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본인 말대로 “진보적 요소는 극히 적다”
‘보수 양당제’ 한국 정치, 양극화 아닌 일극화
좌파 공간 보장하는 다당제 정치개혁 실천해야
“나는 보수주의자다. 내가 생각하는 것 중에 진보적 요소가 있지만 그것은 극히 적다.”(2016. 2. 25. 시사저널) “내가 진짜 보수.”(2016. 12. 14. 인천대학교 강연) “저더러 진보좌파라 하는데 진보가 아닌 진짜 보수.”(2016. 12. 10. 성균관대 경영전문대학원 EMBA 총학생회 주최 특강)
“나는 정확히 말하면 진보가 아니다. 지금 민주당이 진보성을 강화하는 것보다 제대로 된 보수가 돼 ‘가짜 보수’를 밀어내야 한다.”(2020. 11. 12. 서울신문) “나는 언제나 시장주의자다.”(2021. 8. 24. 조선일보) “난 시장주의자다.”(2021. 9. 10. 시사저널) “저는 사실 거의 보수에 가까운 실용주의자입니다.”(2024. 9. 29. MBN)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누차에 걸쳐 보수를 자처해왔다. 최근에 새삼 파격 선언을 한 것이 아니다. 이재명의 정책 중 가장 진보적인 것은 성남시장 시절의 무상 산후조리원, 무상 교복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보편 복지는 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한나라당-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정부 시절 무상보육이 도입되기도 했다.
이재명은 보편 증세, 페미니즘, 탈원전 등 여러 진보적 의제들과 거리가 멀다. 조세·재정 정책에서 이재명은 유승민보다 더 보수적이다. 대기업 증세론에 머물렀고 그 밖에는 감세론을 자주 펴다가 금융투자소득세 폐지까지 했다. 친명 성향 인사들의 페미니즘 공격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회 연설에서는 탈석탄, 탈LNG를 천명하면서도 원전은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을 애써 진보로 치장하려면 진보가 아닌 것을 진보라고 우겨야 할 지경이다. 검수완박류 검찰개혁은 전세계 어느 진보파도 하지 않은 독창(?)적 정책이다. “중국에도 셰셰” 역시 진보가 아니다. 예컨대 독일은 진보(사민당, 녹색당)가 보수(기민련)보다 더 친미반중적이다.
대장동 개발은 이재명이 진보가 아니라는 선명한 증거다. 화천대유 등 사기업의 막대한 수익, 지하화를 거부하고 쌓은 고압 송전탑, 임대주택을 접고 이를 현금으로 바꿔 1/n로 배분하는 일은 진보적 개발에서 있을 수 없다. 전국민 지원금 역시 진보도 보편 복지도 아니다. 부잣집 학생이 무상급식한다고 해서 빈민층 학생이 먹을 밥이 줄지는 않는다. 반면 어려운 사람에게 더 줄 수 있는 돈을 중산층 이상에게 나누는 것은 상후하박이다.
그동안 이재명을 ‘진보좌파’로 보이게 만든 것은 두 부류, 국민의힘과 이재명 팬덤이다. 국민의힘은 진보좌파를 이재명에 엮는 연환계를 구사해왔다. 진보좌파 전체를 공격하는 전략이자 극우로 고립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었다. 이재명 팬덤 사이에서는 “우리가 정의당보다 더 진보적”이라는 언급이 곧잘 나왔다. 노동자 권리 신장이나 소수자 차별금지를 두고 툭하면 ‘나중에’를 외치면서도 주문만 외워온 것이다.
이재명이 진보정치에 대한 부당 점거를 푼다면 왜곡된 한국 정치 지형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 논란으로 정치권에는 벌써부터 묘한 활력과 해방감이 감돈다. 툭하면 ‘수박’, ‘국힘 2중대’ 같은 공격을 받아온 비명계와 민주당 바깥 좌파가 특히 그렇다. “토마토가 수박 욕한다”고 반격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된 이상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진보정당을 상대로 꺼내던 사표론 겁박도 영구 폐기하는 게 좋을 것이다.
다만 우려되는 것은 ‘보수 양당제’로 인한 한국 정치의 심각한 보수화다. 한국 정치는 진영간 적대만 격렬해졌을 뿐 정책적 양극화와는 무관하다. 진짜 문제는 ‘보수적 일극화’다. 이 상태에서 민주당을 보수정당으로 굳히고 양당제도 유지하는 것은 독재 정권 이상의 ‘진보 궤멸’ 시도다.
민주당이 한국 정치 발전에 이바지하려면 두 길 중 하나를 가야 한다. 첫째, 양당제를 유지하겠다면 민주당을 국민의힘과 차별성이 큰 진보정당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단, 이 시나리오는 국민의힘을 구석으로 몰 수는 없다. 국민의힘 수준을 보면, 그들이 ‘따라서 진보화’되는 것도 불가능해 보인다. 보수 선언을 한 이재명과 주류도 이런 경로를 수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둘째, 다당제를 여는 길이 있다. 국민의힘을 구석으로 몰려면 민주당 왼쪽에 덩치 있는 정당이 있어야 한다. 이재명은 국회 원내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선거제도 개혁을 아예 언급하지 않았다. 오른쪽에 앉아서도 왼쪽을 거저 먹으려는 것인가. 위성정당 방지법과 대선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라.
끝으로 근래 이 대표가 내놓은 확장책은 별 효과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다. 중도층에서 민주당이 국민의힘을 압도하는 것은 국민의힘이 윤석열당이어서일 뿐이다. ‘반도체 연구개발직 주52시간제 예외’는 인력 충원도 처우 개선도 하기 싫은 자본이 노동을 쥐어짜는 정책임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렸다. 상속세 일괄공제 한도 상향(5억원→8억원)은 수혜자가 극소수다. 혹시 ‘중도층=중산층(그것도 상위 중산층)’이라 착각하고 있는가.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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