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월인천강·月印千江’, '아트스페이스엑스'에서 12월 21일까지

강경구(Kang Kyung Koo·73) 작가는 ‘<아침이슬> 작곡가 김민기(1951~2024·경기중고 65회)와 같은 경기중고(68회) ‘미술반’ 출신이다. 

강경구 작가 / 사진 제공=강경구
강경구 작가. (사진 제공=강경구)

“우리는 교문 밖으로 뛰쳐나가 눈에 보이는 현실, 펄펄 살아 움직이는 모습을 그렸습니다. 미술실에 앉아 얌전히 정물화나 그리게 했더라면 6년씩이나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사물을 정공법으로 맞닥뜨리는 기질이 그때 생긴 것 같아요.”(김민기/ 동아일보 2002년 1월 31일)

‘강경구 화풍’은 어쩌면 이미 경기중고 미술반 시절에 형성되었는지도 모른다. 강경구는 그림을 좋아하면서도 미대 진학하는 방법을 몰랐다. 재수해서 1973년 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전공이 나뉘었다. 대부분 동양화가 무언지 모르니 동양화과에 지원하지 않았다. 배우지 못한 것이니 배워보자는 마음으로 자원했으나 곧 어려움에 직면했다. 화선지는 얇고 붓은 낭창낭창했다.

스승들은 먹을 탁하게 쓰지 말고 깨끗하게 쓸 것을 강조했다. 수묵 문인화의 정신성, ‘격조’가 스트레스가 될 정도였다.

1987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백악미술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2~3년간 풍경 작업이 이어졌다. 대학원 강의를 나온 최완수(83) 선생은 종종 학생들을 간송미술관으로 불러들여 수업했다. 

강경구는 대학 전임교수로 재직하며 미술관 무급 연구원으로 10년을 보냈다. 한문을 기초부터 배우고 우리나라와 중국의 전통 화론(畵論)을 공부하며, 미술관이 소장한 겸재 정선, 김홍도, 신윤복 등 대가의 그림을 보고 또 보고, 수없이 모사(模寫)했다.

작가로서의 지향점을 고민한 끝, 1989년부터 관악산, 북한산, 인왕산 등지를 답사하며 ‘서울 별곡’ 시리즈에 몰입한다.

“(1990년대 작품들은) 화면을 채색으로 꽉 채울 뿐 아니라 크고 작은 붓을 사용하여 여러 겹의 갈필로 문지르고 호분을 입혀 두터운 양괴감을 만들어내는 기법이 주종을 이뤘다.”(미술평론가 박영택) 

서울별곡- 서십자각 96 x186cm 한지에 수묵 채색 1991년
서울별곡- 서십자각 96 x186cm 한지에 수묵 채색 1991년


1998년 동산방화랑 전시에는 수묵 일변도 작품을 내놨다. 주로 산을 그리다 보니 형상이 뇌리에 박혔다. 이걸 벗어나고자 정글같은걸 그려 실컷 뛰어놀자 마음먹었다. 숲 시리즈는 경기도 용문산 자락 작은 작업실을 얻으면서 시작되었다.

2000년 제 12회 이중섭미술상을 수상하였다. 상 제정 이후 한국화 부문 첫 수상이었다. "서양화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선인들의 장인정신과 조형의식은 살려냈다" "포효하는 야수같다"는 평이었다. 지금부터 25년전, 화단의 패권이 한쪽으로 심하게 기울어져 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2003년 인도 여행이 계기가 되어 작가들만으로 멤버가 이루어졌다. 이후 여행은 몽골, 튀르키예, 그리스 등으로 이어졌다. 출발 전 전시 기획을 하고 보름~한 달 간 여행을 다녀와 현장감 있는 작품들을 내걸었다. 몽골은 초원 다니는 자체가 목적이었다. 밤에는 사막 가까운 곳, 하늘에 펼쳐진 서서히 떠오르는 ‘은하수 띠’는 영겁(永劫)으로 안내하는듯 하였다. 동료들과 어울려 보드카를 마시며 몸을 데웠다.

2011년 전시 '먼 그림자-산성일기'의 모티브는 김훈 소설 '남한산성'이다. 문장은 짧고 마른 침이 꼴깍 넘어갈 정도로 건조하다. 작가는 소설과 노예제를 근간으로 하는 왕조국가 기록물 조선왕조실록 자료도 찾아 읽었다.

산성일기-행궁 25919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1
산성일기-행궁 259194cm 캔버스에 아크릴 2011


“그 갇힌 성 안에서는 삶과 죽음, 절망과 희망이 한 덩어리로 엉켜 있었고, 치욕과 자존은 다르지 않았다. 말로서 정의를 다툴 수 없고, 글로서 세상을 읽을 수 없으며, 살아 있는 동안의 몸으로서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을 다 받아내지 못할진대, 땅 위로 뻗은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으리.” (김훈/ 남한산성 4쪽 /학고재 2007)

17세기 병자호란을 피해 인조가 머물렀던 남한산성 행궁의 적막한 모습을 붉은 색의 목이 잘린 부처와 청색 기와지붕을 대비시켜 뚜렷한 선과 두터운 붓질로 기록했다. 

2014년 전시 '浮游(부유)하다'는 세월호 사건 8개월후 열렸다. 물에 떠있는 집, 물 속을 걷는 사람들을 내걸었다. 2004년 인도 갠지스 강을 여행하고 연 전시 <물길>의 분위기가 소환되었다. 갠지스는 일본 소설가 엔도 슈사쿠(Endo Shusaku·1923~1996)의 유작 <깊은 강>에서 선과 악이 혼재한 모든 삶을 포용하는 신의 존재를 드러낸다.

강경구는 억울하게 바다에서 죽은 300여 영혼들을 추모하며 땅을 딛고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지에 대한 존재론으로 귀결하였다. 이해 겨울은 유난히 스산했다.

목판화는 2003년부터 미대 선배이자 가까이 살았던 이상국(1947~2014) 작가 영향을 받아 시작했다. 이상국의 판화는 정치적 저항성이나 풍자보다는 당대 현실이나 서민의 생활상에 집중하였다.

목판화의 판각은 단칼에 모든 것이 결정되기에 무당이 작두 위에서 춤을 추듯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고 한다. ‘다섯개의 문’ 시리즈는 실제 문짝으로 사용되던 나무 판자에 초상을 새겼다. 물리적 질감을 중요하게 보았다. 2015년 목판화만으로 두 번의 전시를 가졌다.

강경구에게 목판화는 회화와 구분되는 별개 장르가 아니다. 작은 크기 회화는 간결성이 돋보이는 목판으로 만들어 보고, 그림이 될 것 같으면 다시 회화로 옮겨온다. 큰 그림도 목판으로 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목판화는 이미 완성된 독립된 조형성을 갖는 별개의 장르이면서, 대상(풍경)의 해체와 재구조화 과정을 반복하는 과정적(processional) 매체이다. 강경구 머리 속에는 서양화와 동양화 구분 자체가 아예 없다. 작업 지향점에 따라 장르, 재료와 작법을 취사선택할 따름이다.

“액티브하고, 거칠고, 즉발적인 표현주의적 형태감과 색채와 붓질과 물질감은, 그만큼 충동적인 그리기 유희성을 수렴한 그림이다.”(미술평론가 김진하)

다섯개의 문-새벽이 오기 전, 238 x 172cm 나무에 판각 2015 
다섯개의 문-새벽이 오기 전, 238 x 172cm 나무에 판각 2015 


강경구에게 중고 미술반시절부터 70대에 이른 지금까지 형성된 자신을 관통하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 특정한 방식으로 대상에 질서를 부여하는 에피스테메(epistémè)가 작동한다.

강경구의 화면 속에 등장하는 인간들은 기호화되어 있다. 실존적 인간에 대한 기대를 담은 반어법적 표현이다. 태고적 산하(山河), 강원도 동강을 조망하는 시선에도 에피스테메는 적용된다. 동강은 정선~평창~영월 지역의 산과 뼝대 사이를 흐른다. ‘뼝대’는 절벽을 뜻하는 지역 사투리다.

뼝대3 캔버스에 아크릴 145 x 145cm 2025
뼝대3 캔버스에 아크릴 145 x 145cm 2025


작가는 잔설이 드문드문한 2025년 초봄에 정선군 신동읍 연포마을을 찾았다. 절벽과 물길, 바람이 만드는 소리는 환청이 되어 스케치북 위에서 춤사위가 된다고 했다. 몽골의 초원에서 경험한 환청과도 같았다. 마을 뒤편 작은봉·큰봉·칼봉 세 개 봉우리 뒤로 숨었다 나오기를 반복해 하루에 달이 세번 뜨고 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연포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90 x 200cm 2025년
연포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90 x 200cm 2025년


달은 인간이 우러러보는 수직적 존재이다. ‘하늘의 달이 천 개의 강물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은 해가 사라진 밤을 지배한다. 강경구는 여행을 하며 시대를 본다.

사유가 아닌 순간의 감각으로 건져 올린 선과 색은 작업실 화폭에서 ‘형언불가의 공간(L'Espace indicible)’으로 완성된다. 인간이 스쳐 지나가듯 스며든 풍경, 시간이 품은 대상(對象)은 강경구의 몸과 정신을 빌려 특유의 강렬한 색채와 대담한 포치(布置: 넓게 늘어놓음)를 특징으로 하며 확장한다.

서울 청계산 자락, 서초구 ‘아트 스페이스 엑스(Art SpaceX)’에서의 전시 <월인천강·月印千江>은 12월 21일까지 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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