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
‘집값 오름세 주춤할 때 차라리 증여’ 판단…부의 대물림 가속
서울 아파트 직거래도 43% 급증…가족 간 '증여성 거래' 확산
국세청, 부동산 탈세 '실시간 추적망' 가동…편법증여 잡는다
정부의 강력한 수요 억제로 집값 급등세가 주춤한 틈을 타 2030 자녀에게 아파트를 증여하는 사례가 폭증하고 있다. 자녀에게 현금을 편법 증여해 고가 아파트를 구입했다가 국세청에 적발되는 경우도 늘어나는 추세다. 수도권 선호지역에 공급을 늘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서 집값이 중장기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집값 상승 기대에 2030세대 증여 1년새 43% 폭증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8월 서울 집합건물(아파트·연립·다세대·오피스텔·상가 등)을 증여받은 2030세대(19~39세)는 2,027명으로, 작년 같은 기간(1,417명)보다 43.04% 치솟았다. 20대 수증인은 34.4%, 30대는 47.1%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서울 부동산을 물려받은 미성년자 또한 162명으로 작년보다 25.6% 늘어났다.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 거래가 쉽지 않은 데다 집값 상승세가 둔화한 틈을 이용해 증여세를 줄이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당분간 주택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수도권 요지에 대규모 공급이 어렵다는 점도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게 하는 요인으로 보인다.
올해 서울에서 공인중개사를 거치지 않고 직거래로 아파트를 매수한 사례 또한 크게 늘어났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통계를 보면, 올해 1월부터 10월 21일까지 서울 아파트 직거래 매매 건수는 2,690건으로 집계됐다. 작년 같은 기간(1,881건)보다 43% 급증한 수치로,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21년 11월 이후 역대 최대 규모다.
전문가들은 가족 등 특수관계인 간 ‘증여성 거래’가 급증한 영향으로 분석한다. 집값 상승 기대감이 여전한 가운데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부모와 자녀 등 특수관계인 간 거래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현행 세법상 가족 간 부동산 거래는 시세와 실제 거래금액의 차액이 30% 이내에서 최대 3억원 싸게 거래해도 증여가 아닌 정상 거래로 인정된다.
올해 주택 증여 시계가 빨라진 다섯 가지 이유
올해 부동산 증여가 폭증한 데는 정부의 강력한 수요 억제책이 작동했다는 분석이다. 증여세는 자산가치에 비례해 내는 세금이라 집값 상승세가 둔화했을 때 증여해야 유리하다. 더욱이 정부가 서울 전역과 경기 12곳을 규제 지역으로 묶어 대출을 규제하면서 매도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장년∙노인 세대가 주택 매도 대신 증여를 선호하는 배경이다.
9·7주택공급대책에서 서울과 수도권 요지에 단기 공급 방안이 빠져 있어 중장기적으로 집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집값이 계속 오르리라 예상되는 상황에서 향후 양도세 부담을 줄이려면 미리 증여를 하는 게 낫다고 본 것이다.
최근 2030 세대의 결혼이 늘고 있는 것도 증여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최근 내놓은 '인구동향'에 따르면, 8월 혼인 건수는 1년 전보다 1,922건(11.0%) 늘어난 1만9,449건으로, 같은 달 기준 2017년(2만68건) 이후 8년 만에 가장 많았다. 작년 4월 이후 1년 5개월 연속 증가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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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서울 전역과 경기도 12곳 규제지역 지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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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대출 규제로 매도가 쉽지 않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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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서울 집값 상승세 주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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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9·7주택공급대책에 서울 단기 공급 방안이 빠져 있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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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혼인 증여재산 공제한도 1억원 확대(신혼부부 총3억원) |
정부는 지난해 저출생 대책의 일환으로 혼인∙출산에 따른 증여재산 공제한도 1억원을 추가, 기존 5,000만원 한도를 더하면 신혼부부의 경우 총 3억원의 증여공제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부모의 주택을 증여받는 결혼 자녀의 세금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셈이다. 문제는 주택 매도 대신 증여를 택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시중에 매물이 풀리지 않는 매물잠김 현상과 부의 대물림이 심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부모 찬스를 누리지 못하는 청년 세대의 내집 마련이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 편법증여 정조준…’부동산 감독 추진단’ 3일 출범
증여세 부담을 피하기 위해 자녀에게 현금을 편법 증여해 아파트를 구입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국세청은 아파트 취득 거래에 대해 자금출처 검증을 대폭 강화하고, 증여 거래에 대해서도 증여세 적정 신고 여부를 빠짐없이 들여다본다는 계획이다. 실제 편법 증여와 같은 투기성 거래에 대응하기 위한 '부동산 감독 추진단'이 3일 공식 출범했다.
추진단은 국무조정실,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금융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등 관계부처로 구성된 상설 조직으로, 부의 대물림을 위한 편법 증여 등 불법 행위에 강력 대응할 방침이다. 국세청은 국토부에서 넘겨받은 자금조달계획서를 자산·소득 등 과세자료와 연계해 분석, 기재 내역이 사실과 다르거나 자금출처가 불분명해 편법 증여가 의심될 경우 '자금출처 조사' 대상으로 선정해 자금 흐름을 추적하기로 했다.
증여세를 줄이려면 주택을 한 번에 증여하지 말고, 10년 단위로 나눠서 증여하는 게 유리하다. 10년 내 5,000만원 공제한도를 반복해서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소유 아파트를 자녀 2명에게 5대 5로 증여하면 역시 5,000만원 공제한도 혜택을 2배로 받을 수 있다. 자녀에게 주택을 물려주면서 재산가액을 헐값으로 책정했다가 거액을 추징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증여 부동산의 가격이 애매한 경우엔 감정평가를 통해 객관적인 증여재산가액을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2024년 6월 뉴스버스에 공동대표로 합류했다가 2025년 5월부터 고문으로 물러나 경제평론가로 활동하며 칼럼 등을 기고하고,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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