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stly Cello Festival in Seoul 2025

올해 5년 5회째를 맞이하는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 2025'의 테마는 '솔리마니악(SOLLI-MANIAQUE)'이었습니다. 이탈리아의 첼로 이단아 솔리마(Sollima)와 불어인 마니악(maniaque)의 합성어를 테마로 정한 것을 보면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솔리마의 독특한 첼로 세계로 팬들을 홀릭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한 듯합니다. 지난 9월 15~17일 세종문화회관에서 그 음악회가 열렸는데 저는 마지막 날인 17일 다녀왔습니다. 8명의 국내 정상급 첼리스트와 솔리마가 함께 어우러지는 첼로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그전 이틀의 공연에서는 다른 형식과 연주곡으로 솔리마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연주장인 체임버홀에 들어서는 순간 중앙의 무대 분위기가 사뭇 다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대 배경의 비주얼이 첼로 페스티벌이라기보다는 록 페스티벌에 가깝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일단 솔리마니악이라는 주제엔 잘 어울려 보였습니다. "첼로로 대체 어떤 음악을 들려주기에..." 라는 생각을 하며 착석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확인하는 데엔 불과 채 반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 2025' 연주 전 무대 (세종문화회관, 9. 17)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 2025' 연주 전 무대 (세종문화회관, 9. 17)


8+1, 8대의 첼로가 무대 위에 일렬로 섰고 그 앞에 1대의 첼로가 섰습니다. 거대한 첼로의 선단, 기함과도 같은 그 1대는 선장인 솔리마의 첼로입니다. 그는 인터미션 후 2부에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1부에서 8명의 국내 정상급 첼리스트의 연주를 들었을 때 이미 저는 그의 세계에 빠져들었습니다. "첼로가 이런 악기였나?" 하는 놀람이고 탄성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을 비롯한 하이 음계를 받쳐주는 앙상블 악기로서 우아함과 부드러움을 뽐내는 고전적인 첼로의 모습은 온데간데 찾아볼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첼로가 그렇게 높은 고음의 악기였는지도 몰랐고, 첼로 한 대에서 그렇게나 여러가지 소리가 나는지도 몰랐습니다. 물론 타악기의 역할까지 해가면서 말입니다. 그런 주법의 연주를 안 들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날의 첼로는 그 경계선이 앞으로 더 전진을 했습니다. 거센 파도와 물살을 가르듯 연주자들의 활은 노가 되어 자꾸자꾸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렇게 8인의 연주자들이 들려준 첼로 옥텟은 더 이상의 다른 악기가 필요 없는 그 자체로 완벽 오케스트라였습니다.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날의 주인공 솔리마는 첼리스트이지만 작곡가로서도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물론 첼로곡입니다. 그날 1부에서 들려준 곡들은 모두 그가 작곡한 곡들이었습니다. Lamentatio, Tempesta, Suit Case, Terra Aria, Violoncelles Vibrez... 비탄, 격정, 여행, 대지, 떨림 등 제목에서도 유추될 수 있는 감정의 끝단이 8대의 첼로를 통해 들려진 것입니다. 그것을 표현함에 있어 4현과 활만을 사용하는 기존 연주법으로는 부족해 현이 없는 부분까지 첼로 전체를 다 악기로 사용하는 곡들입니다. 소리가 나올 수 있는 부위에선 다 음악이 나오게 했습니다. 그러니 다르게 들리고 보일 수밖에 없는 그날의 연주였습니다. 

위에서 솔리마를 가리켜 첼로의 이단아라고 표현한 것은 그가 만든 곡들이 이렇게 아방가르드하기 때문입니다. 1962년생인 그는 클래식의 바로크에서 팝의 록음악까지 장르불문, 시대불문의 곡들을 발표하고 연주해 왔습니다. 왠지 그가 태어나고 지금도 살고 있는 시칠리아와 잘 어울려 보이는 그의 음악 세계입니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드디어 솔리마가 등장했습니다. 9대의 첼로, 비워둔 한 자리의 주인공이 나타난 것입니다. 지오반니 솔리마, 그는 흡사 얼마 전 타계한 같은 이탈리안인 조르지오 아르마니를 연상하게 하는 외모와 패션으로 등장했습니다. 제 눈엔 닮아도 보였습니다. 처음 보는 그가 어떤 연주를 할지를 예측 가능하게 한 청바지 룩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장엄한 첼로 오케스트레이션, 첼로 노넷의 연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아!" 하고 탄성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1부에서 어느 정도 오리엔테이션이 되었음에도 그 한 명의 도발적인 연주자는 지금까지 해 온 무대를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1부에서의 놀람과 탄성을 너머 경악 수준으로 그가 첼로를 물어뜯고 쥐어짜듯이 다루고 연주하기에 그랬습니다. 마치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에 등장하는 데이비드 가렛을 보는 듯한 솔리마의 무대였습니다. 8에서 1을 더한, 가히 화룡점정(畫龍點睛)이었습니다.

8+1, 솔리마와 단원들의 열정적인 첼로 연주
8+1, 솔리마와 단원들의 열정적인 첼로 연주


솔리마는 연주 중 앉았다 일어나며를 반복하며 중간중간 팔로 그를 둘러싼 8명의 첼리스트를 지휘하고 입으로는 모자라는 악기 소리를 대체했습니다. 마지막 곡인 보케리니의 <판당고>를 연주할 때엔 원곡의 캐스터네츠 대신 소리를 지르고 무희처럼 춤을 추듯이 무대 위에서 발을 굴러댔습니다. 이렇게 무대 위 첼로와 첼리스트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 영역을 다 활용하며 보여준 그였습니다. 공연장 입장 시 의문을 가졌던 솔리마니악이라는 페스티벌의 네임과 무대 배경의 비주얼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때였습니다.

그리고 앙코르곡이 이어졌습니다. 그때 "어 이건 뭐지?" 하는 반전이 있는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듣고 보니 아는 곡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역시나 솔리마는 거칠고 강렬하게 그의 첼로를 괴롭히며 연주를 시작했는데, 그 어둠 속 혼돈과 뒤틀림의 음악 속에서 그때까지는 들을 수 없던 청아하고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왔습니다. 급작스레 찾아온 고요 속의 평화. 산고 끝에 아기를 순산한 것입니다. 할렐루야! <할렐루야>였습니다. 음악의 어머니 헨델이 만든 <할렐루야>가 아닌 음유 시인이라 불리는 팝스타 레너드 코헨이 만든 <할렐루야>를 앙코르곡으로 들려준 것입니다. 우리에겐 할렐루야의 라틴어인 <알렐루야>로도 알려진 곡입니다.

1984년에 태어난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는 크로스 오버 그룹인 일디보를 비롯해 무려 300여개의 리메이크가 쏟아져 나온 시대의 명곡입니다. 하지만 그날 밤 저는 역대 최고의 <할렐루야>를 들었습니다. 놀람, 탄성, 경악에서 눈물의 계곡을 지나 감동으로 끝난 것입니다. 솔리마가 리딩한 8+1 첼로가 저를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아니, 저뿐만이 아니라 동반자들도 그렇다고 했습니다. 다행히 그날 세종문화회관에서 연주된 <할렐루야>는 곧 다시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음악회는 KBS-TV에서 와서 처음부터 끝까지 녹화를 떠갔으니까요.

축제는 끝나고.. 팬들의 환호에 답하는 솔리마와 단원들
축제는 끝나고.. 팬들의 환호에 답하는 솔리마와 단원들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 2025'는 그렇게 환호와 갈채 속에 3일간의 축제를 마감했습니다. 해를 거듭하면서 그 다음 해를 더 기대하게 만드는 오롯한 첼로 축제입니다. 그런데 솔리마와 같은 최첨단(?) 첼리스트 다음엔 어떤 첼리스트가 초청이 되려나요? 올해 너무 센 음악을 먹인 듯합니다. 아울러 척박한 우리의 음악 환경에서 5년간 첼로 페스티벌을 꾸준히 진행해오고 있는 주관사 프렌즈오브뮤직과 음악감독 홍채원 첼리스트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하광용은 대학 졸업 후 오리콤, 이노션 등에서 광고인 한 길로만 가다가 50세가 넘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사 이때 저때, 이곳 저곳, 이것 저것, 이사람 저사람에 대한 인문학적 관심이 많다. 박학다식한 사람은 깊이가 약하다는 편견에 저항한다. 그래서 그는 르네상스적 인간을 존경하고 지향한다. 박학과 광고는 어찌보면 ‘넓다’라는 측면에서 동일성을 지닌다. 뉴스버스 연재 에세이를 추려 인문교양 에세이집을 출간한 그는 태평양인문학교실의 운영위원장을 맡고 있다. 아래는 하 작가의 책 '테이크아웃 유럽예술문화',  '테이크아웃 유럽역사문명', '테이크아웃 일본근대백년'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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