치 컨설턴트의 한 명으로서 진짜로 경악하고 전율하는 지점은 따로 있다. 윤석열이 그를 대선 후보로 선출하고, 종국에는 대통령으로 만들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가병(家兵) 노릇에 여념이 없는 집권 여당 즉 국민의힘의 정권 재창출에 철저하게 무심하고 무신경하다는 대목이다.

헌법재판소가 탄핵안을 인용해 윤석열을 대통령직에서 파면하면 작금의 탄핵 시국은 조기 대선 국면으로 곧바로 순식간에 전환된다. 나는 큰 이변이 없는 한에는 ‘2강 1약’의 대선 구도가 펼쳐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국민의힘의 대선주자로 뽑힐 인사가 2강이고, 사실상 추대 형식으로 개혁신당의 대통령 후보로 확정될 이준석 의원이 1약이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의원 등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기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김기현, 추경호 의원 등이 지난 1일 서울 여의대로에서 세이브코리아가 연 '3·1절 국가비상기도회'에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 기각을 촉구하며 기도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3후보 이전에 기호 0번 후보가 있었으니

그렇다면 이번 2차 조기 대선은 3파전으로 치러지는 것일까? 아니다. 4파전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는 기호 0번 후보가 수시로 출마해왔다. ‘기호 0번’이 뭐냐고? 선관위가 인쇄한 투표용지 위에 공식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유권자들의 인식 속에서는 비공식적으로 엄연히 존재하는 후보자를 가리킨다. 기호 0번 후보의 거취와 동향은 대선 승패에 중대한 파장을 미치곤 했다. 2002년의 16대 대선에서는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후보와의 후보 단일화를 선거 전날 전격 파기한 정몽준이 기호 0번 후보였다. 노무현은 ‘정몽준의 난’을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습한 덕분에 대통령에 무사히 당선될 수 있었다.

2007년의 17대 대선에서는 박근혜가 기호 0번이었다. 박근혜는 그를 경선에서 눌렀던 이명박 진영에 세간의 예측과 달리 순순히 협조했다. 이는 이명박이 수월하게 대선에서 이긴 주요한 원인이 되었다. 2012년의 18대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 이명박이 기호 0번에 깃발을 꽂았다. 이명박은 박근혜를 인적, 물적으로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박정희 딸의 대선 승리를 도왔다.

반면, 기호 0번을 제대로 관리·제어하지 못해 대선에서 패배한 경우도 빈번하다. 이회창은 1997년의 15대 대통령 선거에서 기호 0번 김영삼과 싸우다 진이 다 빠졌다. 경선에 불복해 독자 출마를 강행한 이인제는 기호 0번 김영삼의 연장이었다.

2007년 대선에서는 현직 대통령 노무현이 기호 0번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노무현을 상대로 계승과 차별화 사이에서 갈피를 못 잡고 갈팡질팡하다 MB에게 참패했다. 이때 기호 0번 노무현의 선대본부장이 유시민이었음은 물론이다. 그게 아니었으면 “한나라당이 정권 잡아도 나라 안 망한다”는 유시민의 저 악명 높은 극언이 왜 나왔겠는가?

2012년에는 안철수가 기호 0번이 되어 문재인을 괴롭혔고, 1차 조기 대선이었던 2017년의 19대 대선 정국에서는 홍준표와 안철수, 그리고 유승민이 서로가 서로에게 기호 0번이 되어 공멸을 자초했다. 정상적인 대통령 선거로 진행된 2022년의 20대 대선에선 국무총리를 역임한 이낙연이 현직 대통령 문재인의 묵인 아래 기호 1번 이재명이 분루를 삼키도록 이끄는 기호 0번 구실을 결과적으로 톡톡히 해냈다.

2024년에 막이 오를 2차 조기 대선의 기호 0번 윤석열은 역대 최강의 기호 0번이다. 그는 이제까지의 기호 0번들을 모조리 통틀어 가장 열성적이고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와 동시에 윤석열은 사상 최악의 기호 0번 후보자이기도 하다. 친정이자 소속 정당인 집권당의 대선 후보에게 한없는 고통과 번민을 안겨줄 게 뻔한 탓이다.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기호 0번 윤석열과 후보 단일화를 추진하면 중도층 유권자 표가 거의 전부 떨어져 나간다. 반대로, 국민의힘 후보자가 기호 0번 윤석열과의 단일화를 거부하면 극우층이 대거 기권한다. 더욱이 윤석열을 대통령 선거전에 나설 국민의힘 후보의 계륵으로만 여기는 건 그에 대한 터무니없는 과소평가일지 모른다. 왜냐? 윤석열은 국민의힘을 통째로 볼모로 잡고서 지상 최대의 인질극을 선보인 세계 정치사에 둘도 없을 정치적 납치범(Political Hijacker)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은 이와 같은 곤혹스러운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해결해야 할까? 냉철한 정세분석과 원리원칙에 충실한 교과서적 결단에 출로와 정답이 있다.

올해 조기 대선에서 기호 0번 윤석열과 단일화를 하든 하지 않든 간에 국민의힘 후보자는 승리를 기대하기가 객관적으로 매우 어렵다. 윤석열과 단일화해 원칙 없는 패배를 하느냐? 윤석열 측의 집요한 후보 단일화 요구를 과감하게 뿌리치고 원칙 있는 패배의 길을 가느냐? 해답은 명확하다.

국민의힘은 긴 호흡과 안목으로 원칙 있는 패배의 길을 가야만 한다. 보수정치를 마구 좀먹고, 국가의 운명을 총체적 위기에 빠뜨린 윤석열 부류의 극우 맹동주의자들을 향해 단호하게 결별을 선언한 다음, 착실하고 당당하게 자강을 이뤄야 대한민국의 보수가 민심의 지지와 여론의 신뢰를 하루라도 빨리 되찾을 수 있다.

윤석열의 이기적인 메시지는 선원들을 유혹해 배를 침몰시켰다는 고대 그리스 신화 속 세이렌의 노랫소리와 마찬가지이다. 당장에는 귓가에 달콤하게 들릴지언정 그 목소리에 계속 이끌린다면 종국에는 완전한 패망과 파멸이 당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국민의힘이 윤석열의 이기적인 메시지의 의도와 실체를 속히 깨달아 보수의 본래 가치이자 오래되고 검증된 강점인 합리와 이성을 너무 늦기 전에 회복하기 바란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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