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와 딥시크의 충격이 불러온 구글의 자기혁신

구글의 AI가 급격히 변신하고 있다. 무엇보다 제미나이(Gemini)는 구글 전체 생태계에 녹아들고 있다. 제미나이, 유튜브, 캘린더, 포토, 드라이브 등 모든 일상 도구에 AI가 통합되며, 사용자의 요청을 '이해하고', '찾고', '기억하고', '알려준다'. 기술이 '도구'에서 '동료'로, '기계'에서 기억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노트북 LM은 발상의 전환을 만드는 등 구글은 검색 제국을 스스로 해체하며 AI 시대의 왕좌를 되찾고 있다. 

이 글 주제에 맞춰 챗GPT가 생성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이 글 주제에 맞춰 챗GPT가 생성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승자의 저주와 코드 레드: 절박한 1등의 각성

기술 업계에서는 정점에 오른 기업일수록 오히려 몰락을 맞는 역설이 종종 반복된다. '승자의 저주'라 불리는 이 함정의 대표적 사례가 노키아와 코닥이다.

한때 휴대폰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는 스마트폰 시대로의 전환을 읽지 못했다. 사진 필름 업계의 제왕 코닥은 1975년 자사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디지털 카메라를 스스로 묻어버렸다. 기존 필름 사업을 잠식할까 두려워 혁신을 미룬 결과였다. 결국 변화를 두려워한 승자들은 시장에서 뒤처졌고, 황금기는 급격히 저물었다.

구글도 예외는 아니었다. 20년 넘게 세계 검색 엔진을 지배해온 구글은 스스로를 'AI 퍼스트' 기업이라 자부했지만, 승자의 자만과 관성에 안주해왔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새로운 발상보다는 기존 광고 수익 모델을 토대로 유리한 결정에 치우치고, 윤리적 논란을 의식해 파괴적 혁신 기술 도입을 주저하는 모습은 혁신 둔감증처럼 보였다. 노키아가 스마트폰을, 코닥이 디지털을 두려워했던 것처럼, 구글 역시 자신이 구축한 질서를 깨뜨리는 데 주저한다면 같은 운명을 맞을 수도 있었다.

2022년 말, 오프AI의 챗GPT가 세상에 공개되자 구글 본사에는 실제로 '코드 레드(Code Red)' 경보가 울렸다. 검색 제국의 왕좌가 처음으로 흔들린 순간이었다.

챗GPT의 폭발적 성장은 구글이 수십 년간 쌓아온 검색 패러다임을 위협했다. AI 시대의 주인공이 구글이 아닐 수도 있다는 충격적 현실이 회사를 깊은 자기 성찰로 이끌었다.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챗GPT 등장 이후 구글은 "평소 루틴에서 벗어나 흔들리며" 검색 엔진에 생성형 AI 기능을 도입하는 시연과 20여 개 AI 신제품 출시 계획을 서둘러 발표했다.

위기 앞에서 구글 수뇌부는 절박한 반성에 돌입했다. 공동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까지 긴급 소집되어 AI 전략 검토에 나섰고, 순다르 피차이 CEO는 사내에 과감한 변화의 메시지를 던졌다. 더 이상 수 천명이 새로운 시도를 만장일치로 반대하며 아무도 승인하지 못하는 느슨한 조직 문화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거대한 구글이 스타트업처럼 빨라져야 한다는 다짐과 함께 "완벽을 추구하되 일단 빠르게 실행하라"는 구호가 울려 퍼졌다.

승자의 여유 속에 미뤄뒀던 결단과 실행력이 챗GPT 충격 이후 비로소 분출되기 시작했다. 내부적으로는 "이러다 구글이 야후 꼴 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공공연했고, 처방은 구글 자신을 송두리째 바꾸는 것이었다.

전면적 자기 혁신의 시작

구글은 기술 인프라, 인재 조직, 제품 철학 모든 면에서 자기 혁신을 가속화했다. 챗GPT 공개 직후, 검색 엔지니어 인력의 20%에 달하는 1,000여명을 즉시 생성형 AI 개발 부서로 재배치했다.

더 극적인 변화는 조직 재편이었다. 사내 AI 연구 조직인 구글 브레인과 알파벳 산하 딥마인드를 전격 합병해 '구글 딥마인드'라는 단일 조직으로 통합했다. 피차이 CEO는 이 결단이 "AI 발전을 획기적으로 가속화할 것"이라며 조직 장벽을 허물고 역량을 결집하는 데 집중했다. 서로 다른 목표로 따로 활동하던 세계 최고 수준의 두 AI 연구진을 한 지붕 아래 모은 것이다.

이처럼 몸집을 스스로 줄이고 중복을 제거하는 조직 혁신은 과거 구글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움직임이었다. 검색 사업팀, 안드로이드 팀 등 각 분야 인재들이 AI 프로젝트에 속속 투입되며 사활을 건 전사적 총력전이 전개됐다. 느리다고 비판받던 구글의 실행력이 마치 물을 만난 듯 속도를 냈다.

딥시크 충격과 AI 전쟁 격화

하지만 구글의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4년 10월, 중국의 딥시크(DeepSeek)가 등장하며 AI 업계에 또 다른 충격파를 던졌다. 딥시크는 AI가 인간을 능가하는 통찰력을 처음으로 체계화한 순간으로 기록됐고, 이 사건 이후 빅테크 주가는 줄줄이 급락했다.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은 오픈AI는 불과 한 달여 뒤인 2024년 11월, GPT-4 터보와 GPT-4o를 선보이며 반격에 나섰다. 토큰 수는 128K로 대폭 확장되었고, 이미지 인식과 음성 기능을 통합한 GPT-4o는 이제 기본 사양이 되었다. 그동안 컨텍스트 윈도우 크기에서 열위였던 챗GPT는 클로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사용자들은 "이제 확실히 좋아졌다"고 체감하기 시작했다.

이에 질세라, 2023년 2월 바드(Bard)의 굴욕적인 첫 시연 이후 구글은 내부적으로 '이러다 챗GPT가 아니라 중국에도 밀리겠다'는 위기감을 공유하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이 글 주제에 맞춰 구글 제미나이(Gemini)가 생성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이 글 주제에 맞춰 구글 제미나이(Gemini)가 생성한 삽화. (자료=뉴스버스)

2025년 Google I/O: 왕좌의 귀환

그리고 마침내 2025년 5월 Google I/O 개발자 회의에서 구글은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구글이 미쳤다, 왕좌의 귀환이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AI 기술을 내놓으며 반격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검색 시장의 제왕이자, 기존 수익성과 정면 충돌하는 AI에 가장 보수적일 수밖에 없던 구글의 이 변신은 더욱 극적이었다.

AI 모델 제미나이는 단순히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섰다. 문맥을 기억하고 긴 문서나 영상을 이해하며 맥락을 연결한다. 회의록, 이메일, 구글 드라이브(Google Drive) 파일들을 넘나들며 사용자의 삶과 업무 조각들을 스스로 정리하는 동반자 역할을 한다.

새롭게 진화한 AI 검색(Search Generative Experience, SGE)은 더 이상 정보를 나열하지 않는다. 사용자 질문에 대해 구글이 직접 사고하고 요약하며 판단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제는 "검색"보다 "대화"가 어울리는 기술이 되었다.

영상 생성 AI 베오(veo)는 단어를 장면으로, 정적인 언어를 움직이는 풍경으로 변환한다. 글이 이미지가 되고, 이미지는 감각이 된다.

구글은 이제 정보를 찾는 기술에서 맥락을 읽고 관계를 맺는 기술로 나아가고 있다. 정보 전달을 넘어 기억과 대화의 관계성이 AI와 인간 사이에 생겨나고 있다.

검색왕의 화려한 귀환

3년여 사투 끝에 구글은 마침내 왕관을 다시 움켜쥐고 있다. 챗GPT와 딥시크의 연이은 충격에서 한때 밀리는 듯했던 구글이 자기 혁신을 통해 화려한 복귀 드라마를 쓰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마라톤을 100M 달리기 하듯 전력 질주했다"는 고백이 나올 만큼 격변의 시간이었다.

결과는 명확했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Alphabet)의 주가는 다시 상승하기 시작했고 투자자들은 구글의 AI 주도권 회복에 다시 베팅하고 있다. 역사는 승자의 오만을 거듭 벌해왔지만, 구글은 스스로를 태워 다시 불꽃을 얻는 길을 선택해 예외적 생존을 이뤄내고 있다. 왕좌에 안주하지 않고 그것을 스스로 부숴 다시 만들기를 주저하지 않는 자만이 진정한 왕으로 남는다.

구글의 귀환은 단순한 기술 경쟁의 승리가 아니라 자기 혁신 철학을 보여준 극적인 사례로 읽힌다. 승자의 저주라는 숙명을 뛰어넘기 위해 구글이 내놓은 해답은 결국 겸손한 성찰과 과감한 자기 해체였다. 그 절박한 1등의 결단이 오늘 구글을 지탱하는 새로운 왕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경쟁은 창조의 가장 큰 엔진이다. 오픈AI가 챗GPT로 첫 포문을 열지 않았다면, 구글은 여전히 검색 광고 수익에 안주하며 느긋한 행보를 이어갔을지도 모른다. 딥시크의 등장이 없었다면, 챗GPT도 지금만큼 빠르게 진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구글의 화려한 반격이 없었다면, AI 시장은 훨씬 단조로웠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업 간 경쟁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바꿀 기술의 대서사시다. 각자가 서로를 자극하며 한계를 뛰어넘고, 불가능해 보였던 것들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이 치열한 경쟁 속에서 우리는 매번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라며 감탄하게 되고, 내일은 또 어떤 놀라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AI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이제 막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김희연은 기업전략 컨설턴트다. 씨티은행에서 출발,  현대·굿모닝·신한·노무라 증권의 IT애널리스트를거쳐 2008년 LG디스플레이로 자리를 옮겼다. 금융·증권· IT·제조 분야 폭넓은 경험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LG디스플레이에선 여성 최초로 사업개발·전략·IR·투자 및 신사업을 총괄하는 최고전략책임자(CSO)에 올랐다. 지난해 퇴임뒤엔 AI 콘텐츠 융합 및 AI 시대 기업 전략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으며 뉴스버스에 AI관련 글을 연재하고 있다. AI시대 기업과 직장인들의  ‘생존법’을 담은  저서 <공감지능시대: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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