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옳다’·‘내가 과학’이라는 아집 접고 '열린 대화' 나서야
한 곳만 보며 집단적 사고 오류에 빠진 참모진 물갈이 필요
서로 다른 두 개의 상자 중 한 개의 상자에 구슬이 들어있다. 상자 하나는 지구에 있고, 다른 상자는 몇백만 광년 떨어진 안드로메다 은하에 가져다 놓았다고 치자. 지구의 상자를 열어보니 구슬이 들어 있다면, 안드로메다에 있는 상자에는 구슬이 없다는 것이 바로 결정된다. 이것이 코펜하겐 학파를 이끈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 양자론의 핵심이다. 세상은 결정된 바가 없이 확률에 의해 움직이는데, 우리의 관측에 의해 사실이 드러나면 그때 결정된다는 것이다. 상자가 실재하는지, 그리고 원래 어디 있는지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며, 나오는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고 보어는 주장했다.
이 이론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정면 반박한다. 1927년 10월, 인류 역사상 다시 없을 것이라는 물리학자들의 그 유명한 모임(참석자 절반이 넘는 17명이 노벨상 수상) ‘제5차 솔베이 회의’에서였다. 아인슈타인은 사람이 상자를 열어보는 행위에 따라 물리적인 실재가 영향을 받는다는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떻게 지구에 있는 상자의 상태가 몇백만 광년이나 떨어진 상자의 상태를 즉각 결정하도록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로 확률에 의해 세상이 움직인다는 이론을 거부했다. 아인슈타인은 매일 남들이 없는 회의장 밖으로 보어를 불러내어 진심을 다해 자신이 옳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의 배려심 넘치는 설득도 3년 후 개최된 6차 솔베이 회의를 계기로 중단된다. 보어와 그 추종자들이 상대성이론을 이용해 자신의 주장을 재반박하자 기분이 상한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이들과 인연을 끊다시피 한다. 하지만 이후 50년동안 물리학자들이 치열하게 논쟁을 벌인 결과 ‘두 상자가 서로 연관되어 있으면, 어떤 한 상자가 받는 영향은 공간을 초월하여 즉각 다른 상자에 전달된다’는 이론이 받아들여졌다. 양자역학의 타당성이 확인된 것이다. (YTN 사이언스 참조)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처음으로 20%로 떨어졌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지지율이 10%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여전히 자신이 옳은 길을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자신이 하는 일은 과학이고, 문재인 정부 등 다른 쪽이 한 일은 비과학이라고 생각한다. 의정 갈등에 기름을 끼얹은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도, 탈원전 정책 폐기도 다 과학적으로 옳은 선택이라고 믿고 있다. 그리고 원전 수주를 성사시키기 위해 체코로 날아갔다. 하지만 선진국 중 우리처럼 원전을 확대하면서 신재생 에너지에 인색하게 투자하는 나라는 없다. 여기에 김건희 여사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이번엔 김 여사가 국회의원 선거 공천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런 데도 윤 대통령은 의혹을 부인하기 바쁘다. 있는 것조차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비과학적인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추석 때 만난 시민들의 윤 대통령에 대한 감정은 분노를 넘어서 있었다.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 방식을 전환하지 않으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물었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정책을 제시하고 설명하면서 가면 되는데, 왜 아직까지 대선 치르듯 야당과 싸우고 있는 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네이처 지가 “현대 물리학에서 가장 날카로운 통찰력을 지닌 사상가”라고 상찬했던 양자물리학자 데이비드 봄(David Bohm·1917~1992)은 저서 <대화란 무엇인가(에이지 21)>에서 이 세상에서 심각한 대결이 벌어지는 원인을 사람들이 자기만 옳다는 태도와 방식에서 찾는다. 이것은 과학자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진리에 대한 관점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봄은 그러면서 갈등과 대립을 넘어 공생을 추구하는 지속가능한 변화의 시작점으로 진정한 대화를 주장한다. 사람들이 저마다 자기 의견을 고집하면 진정한 의미에서 대화는 불가능해지는데, 이런 식의 자기 의견 고집이 무의식적으로 일어난다고 했다. 즉, 자기 주장이 너무나 옳기 때문에 그것을 고집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의 이해할 수 없는 고집이 나는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은 더 이상 묻어두기 어렵게 됐다. 야당이 세번째 김여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윤 대통령이 독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봄의 말대로 ‘모든 가정과 예상을 배제하고’ 말해야 한다. 나만 옳다는 식의 태도는 말할 것도 없다. 더 이상 거부권 행사를 멈추고 김여사 의혹을 규명하는데 협조해야 한다. 자신과 김여사가 받는 의혹은 사실이 아니고,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받는 의심은 분명한 비리라는 생각을 유지하는 한 바뀔 것은 없다.
봄은 또 같은 책에서 집합 사고의 힘을 빛의 간섭에 비유해 설명한다. 보통의 비간섭성 빛은 보통 사람들의 사고처럼 서로 엇갈리면서 사방으로 퍼지는데, 그런 빛은 파장이 서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강력해질 수 없다. 하지만 레이저와 같은 간섭성 광선은 그 위상과 파장이 일정하여 흩어지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향하기 때문에 강력해진다. 레이저와 같은 강력한 빛은 분명 쓰임새가 있다. 하지만 자칫 획일성의 위험에도 빠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의 참모진이 딱 그렇다. 그들은 모두 한 곳으로만 향하고 있다. 그곳이 어딘지는 온 국민이 안다. 그 결과, 참모진은 집단적 사고 오류에 빠져 윤 대통령을 보좌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김 여사의 독단에 제동을 걸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윤 대통령이 진정한 대화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의 대통령실 참모들을 대폭 교체해야 한다.
아인슈타인이 처음에 상대성 이론이라는 위대한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세상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 심지어 나도 틀렸을 수 있다’는 열린 태도를 견지한 덕분이었다. 그렇게 한 시대를 장식한 천재이자 현인도 마지막에는 시대적 흐름을 놓쳤다. 자신의 아집을 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번 크게 성취한 사람이라면 더욱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다. 윤 대통령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 뉴스버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하고, 2024년 퇴직했다.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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