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을 바꿀 수 없다면 야당이 바뀌어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등 당 최고위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경복궁 인근 천막당사 현판식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등 당 최고위원들이 지난 24일 서울 경복궁 인근 천막당사 현판식에서 손팻말을 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독일군이 우익을 강화했다면

“우익을 강화하라!”

독일 제국군의 참모총장을 역임한 알프레드 폰 슐리펜 백작이 임종을 맞이하기 직전, 몸에 있는 마지막 힘을 전부 쥐어짜 남겼다는 유언이라고 한다.

독일 제국은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으로 태어났다. 그런데 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은 그의 노련한 외교적 수완이 없었다면 밑 빠진 독에 불과했다. 유럽 정중앙에 위치한 독일은 사방이 적대국들인지라 한 방에 훅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스마르크 외교정책의 기본 목적은 양면 전쟁을 회피하는 일에 있었다. 독일이 두 개 이상의 강력한 적국과 동시에 싸우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이를테면 프러시아가 전통의 강국 오스트리아를 단 7주 만에 완파할 수 있었던 비결은 프랑스 제2제국의 나폴레옹 3세 황제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한 채 어리석게도 중립을 지켜준 데 있었다. 그로부터 만으로 4년 후 비스마르크의 군대는 당대 유럽 최강으로 통하던 프랑스군을 상대로 50만 명 가까운 포로를 획득하는 대승을 거뒀다. 독일이 프랑스를 묵사발을 내는 동안 바다 건너 영국과 동쪽의 대국 러시아가 불개입 원칙을 유지한 덕분이었다.

젊고 성미 급한 빌헬름 2세가 늙고 신중한 비스마르크를 재상직에서 전격적으로 해임하면서 숙적 프랑스의 고립에 기초해 잠재적 적국들을 교묘하게 갈라치기 해왔던 독일의 영악한 외교정책에도 결국에는 마침표가 찍히고 말았다. 다음 차례는 비스마르크가 살아생전 그토록 두려워한 사태인 양면 전쟁의 현실화였다.

정치가 실패한 곳에는 전쟁이 들어서기 마련이다. 슐리펜은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에 차례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역전의 노장이었다. 그는 서부 전선에서는 영불 연합군과, 동부 전선에서는 러시아 제국군과 동시에 전투에 돌입한 독일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는 방안을 쥐어짜느라 매일 골머리를 앓아야만 했다.

슐리펜이 고안·채택한 궁극의 필승 전략은 개전 초기에 동원 가능한 모든 전력을 서부 전선의 우측, 즉 벨기에 영토를 거쳐 파리로 진격하는 경로로 대거 쏟아부어 프랑스를 조기에 신속히 제압한 후에 군대의 주력을 곧바로 동쪽으로 이동시켜 러시아를 굴복시킨다는 작전이었다. 이른바 슐리펜 계획이다. 그는 이미 세상을 떠난 동료 장군들과 저승에서 머잖아 재회하게 될 그 순간까지도 슐리펜 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해줄 것을 후배들에게 재삼재사 간곡히 당부했다.

이후 전개된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처럼 막상 전쟁이 발발하자 독일군 지휘부는 우익을 강화하지 않았다. 독일 사회의 대표적 기득권층인 융커 계급의 농장과 목장과 삼림을 러시아군의 침탈로부터 보호하려 도리어 동부 전선을 강화했다. 독일이 서부 전선에 투입된 병력과 물자를 동편으로 빼낸 틈을 타 프랑스는 독일군의 파상공세에 밀려 후퇴만을 거듭해온 부대들을 재정비해 저 유명한 마른강의 기적을 창조해냈다. 마른강의 기적은 제1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반전시키는 결정적 전환점으로 기록되었다.

전쟁의 양상이 기동전에서 지루한 참호전 양상으로 바뀌며 연합국과 비교해 자원과 인구와 산업생산력에서 절대적으로 열세에 놓였던 동맹국들은 소모전에서 비롯되는 막대한 인적 피해와 물적 부담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1918년 가을에 잇따라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민주당이 우익을 강화한다면

만약 당신이 세상을 완전하게 바꾸지 못할 바엔 나 또한 결단코 바뀌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단단히 무장한 인간이라면 재야에서 활동하는 사회운동가가 돼야만 한다. 만약 당신이 세상을 조금이나마 바꿀 수만 있다면 나 자신을 기꺼이 바꾸겠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라면 제도권에 몸담은 현실정치인이 되어야 옳다. 정치가 타협의 기술이자 가능성의 예술로 자리 잡은 연유이다.

국민의힘은 세상이 터럭조차 바뀌면 안 된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이들이 만들고 모인 정당이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이 ‘보수반동 집단’이나 ‘수구 기득권 세력’이란 비판에 별다른 타격감을 느끼지 않는 이유다. 더불어민주당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목표를 가진 인사들이 만들고 모인 정당이다. 문제는 몸은 등 따시고 배부른 제도권 현실정치에 있으면서 마음만은 춥고 배고픈 재야를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더불어민주당 안에 지나치게 많다는 점이리라.

이들은 몸은 살쪘건만 마음은 가난하다. 존재는 살쪄도 의식은 가난한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방법은 단 두 가지이다. 하나는 마음도 살찌우는 길이다. 다른 하나는 몸을 다시 가난하게 하는 길이다. 일단 한번 살찌운 몸을 다시금 가난하게 만드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노릇이다. 더욱이 몸도 마음도 또다시 가난해지기를 원하는 인물들은 민주당에 거의 보이지 않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민주당이 중도보수 정당임을 공식 천명했다. 실제로 고소득 전문직종 출신 현역 국회의원들이 즐비한 작금의 구성원들의 면면을 살펴봤을 때 민주당은 중도보수 정당이 맞다. 민주당에 과거에 물질적으로 가난했던 정치인들은 많았어도, 현재도 금전적으로 빈곤한 정치인은 극히 드문 탓이다.

그렇다. 민주당이 세상을 철두철미하고 진선진미하게 변혁하겠다고 바쁘게 나선다면 그야말로 소가 웃을 일이다. 반대로, 민주당이 세상을 부분적이나마 변화시킬 수만 있다면 나 스스로도 변화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한다면 지금과 견주어 더 많은 국민들의 지지와 신뢰를 얻을 수가 있음은 물론이다.

이제 단도직입적으로 주문하겠다. 민주당은 우익을 강화해야 한다. 왜냐? 양면 전쟁을 어떻게든 막아야만 하니까.

이재명 대표는 2022년에 실시된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쓴맛을 봤다. 중요한 패인은 이재명이 힘겨운 양면 전쟁을 감당해야만 했던 고약하고 곤혹스러운 상황에 있었다. 민주당이 노인세대의 거부와 청년세대로부터의 반감에 동시에 맞닥뜨린 탓이었다.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을 이와 같은 양면 전쟁의 궁지로 몰아넣어 얽어매는 구도를 ‘세대포위론’으로 규정한 바 있다.

국민의힘의 브레이크 없는 극우화를 감안하건대 이재명은 조기 대선이 치러지면 그럭저럭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는 데 필수적 선행요건일 압도적 대선 승리가 아직은 완전히 담보되지 못한 까닭에서이다.

이재명이 대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려면 민주당의 기존 핵심 지지층인 4050 중장년 세대의 몰표만으로는 크게 부족하다. 2030 청년층 유권자 사이에서도 일방적 우위를 점유해야 한다. 그러한 일방적 우위를 점하려면 이재명은, 민주당은 우클릭을 해야만 한다. 한마디로, 우익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다. 민주당이 청년층의 존재와 의식을 바꿀 수 없다면, 민주당이 젊은이들의 이념과 성향에 맞게 바뀌어야 하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집토끼일 4050 중장년 세대는 이재명의 우클릭에 불만이 큰 표정들이다. 이쯤에서 솔직히 묻고 싶다. 4050 중장년 세대는 진실로 진보적인가? 진짜로 가난한가? 오늘날 한국의 중장년 세대의 대다수는 단지 이념이 진보적일 뿐이다. 생활은 보수적이다. 다만 마음이 가난할 따름이다. 몸은 풍만하게 살쪄 있다. 필자의 이러한 주장은 세대 간의 나날이 심각해지는 불평등을 경고하는 각종 사회경제적 통계와 지표들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다.

청년세대가 요구하는 민주당의 우클릭이 시대착오적 뉴라이트가 되라는 의미는 아니다. 광주민중항쟁을 폭동으로 폄하하고, 친일파를 미화하는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 일각의 파렴치한 행각에 청년세대는 중장년 세대 못잖게 분노하고 반발했던 터다.

더불어민주당은 우익을 강화함으로써 망국적인 세대 간 불평등 완화에 노력해야 한다. 생활은 보수이지만 마음은 진보인 자가당착적 위선의 굴레에서 탈피해야 한다. 기득권 86 세대의 영구 집권과 철밥통 X 세대의 이권 사수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청년세대의 인식과 고정관념을 과감한 우클릭으로 불식할 필요가 있다.

시끄럽기는 왼쪽이 시끄럽되, 정작 표는 오른쪽에 있는 게 내란수괴 피의자 윤석열의 탄핵 심판 선고를 앞둔 2025년 한국정치의 뉴노멀임을 이재명 대표를 위시한 더불어민주당 사람들이 너무 늦기 전에 깨달아주길 바란다.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 뉴스버스 외부 필자와 <오피니언> 기고글은 뉴스버스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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