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인터스텔라’는 우주라는 시공간으로 탈출구를 열어놓고 한계에 달한 인류 과학 문명의 잔재와 황폐를 드러낸다. 전인미(55) 작가는 영화가 깊이 와 닿았다. 오래지 않아 인류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할 수도 있다는 자각이 왔다. 전 지구적 기후위기 대응이 늦었다는 학자들의 경고도 있지 않나.

달고양이 01, 02 40 x 20cm 2EA Acrylic on canvas, 2023
달고양이 01, 02 40 x 20cm 2EA Acrylic on canvas, 2023

영화가 닿고자 한 영역 너머를 회화적으로 풀어보고자 우주 탐사 계획을 살펴보았다. 한국 정보통신과학부도 나사(NASA·미 항공우주국) 등과 함께 2017년부터 아르테미스 계획(Artemis Program)에 참여하고 있고 62년 전 인간에 앞서 우주에 다녀온 고양이가 있었다.

1957년 소련은 개를, 1961년 미국은 원숭이를 우주 실험에 사용했다. 1963년 프랑스는 고양이를 보냈다. 프랑스 군 의무사령관은 부하들에게 버려진 고양이를 잡아오도록 지시했다.

프랑스 군은 14마리의 고양이들에게 강도 높은 우주비행 훈련을 했다. 중력을 견디기 위해 원심분리기에 들어가게 하거나, 뇌파 반응을 알기 위해 머리에 전극을 연결하는 식이었다. 최종적으로 검은색과 흰색이 섞인 고양이, 만화 캐릭터를 본떠 ‘펠리세트(Félicette)’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약 15분 동안의 우주비행을 마치고 살아 돌아온 고양이를 당국은 연구하며 혹사시키다 두 달 뒤 안락사한다.

펠리세트 이야기는 오랫동안 우주개발사에서 잊혀졌다. 2017년 영국에서 펠리세트를 기념하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2019년 펠리세트는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국제 우주 학교에 175cm 동상으로 세워졌다. 

전인미가 유기견, 유기묘에 관심 가지고 있을 때 머리에 전극 부착된 펠리세트 사진을 보게 되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받은 강한 자극을 회화적으로 풀어줄 주인공을 찾은 것이다. 그렇게 고양이는 불현듯 작가의 마음과 눈에 들어왔다. 전인미는 직전 10여년 동안 아트센터와 문화재단에서 공연 및 미술 전시 기획자 일을 하였다.

2020년 <꽃땅별하늘> 전시는 상업갤러리에서는 이례적으로 민중미술 계열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출신 작가들로 구성, 자본 중심의 강한 미술에 대항하여 ‘약한 미술’을 표방하였다.

2021년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트리뷰트전을 기획 및 진행하였다. 경기문화재단이 주관한 전시는 김민기(1951~2024) 삶과 그가 활동한 시대와 인물, 사건들을 담은 자료 중심 전시 외에 김민기 동세대 및 협업 작가들, 후배 작가들과 음악인들의 시각 작품들을 전시하였다.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전시 전경, 우측 벽면에 김민기 작품들(1961년)
 김민기 아침이슬 50년 전시 전경, 우측 벽면에 김민기 작품들(1961년)

기획자 전인미의 작가로의 변신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완성된 작품들을 벽에 걸고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하여 평가를 받아보면서 작업 방향을 새롭게 했다.

작품의 주인공 고양이는 커다란 눈 속에 우주를 가득 담는다. 우주를 다녀온 실제 고양이에서 모티브를 가져왔기에 화폭의 배경인 우주 공간과 행성인 달은 볼륨(volume)과 매스(mass)가 남다르다.

고양이의 시선은 인간이 처한 현실과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희망을 대변한다. 동물상(動物象)은 생동감, 생명력을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달고양이 03, 04 45.5 x 27.3cm 2EA Acrylic on canvas, 2024
 달고양이 03, 04 45.5 x 27.3cm 2EA Acrylic on canvas, 2024

작가는 고양이 몸체를 먼저 그리고 눈을 그렸으나 지금은 눈을 그린 후 몸체를 그린다. 작업을 하며 어떠한 처지의 인간의 눈보다도 더 슬프고 깊은 눈을 찾아내었다. 늦은 저녁 작업실 주변 산책 길에서 만난 활처럼 등이 휜 채 웅크린 고양이를 눈 여겨 보며 형태를 익혔다.

따지고 보면 전인미의 동물상 그리기는 1996년~1997년 러시아에서 무대예술을 전공한 데서 출발한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과 음악을 좋아했으나 막상 국내 대학에서 각종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실내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직접 손맛 나는 작업에 대한 욕구는 상대적으로 더욱 강렬해졌다.

무제02, 53 x 33.4cm Acrylic on canvas, 2024
무제02, 53 x 33.4cm Acrylic on canvas, 2024

러시아와 곧 이은 미국 유학을 다녀온 후 무대공연과 방송국에서 무대 분장, 특수 분장사로 활동하였다. 화장과 분장을 구별하며, (연극과 뮤지컬 등) 무대 분장과 카메라로 얼굴을 클로즈업하는 영상(방송) 분장으로 구분된다. 무대는 장면과 음악, 조명의 대비가 극명하기에 배우를 아그리파 석고상처럼 각을 잡아 입체적이면서 도식적 느낌이 나도록 분장한다. 관심이 많았던 특수 분장은 각본에서 제시하는 인물상, 캐릭터를 창출해내야 한다. 분장은 평면 스케치 작업이 선행된다. 같이 작업한 배우는 김혜자, 염정아, 고(故) 이선균 등이다. 대학 연극영화과와 학원에서 2000년부터 14년간 학생들에게 분장을 가르쳤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는 <차이와 반복·1968년>(2000년대 번역)에서 말한다. “반복들은 매개물 없이 정신에 작용하며 정신을 자연과 역사에 직접적으로 통합한다. 이들은 단어들이 존재하기 이전에 말하는 언어, 유기적 신체들보다 앞서 표현되는 몸짓들, 얼굴들보다 앞선 가면들, 등장 인물들보다 앞선 유령과 환영들- '공포의 힘'에 해당하는 반복의 모든 장치들-이다”<차이와 반복>

(음악 연주) 반복 과정에서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 ‘사건(événement)’이다. 고전과 달리 바로크 음악은 모든 연주가 각각 고유한 연주가 되는 것을 장려한다.

무제(꼴라주) Acrylic on canvas 2024
무제(꼴라주) Acrylic on canvas 2024

전인미에게 고양이 그림은 매번 다른 사건이 된다. 분장은 배우 얼굴에 화장품이라는 오브제를 붙이는 행위이다. ‘그리기’ 또한 캔버스에 물감을 붙인다. 분장이나 그리기는 본질이 같다. 가령 300명의 배우 분장 이력은 301번째 고양이 그림 그리기로 이어진다. 전인미 회화 작품은 새롭게 ‘감각될 수밖에 없는 것(ce qui peut être que senti)’을 표현한다.

목수 출신의 중국 묵화의 대가 치바이스(齊白石·제백석·1864~1957)는 영모(翎毛·가축이나 가금)를 잘 그렸다. 필자가 만나는 많은 작가에게 호랑이 그림을 그려보라면, 100명 중 2~3명만이 앉은 자리에서 비슷하게 그려낼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직업 작가라도 동물원 찾지 않거나 사진 보지 않고 고양이과 맹수인 호랑이 면상 그리기가 쉽지 않다. 인물상과 동물상은 주변 인물과 사물 같은 환경과의 '인터랙티브(상호관계·interactive)’를 통해 규정된다. 여하튼 세상의 모든 회화는 구상에서 출발한다.

전인미 작가 / 제공= 전인미
전인미 작가 / 제공= 전인미

전인미의 고양이는 역사와 신화가 되었으나 실재를 간직한 상징적 풍경과 장소를 배경으로 다양하게 등장할 것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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