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옹호' 폭망 보수 세력들의 '진실한 사람' 찾기
인생은 새옹지마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다”는 중국 전국시대의 옛이야기를 21세기 대한민국 땅에서 되살리고 싶었던 심산이었을까?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25년 3월 3일 월요일, 대구 달성군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사저를 방문한 국민의힘 지도부와의 만남에서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겨냥해 10년 묵은 뒤끝을 작렬시키는 것 같은 느낌의 매몰차고 강퍅한 메시지를 내놨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하 호칭 생략)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시절인 2015년 11월 10일의 국무회의 석상에서 ‘진실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입에 올렸다. 다음 해 치러질 총선에서 유권자인 국민들이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는 요구이고 주문이었다.
청와대와 친박그룹은 박근혜가 지목한 진실한 사람들이 국민만 바라보며 정쟁이 아닌 민생에 집중하는 이들을 가리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러한 해명은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이었다. 문제의 국무회의에서 언급된 진실한 사람들이 박근혜의 의중에 고분고분 순종하는 인사들임이 이듬해 봄의 공천 정국에서 벌어진 소위 '진박' 감별 소동을 통해 백일하에 드러난 탓이다.
진실한 사람들의 정반대에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 포진해 있었다. 박근혜의 시각에서 판단할 때 누가 진실하지 못한 사람들이었을까?
노인 기초연금에 관한 견해 차이로 청와대와 갈등을 빚다가 장관직을 사퇴한 보건복지부 장관 진영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증세 없는 복지는 허구”라며 박근혜 정부의 복지 정책과 조세 정책을 싸잡아 직격한 여당 원내대표 유승민이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최경환을 위시한 진박 감별사들의 전면적 압박 공세를 견디다 못해 집권당 당대표 직인을 들고서 지역구인 부산으로 돌연히 내려간 ‘옥새 들고 나르샤’ 파동의 주인공 김무성 또한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대통령 박근혜에게 “짐은 곧 당이다”였다. 공당을 사조직인 양 쥐락펴락한 박근혜에게 불법 공천 개입 혐의로 철퇴를 내린 당사자는 다름 아닌 박영수 특검의 특검팀장이자 지금은 내란 수괴 혐의로 의왕 구치소에 수감돼 있는 대통령 윤석열이었다.
박근혜와 비교해 그 강도와 범위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당무 관여와 공천 개입을 자행한 것으로 보이는 윤석열을 지키고 구하는 데 힘을 보태 달라며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민의힘 지도부가 박근혜를 무리 지어 찾아갔다. 그리고 한껏 머리를 조아렸으니 희극인지 비극인지, 막장극인지 부조리극인지그 장르가 실로 아리송하지 않을 수 없다. 박근혜의 양옆에 나란히 서서 활짝 미소 띤 얼굴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일행 가운데 한 명인 권성동은 박근혜를 탄핵한 제20대 국회의 법제사법위원장이자 탄핵소추위원장이었다.
헌재에서 탄핵 인용과 구속, 뒤이은 일련의 유죄 판결과 4년 9개월에 걸친 장기간의 수감 생활은 박근혜의 성향과 가치관을 전혀 바꿔놓지 못했다. 바뀐 게 있다면 박근혜를 각기 탄핵하고 구속한 권성동의 태도와 윤석열의 입장이 바뀌었을 따름이다. 한때 박근혜의 생사여탈권을 손에 쥐고서 의기양양했던 자들이 현재는 박근혜에게 비굴하게 매달려 정치생명의 연장을 꾀하거나 법망을 피하려 시도하는 중이다.
또 '진실한 사람' 찾기?
박근혜는 메시지로 흥했던 정치인이 메시지로 망하는 전형적 사례를 보여줬다. 그는 한나라당 대표로 활동하던 2006년 5월 20일, 지방선거 유세 도중에 괴한의 습격을 받아 자칫 생명을 잃을 뻔했다.
중상을 입고 병원에 긴급히 후송된 박근혜가 격전지로 꼽히던 대전의 선거운동 상황을 물으며 했다는 “대전은요?”의 짧고 간명한 한마디는 그의 의연함과 공인의식을 상징하는 열쇳말로 오랫동안 자리매김했다. 박근혜가 선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반면에 ‘진실한 사람’은 박근혜의 오만과 독선, 권위주의와 반민주성의 표상으로 일반 대중의 뇌리에 깊고 뚜렷이 각인됐다. 박근혜 정권의 총체적 몰락을 재촉하는 단초이기도 했다.
박근혜는 국민의힘 지도부와 회동하며 “집권당 대표가 소신이 지나쳐서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매우 의미심장하면서도 듣기에 따라서 대단히 무시무시할 수 있는 발언을 남겼다.
박근혜의 이날 발언이 왜 의미심장하면서도 무시무시했을까? 박근혜가 멀게는 김무성과 유승민, 가깝게는 나름 수평적 당정관계를 도모하려했던 이준석과 한동훈 같은 전·현직 여권 인사들을 이른바 배신자 프레임 안에 인정사정없이 모조리 한꺼번에 욱여넣었기 때문이다.
박근혜의 올해 3월 3일 주장을 알아듣기 쉽도록 해석하자면 현직 대통령의 권력과 지시와 통제에 무조건 군말 없이 맹종해온 인물이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로 선정돼야 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는, 시쳇말로 된장인지 배설물인지 가리지 않고 윤석열과 철저하게 코드를 맞춰온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에 대한 노골적 지지 의사의 표명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이다.
박근혜는 김문수를 드러내놓고 추켜올리는 한편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를 공공연히 저격하고 유승민 전 의원을 보란 듯이 비토했다.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에 관해서는 요란하게 부적격 판정을 내렸다.
탄핵당한 전직 대통령과 탄핵당하기 일보 직전의 현직 대통령의 협공 앞에서 이준석과 유승민과 한동훈이 버틸 재간은 없다. 윤심과 박심을 양 날개로 장착한 김문수는 경선에서 고공비행할 것이 예상된다.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 선출 과정에 결정적 입김과 영향력을 행사하기 바랐던 박근혜의 소원이 대구에서의 집권당 간부들 면담을 계기로 거의 10년 만에 완벽히 이뤄진 셈이라 하겠다.
의왕의 윤석열과 대구의 박근혜가 김문수에 대한 실질적 지지 선언을 차례로 함으로써 국민의힘의 대선 후보 경선은 이제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무의미한 요식행사가 돼버렸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니다. 김문수가 일찌감치 후보자로 확정된 듯한 분위기가 점점 더 짙어질 게 뻔한 연유에서이다.
선거전에서 지고 있는 진영은 천지개벽할 대담하고 파격적인 선택으로 마지막 승부수를 띄워야 불리한 판세의 반전이 가능하다. 그런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양자 대결을 상정한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열세에 처한 집권세력은 민심에 역행하는 짓들만 골라하고 있다. 그러다 이젠 비참하게 자멸한 현직 대통령과 절대로 대립각을 세우지 않은 진실한 사람을 조기 대선의 후보자로 무난히 선출하려 든다. 그리고 본선에서 무난히 패배할 전망이다.
여당에 한 가지 다행스러운 사실이 있다면 무난히 패배한 덕분에 아쉬운 간발의 패배나 통한의 역전패와 견주어 패전의 아픔은 그나마 작을 것이란 점이다. 내란 중요 임무 종사자로 의심받는 추경호 전 원내대표를 필두로 국민의힘 소속 대다수 현역 국회의원들이 윤석열의 불법적이고 시대착오적 친위 군사쿠데타에 좀비들처럼 가담·동조했을 순간 무난히 확정된 패배일 테니까.
공희준은 “산업의 쌀이 반도체라면, 모든 콘텐츠의 쌀은 글”이라고 믿으며 정치평론과 인물비평을 중심으로 PC통신 시절부터 SNS 시대인 지금까지 글쓰기에 전념해왔다. '강남좌파', 먹고사니즘' 같은 21세기 한국사회의 시대상이 담긴 촌철살인의 신조어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수만 평전> <지금은 강남시대> <보수의 종말> <퇴진하라> 등의 책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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