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본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 2]

유가족 "서로 위로할 기회 빼앗겼다"고 문제점 지적

미국은 공적 영역 우선…한국은 사생활 보호 방점

정치나 상황에 흔들림 없는 실명 공개 기준 있어야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 균형점 찾으려는 노력 필요

이태원 10.29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 공개를 둘러싸고 찬반 논란이 크다. 뉴스버스는 '언론의 자유'와 '사생활 보호' 영역의 충돌 지점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번 논란은 사회적 담론을 통해 자연스럽게 공론의 장에서 해결할 문제지, 국가가 이래라 저래라 개입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미국 법무부는 명백하게 '언론의 재량권'이라고 보고 있는데, 컬럼비아대 로스쿨을 나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언론 매체의 명단 공개가 마치 큰 위법이라도 되는 것 처럼 "법적으로 큰 문제"라고 했다. 희생자 명단 공개 논란과 관련한 사회적 공론 형성의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고 한미 양국의 사례 등을 3회에 걸쳐 소개한다. / 편집인 주
① 한동훈 "법적으로 큰 문제"라는데, 미국선 '언론 재량'
② 희생자 명단이 공무상 기밀인가?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1월 22일 오전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유가족들이 11월 22일 오전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희생자를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1)

1998년 기자가 한국일보 사회부에 근무할 당시 보험금을 노린 살인 사건을 보도하며 용의자의 이름을 당시 관행대로 실명으로 보도한 적이 있다. 그런데 같은해 대법원이 '범죄 보도와 관련해 실명을 쓰는 것은 보도의 공익성과 관계가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후 해당 살인사건의 용의자는 무죄 판결을 받았고, 이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국일보와 기자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기자는 신문사에 2,000만원의 배상 피해를 안기는 손해를 끼치고 말았다.

한국 헌법은 이처럼 사생활(Privacy)권을 법적으로 보장(제17조)하고 있지만, 미국 헌법은 어디에도 사생활 보호와 관련한 조항을 갖고 있지 않다. 그렇다고 미국이 사생활 보호를 법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1965년 '그리스월드 대 코네티컷주' 판결을 통해 "사생활권은 수정헌법 1조와 3조, 4조, 5조, 9조에 그림자처럼 숨어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미국 법원은 표현의 자유 및 알 권리와 개인의 사생활 보호나 명예훼손이 충돌할 경우 전자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더 많다. 특히 공적 기록에 대한 보도라면 거의 100% 언론사가 승소하게 돼 있어 아예 관련 소송조차 제기되지 않을 정도다. 공적인 영역에 대한 투명한 공개와 감시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존립할 수 없으며 이는 결국 구성원에게 피해가 된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한국 대법원의 판결로 한국 언론들은 실명을 공개하는 것에 공포감을 갖게 됐고, '김모씨' 처럼 성을 부르는 것도 포기한 채 A씨, B씨 등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익명의 숲 뒤에 숨게 됐다. 급속히 진행되는 민주화 물결 속에서 군사정권이 무시하던 사생활권에 대한 의식을 제고시켰다는 평가도 있지만, 기자가 경험했듯 취재활동의 제한과 알 권리의 후퇴라는 측면에서는 논란이 될만한 판결이었다. 

범죄 용의자와 달리 사고 희생자의 실명 공개와 관련해서는 한국에도 구체적인 법률이나 판례가 존재하지 않는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명단 공개와 관련해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사자명예훼손죄'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법률전문가들은 적용이 어렵다고 보고 있다. 법무부는 '공무상 기밀누설죄'도 검토 중이라고 하는데, 희생자 이름이 왜 공무상 기밀인지는 누구도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명확한 법적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이 없기 때문에 이번 공개와 관련한 논란은 정치적 스펙트럼에 따라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알 권리와 사생활 보호의 균형'이라는 발전적 의제는 사라지고 진영 논리에 따라 서로 "이태원 참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비난하는 것이다. 

또한 명단을 최초 공개한 인터넷 매체가 "희생자에 대해 제대로 애도를 표하기 위해 명단을 공개했다"고 밝히면서 논란을 증폭시킨 측면도 있다. 당장 "유가족들의 동의도 없는데, 누구 마음대로 애도를 거론하느냐"는 여론이 일었고 유교적인 가족 중심 애도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이기에 실명 공개 자체가 범죄시되는 역효과를 낳기도했다.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11월 22일 오전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말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10.29 이태원 참사 희생자 이남훈씨의 어머니가 11월 22일 오전 유가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말을 마친 뒤 오열하고 있다. (사진=뉴스1)

하지만 지난 22일 열린 참사 희생 유가족들의 기자회견에서 딸을 잃은 아버지는 "다른 유족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 서로 위로를 주고 받을 기회를 빼앗겼다"면서 "추모비를 세우는 등 안타깝게 희생된 영혼들을 기리는 작업을 하고 싶지만 정부 당국이 아무런 정보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질타했다. 희생자들에 대한 공적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문제점을 오히려 유가족들이 먼저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뉴스가치와 공익성을 기준으로 이번 실명 공개 논란에 접근한 한국 언론사가 전혀 없는 것도 매우 놀라운 일이다. 한국에서는 헌법보다 앞선다는 '국민 정서법'의 영향 때문인지 '유가족 동의가 없었다'는 말만 되풀이하며, 한국 사회와 언론의 미래에 중요한 논제를 아예 다루지도 않은 것이다.

이번 기회에 정치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는 보도 기준을 논의하지 않으면, 결국엔 알 권리의 후퇴로 한국 사회와 민주주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상연은 1994년 서울 한국일보에 입사해 특별취재부 사회부 경제부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2005년 미국 조지아대학교(UGA)에서 저널리즘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애틀랜타와 미주 한인 사회를 커버하는 애틀랜타 K 미디어 그룹을 설립해 현재 대표 기자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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