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심판은 정치 재판 아닌 사실과 규범 판단

국힘은 패배자 아닌 철퇴 맞은 거짓말쟁이

일부 재판관 기각론자로 몬 음모론자들 사과해야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뒤로는 '국민께 죄송합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가 6일 국회에서 열린 4선 이상 중진 의원들과의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뒤로는 '국민께 죄송합니다'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사진=연합뉴스)


“헌법은 (...) 탄핵절차를 정치적 심판절차가 아닌 규범적 심판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윤석열 탄핵(2024헌나8) 결정문에 나오는 문장이다. 여기서의 “규범적 심판절차”는 “법적 책임을 묻는” 것이다(『주석 헌법재판소법』 참조).  

탄핵심판은 기본적으로 정치 재판이나 여론 재판일 수 없다. 법적 책임을 묻는 규범적 심판 절차에서 1차적인 판단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히 ‘사건’이다. 사실관계를 인정해야, 그것이 얼마나 규범에 부합하거나 어긋나는지를 판단하고 그에 걸맞는 처분을 내릴 수 있다. 형사재판과의 차이는 처벌 여부와 양형이 아닌 파면 여부만을 결정한다는 것 정도다.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헌법기관의 권능을 정지시키려 한 대통령은 파면당하는 것이 당연하다. 탄핵반대세력과 국민의힘은 이조차 수긍하지 않고 한국사회를 극심한 분열로 몰아넣었다. 분열 중에서도 가장 저질적인 ‘사실관계 앞에서의 분열’이다.

온갖 거짓말로 난리를 쳐온 국민의힘은 이제 “알았다. 내가 졌다” 하면서 태세 전환을 꾀한다. “안타깝지만 국민의힘은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수용한다.”(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 “마음은 아프지만, 헌재 결정은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을 넘어 통합과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권성동 원내대표) 복싱에서 판정패한 선수가 경기 뒤에 소감 발표하는 것 같은 꼴이다. 

국민의힘은 승부의 패배자가 아니라 철퇴를 맞은 거짓말쟁이다. 패배에 승복하든 말든 무의미하다. ‘사실 인정’ 없이 도대체 무엇을 수용하고 존중한다는 것인가. 탄핵심판을 통해 인정하게 된 것은 무엇인가? 국무회의 심의 없는 계엄 선포? 위헌과 불법 투성이의 포고령? 군경의 국회 활동 봉쇄? 대통령 정적에 대한 체포 작전? 선관위 침입? 전 대법관에 대한 위치 추적? 다수 시민들이 알고 직시한 것이자 헌법재판관들이 확인하고 판단한 것들이다. 국민의힘은 결과가 아닌 ‘내용’에 대한 인정 여부를 밝히고 책임져야 한다. 

헌재는 공방이 비교적 가장 치열했던 국회 활동 방해에 대해서도 판단을 내렸다.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의 진술도 일관된 것으로 인정했다. ‘시설 확보 및 경계’ 지시만 받은 군인, 국회의원 출입을 일시적으로 허용했던 경찰이 갑자기 국회 안으로 들어가고 재차 의원 출입을 차단한 것을 두고, 헌재는 피청구인의 지시를 따른 결정적 정황이라 판단했다. 곽종근 등을 모략해온 국민의힘의 입장은 무엇인가.  

국민의힘은 그간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범죄자 취급해왔다. 이재명 재판은 윤석열 재판과 다르다. 발언(허위사실공표, 위증교사)에 대한 판단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거니와, 배임이나 뇌물 혐의는 지나간 일을 방대한 자료로 판단해야 하는 것으로 판사도 현재로서는 가닥을 잡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러면서 정작 미디어로 실시간 중계된 윤석열 내란 사건은 대법원 판단이 나오기 전까지는 내란이 아니라고 우긴다. 유죄 확정 전까지 추하게 버티다 나중에 확정되면 “알았다. 그만하자”며 치울 것인가.  

국민의힘은 자신이 만든 대통령이 어떤 상태였는지나 직시해야 할 것이다. 헌재 결정문은 정부 예산에 관한 윤석열의 허위선동까지 짚었다. “피청구인이 야당이 일방적으로 감액하였다고 주장”하는 사업 예산 중 “상당 부분에 대하여 상임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감액하기로 하는 여야 간의 합의”가 있었고, “군 간부 처우개선을 위한 당직근무비 인상 예산 등은 당초 정부안에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윤석열은 여당과 정부 부처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자였다. 그를 배출한 국민의힘은 패가망신한 것이다. 

국민의힘이 선고 직전까지 펴온 ‘5 대 3’ 또는 ‘4 대 4’ 기각 타령은 헌법재판관이 당파적 성향을 갖고 있고 그에 따라 판단한다는 세계관에서 나온 것이다. 여기에 더불어민주당 일부 인사들이 합세했던 것도 그냥 넘길 수 없다. 특정 재판관들을 의심하고 압박하는 일도 있었다. 

재판관들이 윤석열을 굳이 대통령직에 복귀시켜야 할 아무 이유가 없다. 백일하에 드러난 사실을 부정하고 자기 인생과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것인데 말이다. 당신이 판사로서 증거와 양심에 따라 유죄 선고를 내리려는데 어떤 이들이 무죄를 주려는 것 같다”고 우긴다고 상상해보라. 생사람 잡는 일이다.  

민주당 역시 스스로 갖고 있던 진영주의를 재판관들에게 투영한 것은 아닌가. 일부 재판관들을 거명하며 “을사오적의 길을 가지 마시라”고 외친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과 헌재에 사과해야 한다. 정권교체의 의의를 찾으려면 정권만 교체하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곳곳에 도사린 국민의힘식 정치를 걷어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전원일치 윤석열 파면 결정은 ‘사법의 정치화‘를 배격한 결과이다. 진영의 승리도 아니고 다수의 승리도 아니다. 사실과 규범, 진리와 민주주의가 이겼다. 

김수민은 풀뿌리운동과 정당활동을 하다 현재는 지상파와 종편, 언론사 유튜브 방송 등에서 정치평론가로 활약 중이다. 팟캐스트 <김수민의 뉴스밑장> 진행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경북 구미시의회 시의원을 지냈다. 시의원 시절엔 친박 세력과 싸웠고, 조국 사태 국면에서는 문재인 정권 핵심 지지층의 표적이 되기도 했다. 저서로는 <다당제와 선거제도>(eBook) >가 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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