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학의 경제이슈 분석]

늦은 결혼, 수명 연장으로 은퇴 후 경조사 몰려

돌려받는 경조사비는 평생 뿌린 돈의 절반에 불과

‘적게 주고 적게 받아라’ 경조비 다이어트 필수


은퇴자들의 최대 고민은 무엇일까? 이구동성으로 소득은 많이 줄었는데 끊임없이 날아오는 ‘경조사비’를 꼽는다. 빠듯한 가계 생활비에서 비중이 큰 경조사비 부담 탓에 사회생활을 아예 포기하는 은퇴자도 많다.

통계청이 최근 내놓은 ‘2023년 연금 통계 결과’에 따르면, 11종의 공·사적 연금을 통틀어 65세 이상 고령층이 받는 월평균 연금 수급액은 69만5,000원에 불과했다. 1인가구 최저생계비(124만6,735원)에도 턱없이 모자란다. 

노후 월 297만원 쓰며 100세까지 산다면 자산 10억원 필수

은퇴 이후 적정 노후 생활비(부부 기준)로 국민연금연구원은 월 277만원을, 통계청은 월 324만원을 제시했다. NH투자증권 100세시대연구소가 지난해 시행한 직장인 대상 설문조사에선 월 297만원이 필요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월 297만원의 노후 생활비를 유지하려면 약 6억5,881만원의 자산이 필요한 것으로 계산됐다. 만일 평균수명을 100세로 설정한다면 자산 10억원이 있어야 노후 생활비 월 297만원을 감당할 수 있다. 

노후에는 기초생활비, 의료비, 경조사비 등 기본적인 사회생활에 생각보다 많은 돈이 들어간다. 1년여 전 은퇴한 A(61)씨는 고교 동기 상가에 부의금 10만원을 전달하려다 아내와 대판 싸웠다고 한다. “퇴직해 집에서 쉬는 처지에 무슨 10만원씩이나 하느냐. 소득을 감안해 5만원만 하라”는 것이었다. 

A씨의 가계 소득은 국민연금 월 180만원과 개인연금 50만원이 전부다. “그 동기가 우리 부친상에 10만원 했으니 맞춰서 하는 게 맞지 않겠느냐”고 설득했으나 아내는 막무가내였다. 경조사비로 한달에 보통 30만~50만원이 나가다 보니 아내의 짜증도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A씨는 결국 5만원을 들고 나갔고, 앞으론 체면 몰수하고 경조비를 50% 줄이기로 다짐했다.

조기 퇴직과 수명 연장으로 은퇴 후 더 몰리는 경조사비

경조사는 현역 시절보다 은퇴 이후 더 자주 찾아온다. 평균수명 연장에다 조기 퇴직, 늦은 결혼 풍조 등의 사회적 현상이 맞물린 결과다. 우리나라 직장인의 평균 퇴직연령은 50대 중반이다. 구조조정과 희망퇴직 등으로 법적 정년인 만 60세를 채우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다. 반면 만혼이 일반화하면서 자녀의 결혼 연령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평균 초혼 연령이 남자 33.9세, 여자 31.6세이다. 여자는 30년 전보다 6.2세 많아졌다. 수명 연장 또한 은퇴 후 경조비 부담을 키우는 요인이다.

문제는 이 시기가 은퇴자에겐 보릿고개에 해당한다는 점이다. 소득은 많이 줄었는데, 자녀 결혼 등 집안의 대소사가 밀려들기 때문이다. 이런 와중에 친지 경조사를 일일이 챙기다 보면 빤한 수입으로 가랑이 찢어지기 십상이다. 아내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서, 또는 용돈이 모자라서 아예 사회활동을 꺼리는 은퇴자도 많다. 어떻게 해야 할까?

경조사비, 뿌린 대로 거둬지지 않는 게 현실

적어도 은퇴자에겐 경조사비가 뿌린 대로 거둬지지 않는다. 대부분 미래에 대비한 투자로 여기며 경조사비를 지출하지만, 실제 돌려받는 금액은 평생 내가 뿌린 돈의 절반도 안 되는 게 현실이다. 현역 시절 친인척이 아닌 이해관계로 얽혀 부조를 했던 사람들은 은퇴 후 경조사를 알렸을 때 나 몰라라 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퇴직 후 자녀가 결혼을 하거나 상을 당했을 때 지금껏 뿌렸던 경조비를 모두 회수하겠다는 생각은 아예 접는 게 좋다. 그동안 투자했던 것이 아깝지만 은퇴 후 경조사 문제로 고통받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이 현실적인 선택을 할 필요가 있다. 

은퇴 후엔 체면 버리고 경조사비 액수∙범위 왕창 줄여야

첫째, 정말 친한 사람이 아니라면 경조사를 외면하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다. 경조사 소식이 세금고지서처럼 느껴지거나 정신적·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킨다면 과감히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

둘째, 경조사비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현역 수준과 같은 경조사비를 고집했다가 호주머니 거덜나는 건 시간문제다.

셋째, 자녀 결혼식과 부모님 장례식 등 자신의 경조사를 최대한 간소화하는 게 좋다. 경조사 대상 범위를 좁히면서 가계 형편에 맞춰 지출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뿌린 대로 거두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적게 주고 적게 받는’ 습관을 생활화하자.

고재학은 한국일보에서 33년간 기자로 일하며 경제부장, 논설위원, 편집국장 등을 지냈다. 2024년  6월 뉴스버스에 공동대표로 합류했다가 2025년 5월부터 고문으로 물러나 경제 칼럼 등을 기고하고,  뉴스버스TV에서 주요 경제 이슈를 정리해주는 ‘고재학의 경제버스’를 진행한다.  스테디셀러 <부모라면 유대인처럼>을 비롯해 <절벽사회> <휴대폰에 빠진 내 아이 구하기> 등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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