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향이 아닌 속도가 중요했던 어느 정치인의 삶
후방으로 돌격했던 일본군
“아군은 본토 방향으로 진격했다.”
과달카날은 솔로몬 제도를 구성하는 섬들 가운데 하나다.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과 일본군은 남태평양에 자리한 이 작은 섬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반년에 걸쳐 육지와 바다와 하늘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태평양 전쟁의 분수령을 이룬 과달카날 공방전이다.
속전속결을 원했던 일본군 대본영의 의도와는 달리 과달카날 공방전은 막대한 물자와 병력이 투입되는 소모전 양상으로 전개됐다. 일본은 소위 ‘야마토 정신’ 하나 믿고서 푸른 산호초 너머로 광활하게 펼쳐진 남태평양까지 무모하게 전선을 넓인 터였다.
민주주의의 병기창으로 불리며 끝없이 물량을 토해내는 미국을 산업생산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처한 일본으로서는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패색이 짙어진 일본군이 결국 찾아낸 타개책은 남은 병력을 수송선에 전부 태워 우리나라 젊은 네티즌들이 즐겨 쓰는 속어를 잠깐 빌리자면 그야말로 ‘빤스런’을 하는 것이었다.
제공권을 완벽히 장악한 미군기들의 폭격을 피하고자 야음을 틈타 은밀히 진행된 ‘과달카날 철수’는 알래스카 근처의 알류샨 열도에 고립된 육군 부대를 짙은 안개를 이용해 배편으로 탈출시킨 키스카섬 철퇴와 더불어 일본군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성공적으로 완료한 단 두 개의 철수 작전이었다. 사지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장병들에게는 단 하나의 비극적 선택지가 주어졌음은 물론이다. 적국의 포로가 되느니 차라리 ‘만세 돌격(Banzai charge)’을 감행하며 죽을 것을 강제한 저 악명 높은 옥쇄였다.
일본군 수뇌부가 병력을 철수시키는 작전만큼이나 고민한 일이 있었다. 민중에게 아군의 후퇴를 그럴싸하게 설명하는 숙제였다. 전시를 맞아 언론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검열이 시행되고 있었음을 고려해도 수만 명의 군인이 목숨을 잃고, 수십 척의 크고 작은 함선이 바닷물 속으로 가라앉고, 수천 대의 각종 항공기를 상실한 중요한 싸움이 아군의 졸렬한 도주로 마무리된 사태를 더는 감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논리가 본토와 가까운 북쪽으로 진격했다는 해괴하고 엽기적인 해명이었다.
필자가 제21대 대통령 선거의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이 엄중한 시기에 왜 뜬금없이 오래된 전쟁사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놨느냐?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해 묘사한 “한 번 꽂히면 백스텝을 모르는” 김문수 국민의힘 공식 대선 후보의 성격이 전진은 있어도 후퇴는 없는 제국주의 시절 일본군의 특징을 연상시킨 연유에서였다.
앞만 보고 후진하는 김문수
그렇다. 일본군은 후퇴하지 않았다. 단지 군대가 진군 경로를 본토 쪽으로 비틀어 여전히 맹렬하게 전진했을 따름이다. 마찬가지로, 김문수는 백스텝 즉 뒷걸음질을 모른다. 다만 그는 바라보는 방향만 부단히 바꾸며 변함없이 앞만 보고 달려갈 따름이다.
김문수가 최근 몇 년 동안 달려온 족적들 잠시 복기해보자. 그는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시장 선거에 입후보했다. 재선 경기도지사 출신의 정치인이 돌연 진보를 수정해 서울시청을 목적지로 삼아 질주했다. 서울시청 입성이 실패한 김문수는 이번에는 극우 신당 창당의 길로 나아갔다.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다음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와 함께 자유통일당을 창당한 것이다.
자유통일당은 조원진 전 의원이 이끄는 우리공화당과 합당했다 결별하는 우여곡절을 거쳐 도로 자유통일당으로 되돌아왔다. 극우 군소정당들의 복잡하고 현란한 이합집산의 역사를 여기에서 일일이 따져볼 필요는 없겠다. 관건은 김문수 후보가 전광훈을 만나 개신교에 귀의했고, 두 사람의 정치적·종교적 인연은 지금껏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군은 과달카날 점령에도 열심이었고, 과달카날에서의 철수에도 열심이었다. 김문수 후보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후보 단일화에도 열심이었지만, 후보 단일화를 무산시키는 데도 또한 열심이었다.
그는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를 선출하는 경선에서 무려 22차례나 한 전 총리와의 후보 단일화를 당원과 유권자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막상 후보로 선출되자 단일화 약속을 주저 없이 발로 차버렸다.
일례로 단일화를 압박하려고 비대위원장 권영세와 원내대표 권성동이 김문수가 머무는 대구로 내려온다는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그는 부리나케 대구 현지를 떠났다. 김문수에게 한 방 맞은 권영세와 권성동은 김문수의 자택이 위치한 서울 봉천동의 어느 아파트 단지로 황급히 찾아와 취재 현장의 기자들이 흔히 하는 뻗치기를 했지만, 김문수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김문수와의 심야 추격전에서 제대로 물을 먹은 당 지도부는 한국 현대정치사에 전무후무할 미증유의 토요일 새벽 3시에서 4시 사이에 오직 한덕수 한 사람만을 위해 32가지에 달하는 후보 등록 관련 서류들을 접수하는 초현실적 무리수를 두어가며 대선 후보 강제 교체를 시도했다가 당원들의 반발로 김문수 축출에 실패하고 말았다. 이로 말미암아 한덕수는 ‘9일짜리 최단기 대선 주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는 망신을 당하며 쓸쓸히 집으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아슬아슬하게 당의 대선 후보로 확정된 김문수는 단일화를 강요하며 심야의 당내 쿠데타를 자행한 인사들을 껴안았다. 김문수는 김용현을 제외하면 윤석열 정부의 각료들 중 12·3 비상계엄을 가장 공공연히 옹호했다. 그는 계엄에 대해 사과하라는 야당 국회의원의 요구를 국회에서 대놓고 묵살했다.
① 계엄 찬성과 탄핵 반대에 대한 진심 어린 대국민 사과
② 윤석열-김건희 부부와의 단호한 절연
③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의 잦은 말 바꾸기 사과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는 이 세 가지 요구 조건을 김문수 후보가 수용하길 촉구하며 자당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합류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한동훈의 요구 사항은 광범위한 중도층 유권자를 중심으로 다수 민심의 요구 사항이기도 하다. 이러한 요구를 김문수가 현재처럼 계속 뭉갠다면 국민의힘 선대위에 설령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참여한다고 한들 김문수가 6·3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그럼에도 김문수는 질 게 뻔한 길을 고집하고 있다. 새 비상대책위원장에 1990년생 초선 국회의원 김용태를 서둘러 지명한 조치는 윤석열이 대선 후보였던 때 연출한 알량한 개사과 못잖게 무성의해 보인다. 김용태 역시 정국의 중대한 고비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의 편을 들면서 당권파인 친윤세력에 영합해온 탓이다. 김용태가 소장파일 수는 있다. 그러나 이준석과 소원해진 이후의 행보를 총화하면 그는 당의 변화와 혁신을 지향하는 개혁파와는 객관적으로 거리가 멀다.
포성이 끊이지 않고, 폭탄이 작렬하던 과달카날의 전쟁터로 다시금 돌아가 보자. 본래 계획으로는 남쪽 방면인 호주로 진격했어야 마땅할 일본군이 과달카날에서의 악전고투 끝에 방향을 바꿔 본국이 있는 북쪽으로 전진했듯이, 현격하게 기울어진 대선 판세에 비로소 현실 파악이 된 김문수는 아직도 승리를 향하여 힘차게 매진하고 있을지 모른다. 대권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당권 투쟁에서의 승리를.
김문수는 대통령 선거전에 분명 늦게 뛰어들었다. 심지어 후보자 이름도 적히지 않은 선거복을 입고 출정식을 해야 할 지경이었다.
반면, 대선 후 치러질 전당대회에서의 신임 당대표 선거를 염두에 둔다면 김문수는 가히 부정 출발에 버금가게끔 일찌감치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당권이 진짜 목표일 경우에는 김 후보가 주장한 바대로 내란수괴 피고인 윤석열에 대한 출당 여부는 윤석열 본인의 뜻에 온전히 맡기는 게 영악하고 전략적인 판단일 테니까. 탄핵 반대도 모자라 급기야 ‘윤 어게인’마저 외쳐대는 수구 성향 당원들이 당내에 득시글한 상황에서는 중도 확장이 아니라 보수 개신교도의 표심을 겨냥한 ‘신도 확장’이 더 효과적 방책이리라.
백스텝은 나름 일관성 있는 행동이다. 한 곳을 고정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김문수에게 백스텝은 애당초 요구되지 않았다. 그는 필요할 적마다 바라보는 곳을 수시로 바꾸었다.
젊어서의 김문수는 민주화와 노동해방을 바라봤다. 중년의 김문수는 금배지와 지방권력을 바라봤다. 환갑 무렵의 김문수는 대형 교회의 막강한 자금력과 영향력을 바라봤다. 이제 김문수는 거대 보수 정당의 당권을 바라보는 성싶다. 바라보는 지점은 매번 달라져도 뛰어가는 속도만은 일관되게 최고속도인 김문수의 건각(健脚)을 빈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 기사와 뉴스버스 취재를 자발적 구독료로 후원합니다.
후원금 직접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신한은행 140-013-476780 [예금주: ㈜위더미디어 뉴스버스]
뉴스버스 기사 쉽게 보시려면 회원가입과 즐겨찾기를 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