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와 노동 착취 위에서 이뤄진 '로켓배송' 쿠팡

국회의 '김범석 의장 증인 신청 방탄' 목적 돈·노력 안 아끼는 쿠팡

검찰 간부가 나서서 '퇴직금 미지급' 불기소 애써주는 쿠팡

국내 기부 약속 저버리고 미국에 672억원 기부한 김범석 이사회의장

서울의 한 쿠팡 물류창고. (사진=연합뉴스)
서울의 한 쿠팡 물류창고. (사진=연합뉴스)


일회용품 노동자’의 회사

“헬퍼님, 헬퍼님, 헬퍼님!!!”

누군가를 다급히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족히 8~9m는 됨직한 천정 높은 공간 안이었다.

삐삐거리는 기계 신호음과 바닥에 물건 떨어지는 소리, 뭔가를 마이크로 지시하는 소리, 전기차 굴러가는 바퀴 소리 등등 수없이 많은 소리가 뒤엉키며 귀에서 웅웅거리니 누군가 부른들 제대로 알아듣기 어려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하지만 이유는 따로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의 속도에 맞춰 모터가 달린 듯 쉼없이 팔과 허리를 움직이다 보니 소리와 메시지를 구분하는 뇌의 기능 일부가 사실상 정지될 수밖에 없었다.

“유리병 박스는 벨트 위에 올려놓으시면 안돼요.”

결국 ‘헬퍼 리더’가 다급히 쫓아와서 툭툭 팔을 치며 얘기했다. ‘헬퍼님’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캠프’라고 부르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새벽 1시반부터 오전 9시까지 뇌를 잠시 내려놓고 수천 수만 개 박스를 벨트에 실어 올리는 단순노동이건만 초짜 알바는 별 ‘헬프’가 되지 않았다. 경험이 풍부한, 아마도 계약직 노동자인 듯한 손 빠르고 숙련된, 그리고 몹시 성실한 ‘헬퍼 리더’는 그 뒤로도 몇 차례 ‘헬퍼님’을 황급히 부른 뒤 이러저러한 핀잔 같은 조언을 반복했다.

한밤중 7시간 반의 일용직 노동. 30분의 휴게 시간을 제외하고 꼬박 7시간 동안 단 1분도 허투루 숨 돌릴 여유가 없었다. 키 높이 이상의 박스더미에서 이동 벨트 위로 쉴 새 없이 박스를 날라야 했다. 간혹 깃털처럼 가벼운 박스도 있지만, 허리가 순간 뻐근해질 만큼 묵직한 음료수, 세제 박스도 많았다. 수북이 늘어선 1.5리터 초록매실 12개 들이 박스 십수 개 앞에서 순간 멈칫거리기도 했다. 계속 반복되다보니 초록매실 박스에 붙은 주문 송장에 쓰여진 ‘서울 광진구 광장동 전*영’씨가 짧은 순간 원망스럽기도 했다. 오전 9시 정각을 가리키는 마지막 1분의 순간까지 물류 기계의 일부가 된 듯 박스를 던지듯이 옮기고, 옮기듯이 던져댔다.

그동안 왜 집으로 배달되는 쿠팡 박스가 형편없이 찌그러져 있곤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 ‘파손 주의’라는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박스 역시 마찬가지 신세였다. 끊어질 것 같은 내 허리의 파손을 주의할지언정 박스 내용물의 파손 여부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화장실도 가지 못 하고, 박스 옮기는 중 급하게 물 한두 모금 마시는 것을 빼고는 퇴근 직전 마지막 1분 1초까지 쥐어짜졌다.

이러한 심야 시간의 분류, 배송 작업 등을 거쳐 전날 밤 주문한 물건이 다음날 새벽 집 앞에 도착하는 마법과도 같은 쿠팡의 ‘로켓 배송’이 가능해진다.

밤샘 일을 마치고 쿠팡 지하 물류센터 캠프를 나서서 지상으로 올라와 몽롱한 정신과 탈진한 몸 속에서 맞는 너무도 쨍쨍한 아침 해는 비현실적이기까지 했다. 이날 하루 알바를 시작하기 전에 들었던 ‘밤잠이 많은 편인데 새벽에 일하다 졸리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사치 그 자체였다. 땀에 흠뻑 젖은 채 일하는 것은 그 어떤 각성제보다도 더 큰 각성제였다.

설령 밤샘 물류 노동에 질려버린 이가 두 번 다시 쿠팡 알바 현장을 찾지 않더라도 쿠팡으로서는 별로 아쉬울 것이 없다. 새벽 로켓 배송에 내몰려 사람이 퍽퍽 쓰러져 나가도 마찬가지다. 구인 광고를 올리면 밤중이건 새벽이건 일을 하겠다고 찾아오는, 취업난과 생활고를 겪는 부나비 같은 ‘일회용 노동자’들이 여전히 넘쳐나고 쿠팡은 그들 중 골라서 쓰면 되기 때문이다. 또한 특수 고용 개인사업자 신분이지만 사실상 쿠팡에 종속돼 일하는 배송 노동자들 또한 넘쳐나는 상황이니 쿠팡은 늘 문전성시다. 게다가 많은 소비자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오늘도 쿠팡 앱을 켜고 각종 물건들을 클릭하고 있다.

최근 쿠팡의 새벽 배송 제한을 놓고 찬반 양론이 분분하다. 민주노총이 노동자 건강권을 얘기하며 새벽 배송 금지와 관련한 의제를 제기하자 쿠팡 노조(민주노총에 소속되지 않은) 등 다른 한쪽에서 노동자 일자리 선택 문제, 소비자 이용 편의성 상실 문제 등을 제기하며 반대 입장을 펴고 있다.

최초 민주노총의 논의가 건강권 문제가 부각되는 방식으로 제기되면서 쿠팡의 물류 노동 시스템이 갖고 있는 문제의 개선 필요성 과제는 사라지고 여러 부문에 있어서 새벽 노동의 적절성으로 묘하게 뒤바뀌고 있다. 이 논의를 지켜보는 쿠팡은 슬그머니 웃음을 참고 있지는 않을까.

국회 보좌관들 억대 연봉 주며 ‘수집’하는 회사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매달 한 차례씩 정기회의를 연다. 이 회의에서 국회직 4급 이상 공무원, 즉 국회의원 보좌관, 국회 사무처 서기관급 이상, 국회의원 등의 재취업의 승인 또는 제한 여부를 논의한다. 퇴직 이후 3년이 경과하지 않은 이들이 심사 대상자이며 이들의 퇴직 전 5년 동안 직무 내용 등을 분석한다. 입법과 관련해 구체적인 공적 업무를 맡던 이가 민간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 사전 영향력 행사, 직무 관련성 등을 점검하며 유착 관계를 막기 위한 취지다. 특히 국회 보좌관 등으로 일했다면 그 기간 동안 해당 국회의원 상임위와 취업 대상기관과의 관계, 대표발의 법률의 내용, 보조금 수령 여부 등을 두루 살핀다.

이 공직자윤리위에 취업 대상 기업으로 거의 빠짐없이 올라오는 단골 기업중 하나가 바로 쿠팡이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 보좌관 출신이라면 거의 매달 1~2명 정도씩은 부장급 또는 임원급으로 뽑는 추세다. 연봉은 대체로 1억 2,000만~1억 5,000만 원을 훌쩍 넘기 일쑤다.

서류상으로 보자면 이들이 맡기로 한 업무 내용은 대개 법률 검토, 입법 과정 자문, 대외협력, 사회공헌 등으로 기재되곤 한다. 쿠팡은 도대체 왜 이리 국회 보좌관 출신들에게 억대 연봉을 줘가면서 임원으로 마구마구 채용하고 있는 것일까.

짐작되는 바가 없지는 않다. 16조 1,620억 원의 자산 규모(2024년말 기준)를 가졌고,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쿠팡은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플랫폼 불공정거래, 수수료 정산 문제, 작업장 안전사고, 배송 노동자 과로사 등등등의 다양한 형태로 이어져왔다. 매년 10월 국정감사가 열리면 국회 정무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산업통상자원위원회 등 다양한 상임위에서 빠지지 않고 증인으로 채택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올해 국정감사 역시 김범석 쿠팡 의장을 비롯해 쿠팡 계열사 대표들이 줄줄이 증인으로 채택됐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수집’한 보좌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할 시기다. 이들은 오직 이 한 순간 빛을 발해야 한다. 이들이 협업해서 원천적으로 국감 증인 채택을 막았다면 억대 연봉 이상의 밥값을 충분히 해낸, 최상의 성과다. 아니면 적당한 사유를 들어 불출석하거나, 설령 출석하더라도 더 이상 국회 안에서 문제 확산을 막아내기만 해도 임원들에게 쏟아낸 수십 억 원의 연봉이 아깝지 않을 테다. 보좌관 출신들에게 이리 공을 들인다면 실제 입법기관 역할을 하는, 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회의원들을 어떻게 대할지는 그저 짐작할 뿐이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올해 1월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날 트럼프 주니어가 콘래드 워싱턴DC 호텔에서 개최한 비공개 리셉션에 참석해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범석 쿠팡 이사회 의장이 올해 1월 1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식 전날 트럼프 주니어가 콘래드 워싱턴DC 호텔에서 개최한 비공개 리셉션에 참석해 러트닉 미 상무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퇴직금을 안 줘도 검찰이 나서서 면죄부 주는 회사

국회 보좌관 출신의 쿠팡 임원이 행하는 대관 업무는 소소한 ‘기름칠’ 정도일 수 있다. 진짜는 따로 있는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끝난 올해 국정감사에서 그 실체가 간접적으로나마 확인됐다.

쿠팡 노동자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수사하던 문지석 검사가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눈물을 흘리며 쏟아낸 격정 발언이 화제가 됐다. 문 검사는 “대검 수사보고서에서 (쿠팡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핵심 증거를) 빼라고 지시했다”면서 “200만원 정도 되는 퇴직금이라도 신속하게 받게 됐으면 좋겠다”고 울먹였다. 사실상 국감장에서 검사의 내부고발이 나온 셈이다. 흔히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 사건은 노동청에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긴 상태였고, 압수수색 결과 근로기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할 결정적 증거도 확보했지만, 당시 엄희준 인천지검 부천지청장이 쿠팡을 불기소하고 면죄부를 주기 위해 문지석 부장검사에게 외압을 행사했다는 폭로였다. 대장동 수사로 이름을 널리 알린, 바로 그 엄희준 검사다. 그는 기소 의견을 굽히지 않은 문지석 부장검사를 배제하고 전결권을 박탈하며 담당 검사를 직접 불러 사건 처리 방향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장급까지 쿠팡의 의도 아래, 손바닥 위에 있는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가만히 있는 쿠팡을 그렇게 무리하면서까지 봐줘야 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쿠팡이 마음만 먹으면 있는 죄도 덮어버릴 수 있는 형사사법적 관계망을 확보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쿠팡. 최저시급 일용직 노동자에게는 처절하리만큼 가혹한 노동 조건을 제공하는 무자비한 회사이면서, 기업 보호 대관 업무를 위해서는 보좌관 출신들을 무더기로 채용하며 억대 연봉도 아끼지 않는 회사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최후의 보루’와도 같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검사들을 향해 그동안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을지 그저 짐작만 된다.

물론 1년 뒤면 검찰청이 해체되고 수사권과 기소권은 분리된다. 다만 여전히 신설 공소청에서 기존의 검사들이 이렇게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수사권과 기소권의 분리만으로 턱없이 부족하겠다는 우려가 가시지 않는다. 쿠팡을 비롯한 특정한 이익집단, 민간기업과 유착돼 있을지 모르는 검사들이 수사권은 없어질지언정 앞으로도 여전히 공소권을 갖고 있을 검사들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꼼꼼한 사회적 견제와 감시의 필요성을 절감한다.

매출의 90%가 한국에서 발생하는 쿠팡이고, 한국의 저임금 노동자들 영혼까지 갈아 넣어 굴러가는 쿠팡이건만 김범석 쿠팡 이사회의장은 우리 돈으로 약 672억원 어치의 쿠팡 주식 200만주를 미국의 자선기금에 기부했다는 사실이 최근 뒤늦게 확인됐다. 국내에도 기부하겠다는 약속은 내팽개쳐졌다. 미국 시민권자인 김 의장의 세금 절감이 목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건, 노동자의 입장에서건 우롱당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그럼에도 엉뚱한 곳으로 번지는 쿠팡 새벽 배송 논란 뒤에 슬그머니 숨어버리는 쿠팡, 검찰의 수사외압, 면죄부 불기소 비판 덕에 퇴직금 미지급 책임이 묻혀버린 쿠팡, 이 쿠팡을 어찌해야 할까.

박록삼은 25년 동안 서울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다 이태 전 그만뒀다. 논설위원 재직시에는 '씨줄 날줄' 칼럼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교차시켜 통찰을 제공하는 글을 써왔다. 2024년 제14회 5.18문학상(소설 부문) 수상으로 등단, 문학 작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지금은 뉴스버스 등 몇몇 매체에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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