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힘 당원들, 상식적 선택 통해 건강한 보수 정립해야

지난 5월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당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3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종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에 참석한 국민의힘 당원들이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22대 대통령 선거운동이 시작부터 후끈하다. 그 탓일까. 이제는 마치 다 지난 해프닝처럼 지나갔지만 아무리 되새겨도 국민의힘 대선 후보 선출 과정은 그야말로 ‘대환장 막장 드라마’였다.

내란 쿠데타를 일으킨 대통령의 파면으로 갑작스럽게 치러지는 22대 대통령 선거다. 위헌적 내란을 막지 못했거나 동조 옹호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후보를 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뻔뻔하고 무책임한 일이다. 그럼에도 그런 와중에 대선후보를 뽑겠다며 꾸역꾸역 치러진 국민의힘 경선 토론회였음에도 국정 운영에 대한 진지함은 없다시피 했다. 

당과 후보들은 ‘다시 태어나면 바퀴벌레로 태어나기 vs 자동차 바퀴로 태어나기’ 등의 밸런스 게임으로 희희덕거렸고, 키높이 구두, 가발 여부 등 입씨름으로 지엽말단적 화제를 모았고, ‘깐족 주고 받기’ 비아냥 토론으로 국민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내란의 위헌성, 반민주성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 아니면 향후 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하겠다는 계획, 혹은 두루뭉술할지언정 국가 운영에 대한 비전과 과제 따위는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진행됐다. 어쨌든 내란 책임 사과를 거부하며 이른바 ‘꼿꼿 문수’라는 별칭을 얻은 김문수 후보가 국민의힘 최종 대통령 후보로 선출됐다. 

흔한 컨벤션 효과? 없었다. 어차피 과반수가 넘는 국민들은 22대 대선을 통해 내란의 완전한 종식을 열망했고, 대선 결과는 익히 예상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대신 ‘역시 내란당, 극우당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구나’라는 인식만 반복됐을 뿐이었다. 1990년 민중당으로 시작해 민자당-기독자유통일당-다시 국민의힘까지 오른쪽을 향한 일관된 삶을 산 인물을 대통령 후보로 뽑은 정당으로서 그 성격과 지향점 역시 크게 다를 수는 없었을 터였다.

하품 나듯 느슨한 때, 그때부터 엄청난 반전이 있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너무나도 흥미진진했다. 그 반전 이후 쏟아지는 뉴스를 시시각각 계속 챙겨볼 수밖에 없었다. 12.3 내란 쿠데타 이후 끊임없이 이를 옹호하거나 동조해온 김문수 후보건만, 그조차 믿지 못하는 이들이 다름 아닌 국민의힘 내부에 있었다니. 단일화 약속을 위반했다며 ‘알량한 대통령 후보 김문수’를 끌어내리고 내란 정부의 총리 한덕수를 새 후보로 옹립하려는 움직임은 끈질기고 집요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12월 3일 내란의 밤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은 듯 더욱 야심한 새벽 시간에 ‘후보 교체 쿠데타’를 시도, 성공했고, 후보 교체의 절차적 추인만 남겨 놓았다.

하지만 위대한 국민들이 빛의 혁명으로 내란 쿠데타를 막아냈듯 ‘위대한 국민의힘 당원들’이 이를 가로 막았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에게 탈당을 권고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15일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윤석열에게 탈당을 권고하겠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내란 우두머리 혐의의 파면당한 대통령 윤석열씨가 여전히 1호 당원인 정당이고, 눈 가리고 아웅 하듯 그가 탈당을 하네 마네 얘기만 겨우 오가는 정당이고, 위헌적 내란 쿠데타에 대해 대선 후보 역시 형식적 사과를 하는 데 그친 정당이라 하더라도, 이 정당의 다수 당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이성을 가진 것임은 분명했다. 정당민주주의를 희화화하고, 당헌과 당규를 비웃으며 정치를 권력의 수단으로 여긴 채 기득권의 전유물로 삼으려는 ‘반정치적 정치인들’의 쿠데타를 저지해낸 것이다. 이는 노욕에 사로잡힌 한덕수 예비후보에 대한 반발 혹은 김문수 후보에 대한 지지가 아니라 정당민주주의를 무너뜨리려는 당 지도부에 대한 분노의 표출이었을 게다.

흥미진진함을 넘어 가슴 속 깊은 적지 않은 충격과 감동이 있었음 또한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빛의 혁명을 이뤄낸 시민들이나 후보 교체 쿠데타를 막아낸 국민의힘 당원들이나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았음은 명백했다. 두 그룹 모두 민주공화국의 건강한 시민이라는 근원적 동질성을 갖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설령 구체적 가치의 지향성이 조금 다르고, 지지하는 정당이 서로 다를지언정 민주주의, 법치주의에 대해 같은 신념을 갖고 있음이 증명된 셈이다. 민주주의자이자 법치주의자인 국민의힘 당원들에게 가했던 관성적인 비판을 거두고, 오히려 ‘동료 시민’으로서 신뢰와 연대를 보낼 수 있음이 확인됐다.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자, 헌정주의자, 법치주의자 국민의힘 당원이라면 이제 마지막 과제가 남겨졌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관위에 특수부대 군인을 보내며 여야 가리지 않고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 했던 것은 당헌 당규를 어기고 정당한 대선 후보를 끌어내리려 하며 정당민주주의를 희화화한 잘못의 수백 수천 배에 이르는 죄악이다. 여야를 떠나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을 용납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나. 

그러한 대통령과 정치인이 한국 사회에 두 번 다시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적 과제다. 그 죄의 무게만큼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는 것 역시 당연한 과제다.

위헌 위법한 내란에 동조하고 옹호하거나 가식적 사과에 그치는 것은 또다른 미래의 내란에 용기를 북돋워주는 일인 만큼 철저히 단죄하도록 하는 것 또한 상식적인 과제다.

이러한 과제 앞에 당당하게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것이 정당민주주의를 지켜낸 국민의힘 당원들 앞에 남겨진 마지막 과제가 될 것이다. 그 상식적 선택을 통해 한국의 건강한 보수는 다시 재건될 수 있는 힘과 근거를 가질 수 있다. 정당과 개개인의 소소한 이해관계를 뛰어넘어 민주주의를 선택해야 할 때다. 이 선택이 건강한 보수의 정립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고, 궁극적으로 한국 사회 민주주의 또한 단단해질 수 있을 것이다. 

불과 보름 남짓 남겨둔 대선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K-민주주의는 개별 정당의 지엽적 이해관계, 특정 후보의 호불호 등을 뛰어넘는 우리 모두의 자랑스러운 성과임을 전세계에 다시 한 번 타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국민의힘 당원들에 대한 기대가 크다.

박록삼은 25년 동안 서울신문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하다 이태 전 그만뒀다. 논설위원 재직시에는 '씨줄 날줄' 칼럼을 통해 시대의 흐름과 인간의 삶을 교차시켜 통찰을 제공하는 글을 써왔다. 2024년 제14회 5.18문학상(소설 부문) 수상으로 등단, 문학 작가로서의 길을 열었다. 지금은 뉴스버스 등 몇몇 매체에 저널리즘과 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글을 기고하며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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