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 없는 尹·국힘, 재판부 미온 대응에 단죄 분위기 흐려져
12∙12, 5∙18 가담자 제대로 처벌 못한 게 쿠데타 근절 장애물로 작용
국방부를 출입하던 1990년대 중반, 당시 군 지휘부에는 5∙18 때 현장에 투입됐던 장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었다. 육군 참모총장과 합참의장을 거쳐 국방부장관이 된 육사 17기 김동진이 대표적이었다. 그는 20사단 61연대장으로 광주에 투입돼 시민군 진압 임무를 맡았다. 김영삼 정부에서 그는 5∙18 가담자라는 비판 여론에도 불구하고 하나회 척결을 주도한 덕에 좌천은커녕 승승장구했다. 김영삼 정부가 하나회 척결이라는 과업을 과도하게 의식해 군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에 마음이 불편했다. 불의에 편승한 군인들을 처벌하지 않은 채 오히려 출세길을 열어준다면 향후 과연 군의 영이 설까 하는 의문에 내내 찜찜했다.
수도방위사령부 1경비단장 조성현 대령은 지난 14일과 21일 윤석열 내란 사건 공판에 증인으로 나와 계엄 당시 "국회를 봉쇄하고, 또 이어 본청 내부에 진입해 의원들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게 맞다"고 증언했다. 조 대령은 “우리 군은 어떤 명령이든 이행하는 무지성 집단이 아니다. 군에 내려지는 명령은 정당하고 합법적이어야 한다”면서 “그날 지시가 그랬느냐”고 윤석열측 변호인들의 신문을 반박했다. 특수전사령부 1특전대대장 김형기 중령도 계엄 당일 의원들을 끌어내라는 부당한 명령을 거부했다고 증언했다. 김 중령은 “나는 항명했고, 부하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고, 그래서 민주주의가 지켜졌다”면서 “나를 항명으로 처벌하라”며 당당히 맞섰다. 합참 계엄과장이있던 권영환 육군 대령도 24일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전 계엄사령관) 등에 대한 공판에 출석해 “예방적 계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계엄은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하는 것'이라느니 '계몽령'이니 하는 윤석열의 논리를 부숴버렸다.
조성현 대령이 맡고 있는 수방사 1경비단장은 12∙12 당시 신군부의 쿠데타에 가담한 장세동∙김진영 대령이 각각 맡았던 바로 30∙33경비단장이다. 수방사 예하부대로 청와대 외곽경비를 맡았던 두 부대를 통합한 바로 그 부대의 지휘관이다. 그런 조 대령이 12∙12 때 상관인 장태완 수경사령관을 배신하고 군내 사조직 하나회의 선배를 따랐던 장세동과 김진영의 길을 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가 계엄 당일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에게 지시를 재고해달라고 한 뒤 부하들에게 서강대교를 넘지 말라고 지시하지 않았어도 계엄이 실패로 돌아갔을까? (예방적 계엄은 없다고 증언한 권영환 대령 역시 1경비단장 출신이다.)
또한 특전사 김 중령이 12∙12 당시 자신들의 사령관인 정병주 소장을 향해 발포한 특전사 선배들처럼 상부의 명령을 무조건 따랐다면 우리의 일상은 지금과 달라질 수도 있다. 결론은 이런 참군인들이 상부의 부당한 명령을 현장에서 거부한 덕분에 계엄이 좌절되었다는 것이다. 야당의 횡포를 국민에게 알리려고 2시간 남짓 ‘계몽령’을 내렸다는 윤석열의 주장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궤변임을 이들은 증명하고 있다.
헌재에서 윤석열이 탄핵∙파면되었는데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군의 중립성을 훼손한 윤석열은 수많은 장병들의 인생을 망쳐놓고도 파안대소하며 변호사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감이나 미안함도 찾아볼 수가 없다. 국민의힘은 자성하기는커녕 윤석열을 두둔하며 야당 탓을 한다. 그래놓고 조기 대선 열차에 슬그머니 무임승차해 표를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노골적으로 대선 행보를 하고 있고, 대통령실은 뒤늦게 기관장 알박기 인사를 하고 있다. 재판부는 윤석열에 전례 없는 특전을 베풀고, 김용현 전 국방장관과 고위 군 장성들의 재판을 비공개로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기에 몰아넣은 불법계엄의 책임을 제대로 물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이진우 전 수방사령관(육사 48기)은 과거 필자가 국방부 출입시절 합참 본부장으로 재직한 이규환 예비역 중장(육사 21기) 아들이다. 아버지에 이어 3성 장군으로 복무한 아들이 어떻게 그렇게 불의한 지시를 뿌리치지 못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변호인은 “급박한 상황에서 계엄의 불법성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거나 “그런 것을 평가할 지식이 없었다”고 두둔했다. 그렇다면 생도시절 매일 외웠다는 “안일한 불의의 길보다 험난한 정의의 길을 택한다”는 생도의 신조는 무엇이란 말인가.
고위 장성들이 윤석열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하지 못한 데는 과거 12∙12와 5∙18에 가담한 장교들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한 것이 원인(遠因)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우리는 흔히 군인을 ‘제복을 입은 시민’으로 부른다. 군인도 엄연한 시민으로서 부당한 명령은 거부하는 게 옳다. 그리고, 그런 분위기를 정착시키려면 계엄에 가담한 모든 사람들에게 응분의 처벌을 내려야 한다. 김형기 중령도 스스로 “군이 정치적인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군을 감시해달라. 그래야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비단 군인만이 아니다. 시민으로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찰관과 공직자 전원에게 무관용의 원칙으로 대응해야 함은 물론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앞으로 윤석열처럼 비이성적인 통수권자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오직 시민에 복무하는 군대를 육성하지 않으면 군사 쿠데타는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나아가 통수권자 개인에 충성하고, 특정 정치집단에 경도된 군인들로는 한반도 안보를 지킬 수 없다. 정치권도 그들을 이용하고 줄세우려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오늘도 정치권은 편가르기에 바쁘고, 예비역 장성들은 선거 후 자리 하나 얻으려고 여야의 대선 캠프를 기웃거리고 있다.
이중근은 경향신문에서 34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2024년 퇴직한 뒤 뉴스버스 등에 칼럼 등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경향신문 편집국에서 정치(정당·외교안보·총리실·중앙선관위·청와대), 사회(경찰·검찰), 국제부를 거친 뒤 논설실장·논설주간으로 경향신문의 논평을 책임졌다. 국가의 정책이 어떤 과정을 거쳐 수립되고 집행되는지를 관찰한 것을 소중한 경험으로 여긴다. 글의 무거움을 절감하며 정파적 보도를 지양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하게 하자는 게 '신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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