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춘·최재성 등 연이은 은퇴… 86그룹 퇴진 도미노?

86그룹, 권력투쟁은 가깝고 실력은 멀었다

민주당 변화가로막는 '고인물' 된 86그룹

8월 전대서 '시대적 퇴진' vs 숙주정치연장' 향배 결정될 듯

1. 민주 86그룹의 현주소…연이은 은퇴 선언과 퇴진 압박

86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장면 셋이다. 지난 달 김영춘 전 해수부장관이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86정치인 중 첫 번째다. 그는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며 “나는 거기에 적합한 정치인인가를 자문자답”해봤고, 이제 직업적 정치인의 길에서 벗어나 “국민 속으로 돌아가려 한다"고 했다. 

최재성 전 의원이 뒤를 이었다. 최 전 의원은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시대적 소명이 있다”고 믿었고, 그 믿음으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소명이 필요하다“는 말을 은퇴의 변으로 삼았다.

반면에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는 “오직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해 당원으로서 직책과 직분을 가리지 않고 헌신하겠다”는 말로 서울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당 안팎의 반대가 크다. 특히 같은 86정치인 그룹에 속하는 김민석, 우상호 의원의 비판이 매섭다. 송 전 대표가 대선 전 총선불출마를 약속하며 86용퇴론 주도했던 당사자란 점도 작용한 듯하다. 

지난 6일 정계은퇴선언한 최재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오른쪽).  최 전 정무수석이 지난해 4월 16일 청와대 브리핑 룸에서 퇴임 인사를 한뒤 신임 인사를 하려는 이철희 정무수석이 단상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스1)
지난 6일 정계은퇴선언한 최재성 전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오른쪽). 최 전 정무수석이 지난해 4월 16일 청와대 브리핑 룸에서 퇴임 인사를 한뒤 신임 인사를 하려는 이철희 정무수석이 단상에 오르고 있다. (사진=뉴스1)

2. 1996년 원내 진입한 뒤 2004년 탄핵역풍 때 대거 등장 
   임종석이 공천 좌우 19대총선 이후 당 중심으로 등장
   문재인 내세운 이후 당과 권력의 중심 장악
   

소위 86정치인의 등장은 1996년 15대 총선이다. 서울대 학생회장을 지낸 김민석이 불과 32살의 젊은 나이에 국회에 입성했다. 16대 총선에 김대중 대통령은 김민석 의원 외에 고대 학생회장과 전대협 의장을 지낸 이인영, 연대 학생회장을 지낸 우상호 등 80년대 학생운동의 중심인물들을 대거 공천한다. 하지만 대부분 고배를 마시고 연대 학생회장 출신 송영길과 한양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임종석이 초선으로 원내에 진입한다. 

이때 처음으로 언론에 386정치인이란 표현이 등장했다. 30대이며, 80년대에 대학을 다녔고, 60년대 생이란 공통점을 가진 젊고 유능한 정치인을 일컫는 말로 당시로서는 뛰어난 성능을 가진 PC인 386컴퓨터에서 따온 표현이었다. 긍정적인 의미가 컸다. 그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나이가 아니다. 80년대 학생운동이라는 강렬한 경험을 공유한 집단이다. 그들은 대부분 각 학교의 학생회장 또는 전국조직인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즉 전대협의 간부로 활동하면서 끈끈한 결속력을 유지했다. 또한 학생운동 내의 권력투쟁 및 노선투쟁을 거치면서 권력의지를 길렀고, 재야의 선배 및 야당 지도부와 연결되어 활동하면서 여느 기성 정치인에 뒤지지 않은 정치 감각을 키웠다. 

86정치인이 하나의 집단으로 떠오른 것은 2004년 17대 총선이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때 86정치인들이 대거 원내에 진입했다. 기존의 송영길, 임종석 의원에 더해 이인영, 우상호, 윤호중(서울대), 이화영(성균관대), 강기정(전남대), 최재성(동국대), 오영식, 백원우(이상 고대), 정봉주(외대), 정청래(건국대), 김태년(경희대), 서갑원(국민대), 한병도(원광대) 등 80년대에 학생회와 전대협 활동경험을 공유한 정치인들이 하나의 집단을 형성했다. 17대에 같이 원내에 진입한 정성호, 안민석, 김재윤, 최재천, 이상경, 최성, 우제창 등은 연배는 같지만 학생운동 경험이 없어 결이 다르고, 86그룹 범주에 넣지 않는다.  

2008년 대선 패배 후 치러진 18대 총선에서 86정치인들도 대거 낙선하면서 86그룹은 당내 비중도 함께 줄었다. 그들이 민주당의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 것은 2012년 19대 총선이다. 86그룹은 한명숙 민주당 대표와 손을 잡았다. 총선을 앞두고 임종석이 당 사무총장이 되었다. 86그룹이 총선 공천을 좌지우지했다. 권력투쟁에 감각과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 후로 86그룹은 완전히 민주당의 중심이 되었다. 당 대표를 제외하고, 원내대표, 사무총장 등 당의 요직을 독차지했다. 2016년 20대 총선에선 김종인 비대위원장에서 잠시 주도권을 넘겨주었지만 문재인 후보를 다시 세워 19대 대선에서 승리했고, 문재인 정부 내내 당과 권력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86그룹인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송영길 전 대표.  
86그룹인 윤호중 비상대책위원장과 송영길 전 대표.  

3. 화려한 등장과 초라한 퇴장

86정치인 그룹의 등장은 화려했다. 등장하자마자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기존의 노쇠한 정치인들과 종종 비교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정치활동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노무현, 이해찬 등 88년 13대 총선에서 원내에 진입한 선배 정치인들의 초선 시절 보여준 활약상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한계가 뚜렷하다. 천신정이라 불리며 당 쇄신을 주도한 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의 영향력과는 비교불가다. 의정활동도 그저 그런 수준이었고, 당내 정치에서 개혁성향을 드러내기보다는 정세균, 손학규, 한명숙, 문재인 등 힘센 정치인에게 줄서기에 급급했다. 기생충이 숙주를 필요로 하는 것에 빗대 숙주정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초재선 시절에는 여기저기 줄서는 게 불가피한 측면도 있다. 그래도 당의 주역이 된 후라면 이야기가 달라져야 한다. 그들이 원한다면 86그룹만의 정치를 보여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86그룹만의 고유한 정치색을 보여준 바가 없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 많던 86정치인 중에서 대선 후보급으로 성장한 인물도 없다. 변방에 있던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용퇴론의 대상이 되었다. 초라한 퇴장이다. 

86정치의 한계는 앞서 인용한 김영춘 전 장관의 정계은퇴 메시지에 이미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김 전 장관은 지금은 “민주주의, 통일, 기득권 타파 등 거대담론의 시대가 아니라 생활정치의 시대가 됐다”며, “거대담론을 붙들고 정치를 시작한 자신은 더 이상 적합한 정치인이 아니다”고 고백했다. 평소 성품에 맞는 담백하고 솔직한 말이다. 저 말은 학생운동과 전대협으로 묶인 86그룹 모두에게 적용된다. 

사실 김 전 장관의 말에는 어폐가 있다. 생활정치의 시대가 갑자기 온 것이 아니다. 정치는 본디 생활정치다. 정치의 본령은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을 비롯해 86그룹의 선배 정치인들은 늘 입에 민생이란 말을 달고 살았다. 86그룹의 첫 번 째 잘못은 정치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20대에 자신들을 사로잡았던 거대 담론만을 정치의 중심이라 생각한 것이다. 더구나 20대에 품었던 담론을 나이 60을 넘긴 지금까지 간직했다는 것은 그동안 별다른 고민이나 발전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86그룹이 공부를 등한시한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젊을 때는 학생운동을 하느라 그랬다고 하자.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86그룹의 주된 관심과 활동은 당내 권력싸움이었다. 그들의 눈에 정책은 전문가들이 하는 것이다. 그토록 오래 의정 활동을 하면서도 경제, 국방, 외교, 교육, 복지, 부동산 등 어느 한 정책 분야에서 탁월함은 고사하고 일정 수준의 전문성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정치교체를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월 25일 서울 여의도 민주당사에서 "정치교체를 위해 저부터 내려놓겠다"며 다음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사진=뉴스1) 

4. 민주당 변화 가로막는 '고인물'된 86그룹

86정치는 민주당의 변화를 가로막는 고인물이 되었다. 현재 민주당은 젊은 정치인 기근이라고 해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다. 86그룹이 당의 권력을 오랜 기간 독식하면서 젊은 정치인이 성장할 기회를 빼앗은 측면이 있다. 자신들은 30대 혹은 40대 초반에 국회에 입성했던 사실을 잊은 듯하다. 

최근 벌어진 상황은 86정치인 일부가 또 다시 이재명이라는 숙주에 기생해 정치생명을 연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당을 완전히 장악하기를 원하는 이재명 전 후보 입장에서는 앞으로도 86그룹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 송영길 전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는 그런 시도의 일환으로 보인다. 다만 86그룹 내부에서 비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86그룹의 결속력이 예전만 못한 것 같다. 86그룹의 점진적 퇴진은 피할 수 없는 흐름이 되겠지만, 다가오는 민주당 전당대회가 86그룹의 향배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윤석규는 서울대 인문대를 졸업하고 YMCA 경실련 등에 몸담아오다 DJ정부에서 청와대 시민사회국장을 지냈다. 2002년 노무현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아 노무현 대선 전략의 밑그림을 그린 ‘정치전략통’이다. SNS 등에서 합리적 진보 논객으로 활동 중인 그는 날카로운 정치 분석으로 정평이 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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