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과 숙의를 통해 민주사회의 굳건한 소통 창구 돼야
한국언론은 극심한 양극화, 보수와 진보의 진영 대립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기성 레거시 미디어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커지고 있고, 유튜브 등 대안언론 역시 진영화를 답습하며 가짜뉴스 확산의 통로로 전락하는 모습이다. 급속하게 바뀌는 디지털 문명사회에서 한국언론이 진영 대결을 부추기는 도구에서 벗어나, 민주사회의 핵심요소인 사회적 숙의와 토론의 장을 만드는 긍정적인 역할을 해야 할 때이다. 언론인의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진영을 넘어 공론장으로: 한국 언론이 가야 할 길
지금 한국의 언론환경은 ‘갈라진 거울’ 또는 ‘깨진 거울’이라는 표현이 적합할 정도로, 양극화와 진영화의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TV를 켜도, 포털을 열어도, 유튜브를 봐도 진영 논리에 따라 ‘각색된 현실’이 쏟아진다. 특히 극우 유튜브에선 12.3내란을 옹호하고 정당화하는 극단적인 언어가 넘쳐난다. 언론이 ‘진실의 중개자’가 아닌, ‘진영의 대변자’나 ‘증오의 전파자’로 전락했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현실이다.
지난해 한국언론진흥재단 조사에 따르면, “한국언론을 신뢰한다”는 응답은 30%를 밑돌았다. OECD 평균(41%)보다 낮은 수준이다.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최근 조사한 언론 신뢰도 조사에서도 한국은 40개국 중 최하위를 기록했다. 우리 국민이 언론을 믿는 정도가 40개국 중 가장 낮다(21%)는 뜻이다. 참담한 수준이다.
반면, 유튜브·SNS 등 디지털 대안매체에 대한 신뢰와 영향력은 증가했지만, 동시에 가짜뉴스와 알고리즘 기반 ‘확증편향’의 함정도 커지고 있다. 보수·진보 진영 언론의 위험한 평행선도 더욱 가팔라지고 있다. 기성 레거시 언론은 오랜 편향성과 기득권 중심 보도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권위를 잃었다. 보수언론은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 비판에 날을 세우며 ‘반대를 위한 비판’에 나서기 시작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탄압받았던 진보언론은 영향력과 소통력 측면에서 취약한 상황이다. 대안 언론인 유튜브 채널들 역시 상대방에 대한 낙인찍기와 함께 콘텐츠는 점점 더 자극적으로 바뀌고 있다. 조회수 중심 알고리즘은 극단적 주장만 살아남게 만드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결국 국민은 기성 언론을 불신하고 외면하는 상황이 됐고, 이는 정치에 대한 냉소와 분노만 키우고 있다. 인공지능(AI)이 기사와 칼럼, 사진과 영상까지 만드는 디지털 시대에 언론은 무엇을 해야 할까? 정보 전달을 넘어 언론의 본질적 책무인 사회적 숙의와 토론의 공론장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첫째, ‘속도 경쟁’보다 ‘깊이 경쟁’으로 가야 한다. 클릭 수와 속보 경쟁, 받아쓰기와 따라쓰기에 갇힌 기성 언론은 ‘의제설정권’을 잃었다. 언론은 더 많은 시간을 들여 사실을 검증하고 맥락을 본질적으로 해설해야 한다. 단순한 사건 보도를 뛰어넘어 ‘이 사건이 왜 중요하고, 각 이해관계자의 입장은 무엇인지’를 심층 보도하는 독일 공영방송 ZDF를 타산지석 삼아야 한다.
둘째, 양극화가 아닌 ‘다원화’를 반영한 보도가 이뤄져야 한다. 한국언론은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결구도로 모든 이슈를 단순화한다. 그러나 사회는 훨씬 다층적이고 복합적이기 때문에 이런 접근법은 매우 위험하다. 청년, 지방, 여성, 장애인, 다문화 가정 등 다양한 시민의 관점을 뉴스에 담아야 한다. 영국은 시민패널(People’s Panel) 제도가 활성화돼 있으며, 공영방송 BBC가 방영하는 ‘People’s Panel’ 프로젝트는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해 다양한 배경을 가진 시민들의 의견을 함께 소개한다.
셋째, 시민 참여형 저널리즘을 활성화해야 한다. 시민들이 기사 댓글이나 ‘제보’ 수준을 넘어 언론 제작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지역 의제를 선정할 때 시민 투표 제도를 활용한다. 일부 우리 언론이 운영 중인 팩트체크, 정책 검증, 토론 프로그램 등에서 시민 참여를 강화하는 게 중요하다.
“진실은 양쪽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이에 있다”
정치가 분열되더라도 언론은 다리가 되어야 한다. 흔히 협상학에서 거론되는 ‘황금의 다리’(Golden Bridge)를 만드는 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언론은 이념의 깃발을 들고 싸우는 전선을 배격하고, 시민이 모여 숙의하고 함께 해법을 찾는 광장을 만들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극단론자들은 스스로 소멸할 것이다. 유튜브가 주도하는 뉴미디어 환경에서도, 언론은 사실에 기반한 토론의 질서를 세우는 조정자가 되어야 한다.
언론은 진실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어느 진영의 무기가 될 것인가?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의 결과는 언론의 생존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품격을 좌우할 것이다. ‘공론장이 사라진 자리엔, 분열만 남는다’라는 말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 한국언론에 필요한 것은 속도나 선정성, 클릭 수가 아니라, 공공성과 숙의를 통한 민주사회의 굳건한 토대를 만드는 시대적 책임과 과제를 위한 헌신과 도전일 것이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