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취재 경쟁이나 특검 성과 경쟁보다 국민과 교감 중요
누군가는 ‘사정 정국의 시작’이라 했고, 누군가는 ‘국가 정상화의 첫 걸음’이라고 불렀다. 내란 특검법, 김건희 특검법, 채 상병 특검법 이른바 3대 특검법은 지난 10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공포됐다. 이재명 정부 1호 법안이다. 21대와 22대 국회에서 3년에 걸쳐 추진해왔지만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과 당시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의 반발에 막혀 번번이 무산됐다. 그 사이 과반수 이상 국민들의 속은 분노와 불안으로 문드러졌고 세상은 그만큼 암울했다.
2024년 12월 3일 내란의 밤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기까지 꼬박 여섯 달 동안 조마조마하며 가슴 졸이던 국민들의 심정은 최근 우울증으로 서울아산병원에 긴급히 입원했다는 김건희씨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 할 수 없었다. 스무 살 젊은 해병의 죽음 이후 오로지 자신들의 책임만을 면하려 하며, 최종 보스 비슷한 ‘누군가’를 지키는데 급급했던 윤석열 정부의 민낯을 목격한 국민들은 더더욱 진실에 대한 갈증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브이 제로’로 통하며 비화폰까지 지급받고 대통령실 수석과 수시로 통화하고 여당 공천에도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등 국정 농단을 버젓이 저질렀던 김건희씨의 범법을 처벌하는 일은 ‘국민 우울증 치료’를 위해서도 절실한 일이다.
조은석 전 감사원장직무대행, 민중기 전 서울중앙지법원장, 이명현 전 국방부 검찰단 고등검찰부장이 각각 내란 특검, 김건희 특검, 채 상병 특검으로 임명되고 각각 특검보 추천까지 마치는 등 특검 수사 절차가 착착 진행되고 있다. 세 특검에 검사만 총 120명, 특별수사관과 파견 공무원은 총 440명에 이르는 등 헌정 사상 초유, 헌정 사상 최대의 동시 특검이 진행될 예정이다. 헌정 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한 이들이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길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 또한 함께 커질 수밖에 없다. 오는 26일 구속기간이 만료되며 유유히 교도소 담장을 뛰어 넘을 내란 혐의 핵심 피의자 김용현 전 국방장관에 대해 19일 조은석 특검이 추가 기소한 것으로도 특검의 효능감은 이미 예고편처럼 확인된 셈이다.
신문, 방송들로서는 모처럼 ‘큰 장’이 선 셈이다. 조은석 특검이 표현했듯 ‘사초를 남기는 심정’으로 진실을 명확히 밝히고, 관련자들에게 명확한 죗값을 치르게 하는 결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런데, 벌써부터 조짐이 보이고 있지만, 세 특검이 다음 달 활동을 본격화하면 수많은 언론에서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속보’, ‘단독’을 붙여가며 특검발 기사를 쏟아내는 경쟁을 펼칠 것이다. 온갖 취재원 관계망을 동원해 한 마디라도 듣고 나면 사실의 지극히 작은 편린일지언정 스트레이트 기사로 쓸 것이고, 거기에 상상과 추측을 더해 해설 박스 기사도 보탤 것이다.
여기에는 보수언론, 진보언론이 따로 있을 수 없다. 일부 보수적인 매체는 꼬투리를 잡아 특검 활동의 부정적 면모를 부각시키려도 하겠지만, 절대 다수의 매체들은 윤석열 부부의 문제점과 국정 운영의 난맥, 내란 세력의 어처구니 없음을 반복적으로 확인시킬 것이다.
어쨌든 여러 의문점을 남긴 여러 사건들에 대한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며 이를 통해 여전히 답답한 심정의 국민들에게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안겨 줄 수 있다.
헌정 질서 회복과 대한민국 사회의 정상화를 위해 필요한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자칫 8년 전 문재인 정부가 겪었던 오류의 전철을 고스란히 되밟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든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적폐 청산을 핵심 과제 중 하나로 삼았고, 이를 바탕으로 높은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당시 부동산 정책, 소득주도성장, 청년 일자리, 검경 수사권 조정 등 여러 개혁 과제들이 미흡하거나 실패로 끝난 배경에는 적폐 청산 과정 속 높은 지지율에 기대 현실을 냉철히 바라보지 못한 잘못 또한 분명히 있었다. 적폐에 대한 국민의 분노와 환희 속에서 차분히 현실을 짚어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2025년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은 오히려 더욱 절박해졌다. 미국 중심의 일극 패권이 아닌 다극 체제로 접어드는 지구 운영 질서의 대전환이 외부에서 몰아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서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대전환기의 부분적 현상이다. 또한 인공지능(AI)과 에너지 문제로 대표되는 산업 체제의 대개편이 이뤄지고 있다. 누적되고 누적된 사회적 갈등과 대립은 극단으로 치닫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뾰족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기다렸다는 듯 치솟는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고 민생 경제를 차분하게 회복시켜야 하는 당장의 과제도 안고 있다. 이재명 정부, 국민주권정부가 혹여라도 이 복잡한 현실을 일도양단하듯 선과 악으로 나누는 식으로, 혹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식으로만 접근한다면 일부 지지자들의 환호는 받을지언정 한국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는 쉽지 않다.
질서 있고 차분한 특검 활동이 절실한 이유다. 섣부른 피의사실 공표나 특정 언론 매체들의 조각조각 취재를 거부하고 정기 공식 브리핑을 통해 특검의 활동과 수사 방향, 중간 성과 등을 주권자 국민과 교감하고 공유해야 한다.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을 방치하거나 혹은 3특검끼리 성과 내기 경쟁을 벌일 경우 당장은 내란 세력, 적폐 세력에 대한 분노의 해소로 통쾌함은 안겨줄지언정 본질적 변화는 만들기 어렵다.
질서 있고 원칙 있게 특검을 운용할 때 국가 안팎의 숱한 과제에 대한 해법 마련에 이재명 정부 초기 국정 역량의 효과적 분산과 집중도 가능할 것이며 민간 부문, 경제 부문, 시민사회 부문 등 우리 사회 각계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모아낼 수 있다. 3대 특검 모두 성공적 목표 달성을 바란다.
박록삼은 25년 동안 서울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다 이태 전 그만뒀다. 논설위원 재직시에는 '씨줄 날줄' 칼럼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교차시켜 통찰을 제공하는 글을 써왔다. 2024년 제14회 5.18문학상(소설 부문) 수상으로 등단, 문학 작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지금은 뉴스버스 등 몇몇 매체에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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