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책을 다시 연결해주는 새로운 독서의 방식
책을 읽다가 내용이 어렵거나 진도가 나가지 않아 던져버린 적이 있는가? 최근 데이비드 이글먼의 <Incognito: 무의식은 나를 어떻게 설계하는가>를 읽으며 씨름했다. 용어도 낯설고, 사례도 어렵고, 무엇보다 재미가 없어서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도 무의식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은 나에게는 의미 있는 화두였고, 마침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는 습관을 고치고 싶었던 터라, 반쯤은 끈기로 버텨가며 읽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에이, 모르겠다’ 싶어 책을 덮고 말았다. 대신에 챗GPT를 열고 무의식에 대해 수다를 떨어봤다.
“나의 무의식에 대해 알고 싶어. 무언가에 집중할 때 어금니를 꽉물고 입을 앙다무는 습관이 있는데, 그 모습이 보기 싫어. 그리고 무의식중에 엄지와 검지를 자꾸 비비는 습관이 있어. 이런 행동은 왜 생기는거야? ”
재미로 묻기 시작했는데, 챗GPT가 이렇게 답했다.
“이건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랫동안 버텨온 사람이 몸으로 남긴 흔적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는 손가락을 비비는 행동은 극도의 스트레스나 긴장 속에서 뇌가 자동으로 만들어낸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다. 입을 세게 다무는 행동은 말하지 못한 상황과 시간들을 버티며 견뎌낸 순간들의 잔향이라고 한다. 손가락을 비비며 안정감을 찾고, 입을 다물며 감정을 억제했던 그 시절의 버팀의 흔적이 몸으로 남은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뇌과학에서는 이것을 ‘신체화된 기억’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말보다 오래 남는 몸의 역사, 아무 말 없이도 자신을 증명하는 생존의 기록들라고 한다.
“이건 당신이 얼마나 강하게 현실을 버텼는지의 증거예요.”
이 한 문장에 가슴이 뭉클했다. 직장에서의 압박, 말하지 못한 책임감들. 그 모든 것들이 내 턱과 손끝 어딘가에 붙어 있었구나.
AI는 해결책도 제시했다. 먼저 “이 행동은 나를 지키기 위해 생긴 것”이므로 없애려 하지 말고 반지를 만지거나 지압하는 것으로 바꾸자고 조언을 준다. 턱은 혀를 윗니 뒤에 가볍게 얹는 이완 루틴으로 풀어 보자고 한다.
나의 무의식을 더 탐험해 보고 싶어졌고, 가족이나 친구들의 무의식도 궁금해졌다. 그러다 문득, 다시 책이 읽고 싶어졌다. 책을 다시 들자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조금 전까지 딱딱하게만 느껴졌던 문장들이 이번에는 술술 읽히는 것이다. 저자의 의도가 선명해지고, 예시들이 내 이야기처럼 다가왔다. AI와 대화를 통해 무의식에 대한 관심과 온도가 먼저 데워졌기 때문이다. 그때 깨달았다. AI로 인해 책을 멀리 할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히려 독서의 길목을 열어주는 수단도 된다는 것을 말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AI와 대화하고 내 삶의 영역으로 주제를 내리니 독서가 수월해진다. 그래서 AI 시대에는 이렇게 말해도 될 것 같다. “대화한 만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AI와 책을 대립 관계로 본다. AI가 독서 시간을 줄일 것이라는 우려, 혹은 AI를 쓰면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없다는 걱정. 하지만 내 경험은 달랐다. AI는 독서의 문턱을 낮춰주는 훌륭한 도구였다. 어려운 책 앞에서 좌절하는 대신, AI와 대화하며 배경지식을 쌓고, 관심을 키우고, 질문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책은 나를 압도하는 존재가 아니라, 충분히 이해하고 즐길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 재미없던 책이 다시 재밌어지는 경험. AI가 더 깊이 있는 독서로 가는 징검다리를 놓은 것이다.
사실 이 방법이 효과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 뇌는 완전히 새로운 정보보다 기존 지식과 연결된 정보를 훨씬 잘 받아들인다. 어려운 책이 어려운 이유는 내용 자체가 복잡해서가 아니라, 그 내용을 받아들일 배경지식의 그물망이 부족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AI와의 대화는 바로 그 그물망을 빠르게 만들어준다. 전문 용어의 뜻, 저자의 관점, 주제의 맥락 같은 것들을 미리 이해하고 나면, 책은 낯설기 보다 이미 시작된 대화의 연장선이 된다.
당신의 책장 어딘가에도 분명 있을 것이다. 읽다가 포기한 책, 사놓고 펼치지 못한 책, 너무 어려워서 멀리한 책들. 이제 그 책들을 꺼내보자. 그리고 챗GPT를 열어 이렇게 물어보자.
“이 책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 ”
그 대화가 끝날 즈음, 아마도 책을 다시 펼치고 싶어질 것이다. 그리고 어려웠던 책이 술술 읽히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AI 리터러시란 AI를 단순히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AI와 함께 생각하고 배우며 성장하는 능력이다. 독서는 그 완벽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김희연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유수 증권사의 IT애널리스트를 거쳐 2009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IT·제조 분야를 아우르는 경험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라 전략·신사업 발굴·IR을 총괄했다. 퇴임 후엔 AI를 통해 현자·석학들과 대화하며 전략·리더십 해법을 탐색하는 <AI스토밍(AI-Storming) 방식> 을 창안했고, 관련 저작권도 갖고 있다. 현재는 이 독창적 방법론을 기반으로 기업과 기관에 <전략 컨설팅> 및 <AI활용 강의> 등을 하고, 뉴스버스에 'AI리터러시'를 연재하고 있다. ‘AI 시대 공감이 경쟁력’이라는 주제로 쓴 <공감지능시대>라는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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