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이 <오징어 게임>에 이어 넷플릭스 TV 프로그램 부문에서 전 세계 관객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관심은 <지옥>의 디스토피아적인 세계관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일상이 무너지고 급격한 기후 변화를 실감하면서 사람들은 이전보다 이러한 세계관에 더 많은 공감을 하는 것 같다. <지옥>은 우리 사회에서 적극적으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여러 가지 이슈에 대해 깊이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옥>도 넷플릭스가 전액 투자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다. 동명의 웹툰(글 연상호, 그림 최규석)을 원작으로 한 6부작으로 연상호 감독이 연출하였다. 이 작품은 갑자기 지옥행을 예고 받은 사람들이, 당일에 지옥 사자들에게 잔인하게 죽임을 당하는 내용을 다룬다. 사람들이 모두 동요하면서 ‘새진리회’라는 사이비 종교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죽음의 고지와 시연
<지옥>은 그동안 연상호 감독이 다양한 작품에서 그려왔던 그의 영화적 세계관이 투영된 드라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대체로 암울한 재난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영화 <부산행>(2016)과 <반도>(2020)에서는 좀비로 인한 재앙을, 애니메이션 <사이비>(2013)는 댐 건설로 인한 마을의 수몰을, 영화 <염력>(2018)은 재개발 구역 지정으로 인한 삶의 터전 상실이 배경이다. 이러한 그의 성향은 <지옥>에서는 좀 더 파격적이고도 잔인하다. <지옥>은 갑자기 나타난 천사(?)가 아무런 설명 없이 지옥행 사망 일자와 시각을 알려주고, 지옥 사자들이 끔찍하게 죽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을 설정하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공권력이 무기력한 상태에서 종교단체가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해 어떻게 권력을 차지하고 유지하는지를 보여준다.
사이비종교와 화살촉
<지옥>은 영상 매체에서 잘 다루지 않은 사이비 종교의 허상과 그들에 대한 언론의 순응과 협조를 보여준다.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정치인, 기업가, 검찰과 언론의 결탁 및 부패를 다루어왔지만, 이렇게 사이비 종교와 미디어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흔치 않다. 언론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는 시연 과정 방송을 통해 잘 드러낸다. 아쉬운 점은 사이비 종교가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는지는 잘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다양한 문제도 다루고 있다. 무자비한 개인 신상 털기, 촉법소년 문제, 심신미약 범죄자에 대한 처벌 완화, 가짜뉴스를 내보내는 유튜브 방송의 폐해 그리고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나 댓글이 야기하는 집단적이고 파괴적인 행동의 문제점 등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아울러 드라마 속 인물 등을 통해 피해자의 사법제도에 대한 불만과 억눌리고 억울한 사람들의 심리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이러한 주제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무도 제기하지 않는 의문
흥미로운 사실은 지옥의 사자에 의한 죽음에 대해 누구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지, 자신에게는 고지가 오지 않으리라 믿으면서, 어떤 근본적인 원인이나 대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아예 없다. 아무리 공권력에 대한 신뢰가 없고, 초자연적인 현상이라고 해도 어떤 의구심과 저항 없이 받아들인다. 죄를 지은 자가 고지를 받고 지옥에 간다고 주장하는 ‘새진리회’에 대해서도 대다수가 의문을 품지 않는다. ‘새진리회’에 대한 가장 큰 저항은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의 사망을 증발로 위장시켜주는 일이다. 그러나 이들(‘소도’)의 저항 수준도 약하고, 너무 쉽게 금방 무너져 버린다.
나조차도 마지막 회에 부모가 자식을 위해 희생할 때까지는 죽음에 대한 저항을 생각조차 못했다. 하지만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왜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더 일찍 하지 못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그들이 부모라서 그런 희생이 가능했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누구라도 어떤 방법을 찾아 보려고 노력해야 했었다.
공권력은 어디에...
연상호 감독은 우리가 필요로 할 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공권력의 무능과 부재를 비판해 왔다. <지옥>에서도 사람들을 보호하는 공권력은 드라마 초기에만 잠시 나타날 뿐, 이후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이 드라마 속에서 공권력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든 공권력이 ‘새진리회’와 함께 움직이고 있다고 믿기는 어렵다. 특히 <지옥> 1-3화의 주요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진경준(양익준), 경찰과 그의 딸은 4화부터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에피소드 3화와 4화 사이의 간극이 너무 크며, 이야기가 단절된 느낌이 든다.
끝 모를 잔인함
드라마 속에서 죽음의 사자는 물론 ‘새진리회’ 초대 교주 정인수(유아인)와 화살촉 사람들은 왜 그렇게 잔인하게 사람을 죽이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죽이는 방식도 벌하는 방식도 불필요할 정도로 자세히 보여준다. 특히, 중학생이 보는 앞에서 그런 죽음은 너무 참혹하면서도 가혹하다. <킹덤>, <스위트 홈>, <오징어 게임>, 그리고 <지옥>까지 전 세계 많은 관객에게 사랑받으면서, 향후 넷플릭스와 제작될 드라마들이, 더욱 잔인하고, 무섭고, 폭력적인 콘텐츠쪽으로 기울까 우려스럽기도하다.
<지옥>은 에피소드마다 전개 속도가 빠르고, 사이비 종교와 언론 매체의 결탁을 다루고, 주요 이슈를 표면화했다는 점에서 좋았지만, 줄거리의 개연성 부족과 지나친 폭력성은 아쉬운 대목이다. 연상호 감독은 이 드라마를 통해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던 것 같다. 여기에 더한 내 소감은 우리는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김주희는 뉴질랜드 와이카토(Waikato)대학에서 ‘영상과 미디어’를 전공한 예술학 박사이다. 뉴질랜드는 피터 잭슨 감독이 <반지의 제왕>(2000~2003) 시리즈와 <킹콩>(2005)을 만들어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 제작 강국이다. 연세대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뒤 같은 대학 경영대학원에서 MBA를 받았다. 여전히 소녀적 감수성을 간직한 채 유튜브 <영화와의 대화>를 운영하는 유튜버로 활동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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