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정치자금 조성 위해 이병철 회장에게 비료공장 건설 강요
세계 초일류 기업 걸맞은 사회적 책임 중요, 부정적 유산 털어내야
삼성은 대한민국이 자랑하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집단이다. 한국경제의 고도 성장과 산업화를 이끈 주역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위상에 걸맞지 않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그림자의 중심에 바로 창업자 이병철 회장의 정경유착이라는 업보가 있다. 삼성 3세 경영의 주역 또한 편법 증여로 막대한 부를 축적하며 경영권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두 차례나 감옥을 드나들었다.
삼성은 한국경제를 선도하는 핵심축이기에 이제 과거의 그림자를 털어내고 새 출발을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삼성 성공의 이면에 드리운 불공정 행위를 박제하고 역사에 드러냄으로써 어두운 과거를 완전히 털어내야 한다. 삼성이 사회에 진 빚을 갚고 국민의 기업으로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 3세 경영의 성공에도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삼성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의 경영사를 정리해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효성 창업주와의 동업이 삼성 성장의 발판
경남 의령 출신인 이 회장은 1,000석 농지를 소유한 대지주의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1936년 마산의 정미소가 첫 사업의 출발이었는데 연속 적자로 접는다. 이후 만주와 중국으로 두 달여 여행을 다녀온 후 대구에서 삼성그룹의 모태인 ‘삼성상회’를 설립해 과일과 건어물 유통에 뛰어들었다.
이 회장이 실제 자본을 축적한 계기는 양조 사업이었다. 일제시대 대구에서 양조 사업으로 큰 돈을 벌었던 이 회장은 1948년 상경해 삼성물산공사라는 무역회사를 출범시킨다. 이 때 효성 창업주 조홍제 회장이 설립 자금 800만원을 빌려줬고, 이 회장이 700만원을 출자했다고 한다. 동향의 이웃인 조 회장은 이 회장에게 거액의 동경 유학비용을 선뜻 빌려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다고 한다.
이렇게 동업이 시작됐고 1953년에 제일제당을, 54년에는 제일모직을 창업했다. 그런데 동업은 오래 가지 않았다. 각자의 투자 규모와 실제 지분이 달라 갈등의 불씨가 됐다고 한다. 그럼에도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1958년 조 회장이 제일제당을,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을 갖기로 합의했다. 이후 이 회장의 수정 제안에 따라 조 회장이 제일제당을 포기하고 은행관리 중인 한국타이어와 한국나일론을 인수하면서 동업을 청산했다. 이 회장은 조 회장과의 동업에 성공해 삼성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긴 했지만 “동업을 절대 하지 않겠다”는 교훈을 마음에 새겼다고 한다.
독점의 위험성 드러낸 '삼분(三粉: 밀가루∙설탕∙시멘트)파동'
1963년에 밀가루, 설탕, 시멘트 가격이 폭등했다. 태풍 셀리가 남부지역을 강타한데다 한해 전에 기록적인 흉년을 기록했기 때문이다. 태풍 셀리로 86명이 숨지고 5만여명의 이재민과 2억여원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시중 곡물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지만 생필품인 설탕과 밀가루 가격도 하루가 멀다고 치솟았다.
정부가 고시가격을 통해 통제하던 밀가루 가격은 4배, 당시 국내 설탕시장 60%를 점유했던 제일제당의 설탕 가격은 10배나 폭등했다. 대한제분, 제일제당 등은 폭리 논란에 휩싸였다. 1963년 정부 예산은 768억6,600만원. 당시 대한제분과 제일제당 등 대기업은 국가 예산의 10분 1에 가까운 70억원의 폭리를 취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검찰 조사로 이어졌지만 “폭리는 있었으나 불법은 없었다”로 결론났다.
설탕과 밀가루는 정부의 원조자금으로 조달된 것이어서 생활고에 시달리던 국민들의 거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삼분파동은 경제적 불평등과 대기업 독점구조의 위험성을 드러내면서 정치적 논란으로 번졌고, 공정거래법 제정 논의로 이어졌다.
연이은 정경유착 의혹 ‘사카린 밀수사건’
1966년 9월 15일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 건설자재 컨테이너에서 사카린이 발견됐다. 한국비료가 사카린 2,259포대(약 55톤)을 건설자재로 위장해 대량 밀수입한 사건이었다. 당시 무소속 김두한 국회의원의 의사당 똥물 투척 사건으로 이어졌는데, 실은 단순 밀수가 아니라 권력과 기업이 연계된 매우 복잡한 정치적 사건으로 드러났다.
박정희는 5.16 군사쿠데타의 명분을 얻기 위해 상당수 기업인들을 부정축재자로 몰아 구속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이병철 회장은 일단 일본으로 피신해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선언하고 구속을 피했다. 하지만 실제 거액의 재산을 헌납한 흔적은 없었고 재계에서 은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삼성은 승승장구했다. 시중에는 박정희와 은밀한 거래가 있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난무했다.
이 와중에 등장한 한국비료는 이 회장과 박정희의 이권 연결고리였다.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공업주식회사는 미쯔이 물산에서 상업차관을 도입해 울산에 요소비료공장 건설을 계획했다. 당시 이 사건에 깊숙이 관여한 이병철의 아들 이맹희의 회고에 의하면, 공장 건설은 정권과의 합의사항이었다. 즉, 1967년 대선 준비에 대한 강박관념과 농촌인구가 절대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비료공장 건설은 정권의 훌륭한 홍보용 업적으로 내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병철은 이 조건을 수락하는 대신에 국민 정부 언론이 비료공장 건설을 지원할 것, 정부가 책임지고 10억원의 은행 융자를 해줄 것, 공장건설에 필요한 인허가 등을 신속히 해줄 것, 공장건설과 관련하여 한 푼의 정치자금도 제공하지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사카린 밀수 사건은 한일 양국의 대기업이 관여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파장이 컸다. 김두한 의원이 1966년 9월 22일 국회에서 똥오줌을 던진 사건이 발생했고, 10월 5일에는 장준하 ‘사상계’ 사장이 박정희를 ‘밀수두목’으로 규탄했다. 박 정권은 이 사건과 발언의 책임을 물어 김두한, 장준하를 각각 9월 24일, 10월 26일에 구속했다.
이맹희 회고록에 따르면, 삼성은 박정희 정권의 협박과 요구에 따라 미쓰이물산의 4,200만달러 차관을 이용해 한국비료 공장을 지었다고 한다. 박정희가 발주하고 이병철 회장이 수행한 위탁사업인 셈이다. 삼성은 한국비료 공장 건설 과정에서 박 정권의 비호 아래 사카린 원료인 OTSA를 비롯해 당시 금수품이던 양변기, 냉장고, 에어컨, 전화기 등을 건설자재로 속여 밀수한 뒤 암시장에 되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겼다.
결국 박정희가 정치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삼성을 이용한 셈이다. 사카린 밀수사건이 터지자 박 정권은 한국비료공업 내부 직원의 소행으로 결론짓는다. 이 회장은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했고 차남 이창희가 책임을 지고 구속되면서 종결됐다.
상수원 오염과 투기 논란 휩싸인 용인자연농원
삼성은 1976년 경기 용인 일대 460여만평 부지에 용인자연농원을 개장했다. 당시 수도권 시민이 즐길 수 있는 위락 장소라야 서울 창경원과 중곡동 어린이대공원 정도였다. 용인자연농원은 각종 첨단 놀이시설과 화려한 정원, 사자 사파리 공원 등으로 단숨에 국민의 눈길을 사로잡으면서 수도권 최고의 명소로 떠올랐다.
그런데 일각에선 값싼 용인 일대 땅을 금싸라기로 만든 농지투기의 전형이자 세금 없는 상속 수단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더욱이 용인자연농원은 6만두의 돼지를 키우고 있었는데, 동아일보가 돼지 분뇨를 수도권 상수원으로 흐르는 경안천에 무단으로 버린다고 보도했다. 결국 경안천 오염과 악취로 민원이 빗발쳤고 사회적 논란이 확산됐다.
오늘날 삼성 없는 한국경제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특히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300조원을 넘긴 세계 초일류 기업이다. 매출의 90% 이상을 해외에서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브랜드 순위에서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구글 등 미국의 빅테크 기업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지금의 거대한 삼성제국을 만든 데는 일제 식민지와 전쟁을 극복하고 자본 축적에 성공한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기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삼성의 성공 DNA 한 켠에는 박정희 군사정권의 특혜와 정치자금 지원 등 정경유착의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이 한국사회에 진 창업주의 사회적 채무를 늘 의식하면서 겸손과 배려의 경영에 힘써야 하는 이유다.
이인형은 가치공학(Value Engineering)분야 국제공인 CVS자격증을 보유한 프로젝트 컨설턴트다. 서울대 농학과를 거쳐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뒤 한국신용정보에서 기업 평가·금융VAN업무를 맡았고, 서울대 농생대에서 창업보육 업무를 했다. 지금은 소비자 환경활동 보상 플랫폼을 구축 중이며, 개인신용정보 분산화 플랫폼도 준비중이다. 금융‧산업‧환경‧농업 등이 관심사다. 기후위기 대응 세계적 NGO인 푸른아시아 전문위원이면서, ESG코리아 경기네트워크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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