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 '새벽, 빛을 품다',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서 30일까지

비가 내린 도심 도로에 버스 전조등이 반사되어 흐릿하다. 원거리에서 포착한 포구(浦口)에는 조명 불빛이 군집을 이룬다. 산 골짜기 아래 먼 마을과 도로에 불빛이 가득하다. 김성호(63) 작가의 대표적인 작품 이미지들이다.

가끔은 이미지 일정 부분의 톤과 다른 부분 톤의 극명한 강약 차이를 드러낸 사진의 콘트라스트(contrast) 촬영 기법을 보는 듯도 하다.

새벽-남산에서본 서울 oil on canvas 116.0x116.0cm 2024
새벽-남산에서본 서울 oil on canvas 116.0x116.0cm 2024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1892~1940)는 자신이 살았던 파리와 베를린을 판타즈마고리아(Phantasmagoria·주마등처럼 스쳐 지나는 장면)에 비유하였다. 휘황찬란하나 손에 잡히지 않는 근대 도시 문명에 대한 묘사였다.

김성호는 벤야민 시대로부터 근 60년이 지난 현대적 도시 서울의 한강, 남산, 을지로, 명동, 부산의 해운대·광안대교, 통영의 해경(海景), 국제적 관광지 제주도, 아시아의 진주 홍콩, 유럽의 도시들을 포착해 그려왔다. 그 중심에는 명멸하는 빛의 파편들에 대한 독창적인 해석이 있다. 어둠과 밝음의 경계인 미명, 가로등 같은 야간 조명, 대비가 강한 역광 등. 

따지고 보면 빛과 어둠의 대조적 효과를 드러낸 풍경화는 르네상스 시대를 지난 바로크 최고의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 van Rijn·1606~1669)에서 시작되지 않았나.  

문예비평가 또는 작가(painter)는 사실에 가까스로 부합하는 무언가 보다는 대상 또는 환경을 우리 인간과 관계 지어 본질을 드러내는 게 중요하다. 김성호의 회화적 방식은 ‘거리’와 ‘공간 읽기’이다.

새벽-부다페스트(헝가리) oil on canvas 90.0x200.0cm 2023
새벽-부다페스트(헝가리) oil on canvas 90.0x200.0cm 2023

2000년대 김성호의 도시 풍경은 검정, 파랑, 코발트블루, 노랑, 회색을 주조색으로 하며 마티에르를 강조하기 위해 붓과 나이프를 혼용하기 시작한다. 김성호는 도시에 어떻게 감응하는가?

무정형에서 정형, 정형에서 무정형으로 이행하는 기이함을 그린 영국 작가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1909~1992) 작품들은 대개 구조, 형상, 윤곽만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이컨은 주체가 바라본 대상을 그린 게 아니라 감각 그 자체를 재현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질 들뢰즈(Gilles Deleuze·1925~1995)는 베이컨 그림들에서 리듬과 감각의 관계를 통해 보이지 않는 힘(에너지)을 읽어내었다. 눈으로 만지는 공간이 윤곽과 빛에 의존해 온 이전 회화를 뛰어넘는다고 보았다.

김성호 회화에서 드러난 실재 같은 일루전 공간은 질 들뢰즈가 베이컨 작품에서 읽어낸 바로 그 리듬이다. 인간은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새벽-골목길 oil on canvas 91.0x116.8cm 2024
새벽-골목길 oil on canvas 91.0x116.8cm 2024


김성호 그림에서는 도시 문명적 요소, 사인(signage·기호)과 셸터(shelter·거주 공간), 컨텍스트(context·맥락)가 다 드러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이론가·교육자·건축가인 로버트 벤투리(Robert Venturi·1925~2018)와 데니스 스콧 브라운(Denise Scott Brown, 1931~) 부부가 ‘건축의 복합성’으로 귀결한 현대 도시 의 특징들이다. 스콧 브라운은 '컨텍스트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시공간의 사회, 문화적 패턴을 포함한 여러 형태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김성호가 묘사한 대상, 빛으로 존재하는 도시 공간은 컨텍스트를 가지며 연속되어 있다. 작가는 도시 시민 내부자 시선으로 생활과 작업을 같이 한다. 경기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레지던시(창작 스튜디오)에 장기 체류하고 제주시 서쪽 한경면 중산간 마을 저지리에서 5년여 , 경기 양평군 서종면 작업실에서 7년여를 살며 세상과 도시를 바라보아 왔다.

김성호는 1980년대 대구에서의 대학 시절 인물화를 주로 그렸듯이 작업 방향은 자신의 의지보다 주변 변수에 영향받을 수밖에 없었다. 걸출한 1세대 구상 작가 이인성(1912~1950), 이쾌대(1913~1965) 를 배출했던 대구 화단이 위상을 다시 찾은 것은 1990년대 장이규, 김일해, 이원희 작가가 등장하고 나서다. 김성호가 작가 진입기에 효자 노릇한 버스 작품도 1990년대 대구 체류 시절에 등장한다. 

대구 화단 선배들이 부침을 겪으면서도 잃지 않았던 한국 구상 회화의 대표성도 희미해진지 제법 되었다. 양화(洋畵)가 일본을 거쳐 이 땅에 상륙한 지 1세기가 넘어 독자적인 화풍을 확립한 증거로 김성호를 꼽아도 손색이 없다.

“일본이 명치유신 이후 서구화를 도모하던 시절의 서구 미술 주류가 인상파였던 탓으로 식민지 시절을 통하여 우리에게 오늘날까지 뿌리내렸다.”(박홍규)

김성호의 이러한 위상은 잠시도 이젤을 멀리 한 적 없는 직업 정신이 있어 가능하다. 전시가 임박하면 높아졌던 작업 생산성도 이런 저런 일로 수 주만 작업을 게을리해도 불과 2~3미터 거리 이젤에 다가앉는 게 힘겹다고 한다. 화업(畵嶪)은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김성호 작가 / 제공= 토포하우스
김성호 작가 / 제공= 토포하우스

작가는 사실적이기보다 좀 더 풀어 헤쳐진 풍경을 그릴 계획을 갖고 있다. 시대의 흐름을 읽으며 재료와 기법의 변화를 도모하되, 무엇보다 마음의 여유가 우선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김성호 개인전 <새벽, 빛을 품다>는 서울 인사동 토포하우스에서 3월 30일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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