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인사동 재개발사업지구에서 발굴 작업을 진행하던 중 ‘한자와 한글 활자가 다량 발견’되었다는 삼일로 금강구두 뒤편 골목으로 들어섰다. 입구에는 아직 ‘피맛골(避馬골) 주점촌’이란 간판이 그대로 걸려 있다. 가림막이 촘촘히 처져 발굴지역 안이 보이지 않는다. 끝나는 지점에서 뒤를 돌아보니 ‘福 서 피맛길/THANK YOU 고맙습니다’라는 간판이 그대로 달려 있다. ‘아! 여기가 서 피맛골이니, 동 피맛골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어디일까?
오른 쪽으로 돌아 가림막이 좀 열려 있는 쪽으로 가니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 중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고, 부지 안에는 불도저가 작업 중에 있다. 안내판에는 재개발지역이 인사동 117번지 일대로 적혀있는데, 문화재가 발견되었던 79번지도 같은 지역이다. 출토유물은 지난 11월 3일부터 12월 31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인사동출토유물공개전>이란 이름으로 전시되고 있다.
피맛골은 YMCA호텔 때문에 단절되어 있는데 호텔이 언제 건립되었는지 살폈다. 건물 입구 돌판에 한쪽은 1907년, 한쪽은 1961년으로 되어 있다. 가까이 가서 살피니, 동판에는 “옛 회관은 고종과 쫀와나메커(John Wanamaker, 최초의 백화점 설립자, 각국 YMCA후원자)의 하사금으로 1907년 기공, 1908년 완공되었으나 1950년 전란으로 소실되었음을 황태자 영친왕이 썼다.”라고 연혁을 적어 놓았다. 한국전쟁 후 1961년 그 자리에 호텔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현재 종로타워가 들어선 자리는 과거 화신백화점이 있던 곳으로 일제 강점기에 단절되었을 것이다.
SC제일은행 쪽으로 가니 ‘충무공이순신 백의종군 출발지’, ‘한국 천주교 순교 터이자 신앙 증거 터’, ‘의금부터’, 임대 관설시장인 ‘시전행랑’ 등의 터임을 알리는 표지판이나 돌이 곳곳에 세워져 있다. 그 한 모퉁이에 ‘피맛골’ 국영문 설명문과 함께, 피맛골 구간 위치도가 그려져 있다! 그림을 보니 종로 북쪽에는 중학천 복원지점에서 종묘까지 이어져 있고, 남쪽에는 보신각에서 창경궁로까지 이어져 있다! 종로 양쪽에 걸쳐 있었고 상당히 긴 뒷골목 길이었음을 처음 알게 되었다.
인사동의 서 피맛길이 파고다 공원 서쪽이었는데, 그럼 동쪽은 ‘동 피맛골’이겠구나 라고 추측했다. 그 얘기를 1970년대 초에 상경하여 지금까지 청계천3가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친구에게 했더니 자신도 ‘서낙동낙’ 얘기를 들었단다. 낙원동 서쪽 ‘서낙’에는 부유한 사람이 살았고, 동쪽인 ‘동낙’에는 서민들이 살았다고. 나도 1975년 상경하여 광화문 가까이 피맛골, 지금의 D타워 자리에 있던 곳에서 자주 대폿잔을 기울였다. 마지막으로 피맛골을 들린 것은 2009년으로, ‘열차집’에서 간장에 절인 양파와 빈대떡으로 막걸리가 아닌 소주로 향수를 달랬음을 블로그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종로는 궁궐과 관가가 가까워 하급관리나 서민들이 길에서 말 탄 고관대작을 만나면 엎드려 예를 표해야 함으로 그런 번거로움을 피하고자 뒷골목을 이용했는데, 그래서 이 길이 피맛길이 되었단다. 과거에는 이 길이 넓었으나 점차 좁아지고 길을 따라 목로주점, 모주집, 장국밥집이 연이어 들어서 서민들의 사랑받는 장소가 되었다는 설명이 씌어 있다. 나무로 된 술상에서 술 마시는 목로주점(木壚酒店), 잔 술 파는 모주(母酒)집, 그리고 젓가락으로 호마이카(Formica)나 널빤지 상을 두드리며 뽕짝노래로 목청을 돋우었던 지난 세월이 때론 그립기도 하다.
종로 북쪽 피맛길은 대형 고층건물〔D타워, 르메이에르, 타워 8, 청진상가(그랑서울)〕을 지으면서 피맛길 자락은 통로로 연결해 살려두었으며 곳곳에 유구(遺構)를 복원해놓거나 설명문을 세워놓았다. D타워는 그곳을 SOHO(小好 : 작은 행복)로 이름 붙여 놓았는데, 우리에게 잘 알려진 SoHo는 뉴욕 맨해튼 지역의 이름으로, ‘South of Houston Street’의 약자다. 런던에도 Soho가 있으며, SOHO는 홍콩, LA, 플로리다 등에서도 지명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 SOHO는 Small Office/Home Office의 약자이기도 하다.
르메이에르 골목에도 ‘피맛골’이라는 안내판을 매달아 놓았으며, 르메이에르와 타워 8 건물 사이에도 피맛골의 유래와 위치를 표시한 안내판을 부착해 놓았다. 타워8 중앙통로에는 과거 우물이 발견된 자리를 표시해 놓고, 우물은 청진동 골목 쪽에 복원해 놓았다. 복원된 우물 앞에는 그 자리에 한국전쟁당시 징병업무를 담당했던 사령부가 소재했었다는 설명문도 함께 세워놓았다. 종로지역은 ‘조선의 폼페이’로 발굴하면 지층 곳곳에서 유구나 유물이 발굴되어, 재개발 현대화하면서도 과거를 알 수 있도록 일부를 복원하거나 흔적을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보신각 쪽으로 건너와 뒷골목을 다녀보고 종로 3가 ‘송해거리’로 와 피카디리 골목으로 들어오니 그곳에도 피맛골 표시 동판을 바닥에 묻어두었다. 단성사 쪽으로 와 그 쪽 피맛골을 둘러보고, ‘박카스 아줌마’의 등장이 화제가 된 종묘 옆으로 가니 초겨울이어서 아줌마는 물론 할아버지도 보이지 않고 담배 피우러 나온 인근 건물의 장년들만이 몇 명 서 있다.
남쪽으로 건너와 피맛길을 들어가니 그곳에는 좁은 골목에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돈화문로를 건너니 보쌈골목이 이어진다. 돼지고기를 넣은 커다란 솥이 펄펄 끓으면서 고기가 삶기고 있다. 보쌈보다 생굴 안주에 소주라도 한잔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발굴이 진행되고 있는 곳에는 또 어떤 가게들이 들어설까? 노틀들의 향수를 달래주는 가게 한 두 곳이라도 들어서면 좋으련만. . . 피맛길 같은 곳이 또 어디 없을까? 말 탄 사람을 피했던 길이었지만, 한국전쟁 후에는 술집과 음식점 거리가 되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거리가 되었다.
종로1가 북쪽 피맛길은 재개발되어 이젠 청장년들이 찾는 숍이 즐비하다. 그 옛날 피맛길을 찾았던 내게는 왠지 정이 가지 않는다. 그 길도 세월이 흐르면 누군가의 애환이 쌓이겠지만, 언젠가 업종과 고객이 바뀔 것이고, 그러면 지금의 세대 역시 나와 같은 떨떠름한 느낌을 가지지 않을까? 그것이 세월의 흐름이고 역사가 아니겠는가!
황현탁은 미국, 일본, 영국, 파키스탄에서 문화홍보담당 외교관으로 15년간 근무했다. 각지에서 체험을 밑천 삼아 이곳 저곳을 누비며 여행작가로 인생2막을 펼쳐가고 있다. 『세상을 걷고 추억을 쓰다』, 『어디로든 가고 싶다』 등 여행 관련 책을 썼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