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대책 금리인상 역부족…증세 등 정책 전환 필요 

거대양당, 채권시장 위기와 이태원 참사에서도 '남 탓'

'적폐 청산' '정권 심판' 아닌 '근원 대책 준비 세력’ 출현해야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7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생중계로 진행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11월 8일, 정치경제학자 홍기빈 씨는 경향신문에 <인플레이션 대책, 증세는 어떠한가>라는 칼럼을 썼다. “대안적 정책으로서 감세가 아닌 증세를 생각해 볼 때가 됐다”는 내용이다. 

홍기빈은 지난 7월 26일 <인플레이션, 임금인가 이윤인가>를 통해 “이번 인플레이션은 노동 측의 임금 인상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 측의 이윤 확대에 의해 주도 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고 진단했다. 새로운 인플레이션을 대하는 새로운 경제학의 신호탄이다. 나아가 새로운 정치를 추동하는 논리이기도 하다. 

“이자나 세금이나 똑같은 ‘비용’이다. ‘가격으로의 비용 전가’는 금리 인상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홍기빈). 금리 인상은 당장의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 과잉이 아니라 공급/비용 문제로 발생한 인플레이션에 대한 근원적 대책은 아니다.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은 빈부와 무관하게 늘어나므로 불평등이 심화된다. 또한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분야에서 투자를 위축시킨다”. 반면 증세는 소비 심리를 억제하는 효과는 동일하면서, 조세 설계와 산업 정책 지출을 따라 빈익빈을 방지하고 혁신적 투자를 지속할 수 있다. 

이번 미국 하원의원선거에서 야당 공화당이 여당 민주당을 이기면서 바이든 행정부의 증세 노선이 힘을 잃었다는 진단이 있다. 그러나 감세 노선의 공화당 역시 야당이 유리한 중간선거에서 너끈히 이기지 못했고 상원 구성에서는 민주당에 뒤졌다. 고개를 돌려 감세를 고집하다가 단기간에 붕괴된 영국 보수당의 리즈 트러스 내각을 볼 필요도 있다. 복지가 확대되고 노동권이 신장되었던 20세기 중반을 거쳐 등장한 인플레이션의 경우는 그래도 감세와 긴축, 통화주의로 돌파할 수 있는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현 인플레이션은 그때와 원인과 구조가 다르다.  

홍기빈은 증세를 통해 국가가 적극적으로 산업과 재정, 분배에 나서는 새로운 재정정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고민과 준비, 나아가 사회적 합의까지 필요한 것이므로 금융통화위원회처럼 몇 명이 하루아침에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고민을 시작해야 할 시점은 지금이다.” 

미국과 영국도 고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거나,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덜 익었다. 증세 정책의 수혜자가 될 수 있는 미국 노동자나 빈민 일부가 혐오세력으로 흡수되는 현상이나, 부랴부랴 보수 정부가 감세 정책을 시행하려다 여론의 후폭풍을 맞은 것 등은 다 그 결과다. 

한국은 어떤가. 채권시장의 위기에 떨어진 레고랜드 사태가 이미 한 단면을 보여줬다. 국민의힘 소속의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민주당 소속 최문순 전 지사가 추진해온 정책을 다급하게 털어내며 일행이 아닌 척하다가 시장에 잘못된 신호를 줬다. 반면 민주당은 ‘김진태 아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태’라는 식이다. 한국전력 회사채 응찰에 모인 액수조차 발행 예정액에 미달할 만큼 채권시장 위기는 구조적이다. 김진태발 레고랜드 사태는 이를 심화시킨 중대 사건인 동시에, 레고랜드 사태가 없었어도 이 위기가 터질 가능성은 넉넉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한국전력을 늪에 빠트린 적자는 어디서 왔을까. 국민의힘이나 보수언론은 ‘탈원전을 해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을 만들었고, 전기요금을 인상하지 않았으니 적자가 심해졌다’고 주장해왔다.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때문에 전기요금이 올라가지 않는다’고 반박했었다. 정치권의 양대세력은 두 가지 잘못을 합동으로 저질렀다. 첫째, 문재인 정부 5년동안 원전 비중은 별 변화가 없었고 원전 설비 총량은 오히려 더 늘어났었다. 그들이 말한 탈원전은 없었다. 둘째, 둘 다 '전기요금을 올리지 않는 것이 선'이라고 접근했다. 이것이야말로 문제의 원인이다. 한국의 전기요금은 원가 반영 수준이 낮았다. 전기요금 인상이 유예되었으니, 한전의 등골은 휠 수밖에 없었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올라간 서민의 부담은 다름 아닌 증세와 재분배로 풀었어야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이 11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 추진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들이 11일 서울 여의도역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검 추진 범국민 서명운동 발대식에서 서명을 하고 있다.

거대 양당이 이태원 참사와 민주당 관련 수사를 놓고 벌이는 공방에도 한국 정치의 활로는 없다. 

국민의힘은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문제를 파헤치는 것을 ‘공정’, ‘상식’, ‘적폐 청산’이라고 떠든다. 그 강성 지지층은 ‘이재명 구속’까지 운운한다. 정당과 정치인의 존재 이유가 ‘남의 문제를 수사’하는데 있는 것인 양. 수사는 검찰이 하고 재판은 사법부가 할 것이다. 

민주당이 내세운 해법은 ‘정권 심판’이고, 강성 지지층은 ‘정권 퇴진’을 (실현하는 것도 아니고) 부르짖는 것이 실천 전략이다. 시스템 혁신과 전환은 뒷전이고, ‘표밭갈이’에 열중한다. ‘남 탓’으로 제 이익을 도모하는 이들로 인해 언제나 문제와 해법은 축소된다. 

결국 ‘새로운 재정정책으로 이번 인플레이션을 넘자’는 경제학 교훈을 정치학 실천에 빗대면 한 마디로 “정치판을 뒤엎어라”다. 거대양당 밖에서든 안에서든, 발본적 문제인식과 근원적 해법을 가진 세력이 출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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