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서용선: 노근리+너머' 노근리평화기념관서 4월 27일까지
충북 영동군 노근리평화기념관 전시 <서용선: 노근리+너머>는 서용선(74) 작가 특유의 거친 붓 터치와 원색의 화면 구성으로 '리얼리티(Reality)'를 극대화하며 잊었던, 또 누군가는 잊고 싶어하는 기억의 편린을 드러낸다.
서용선은 전시를 하다 보면 관객들이 대체로 불편해한다는 것을 안다. 작품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 괴리가 발생한다. 작가의 생각과 구현 행위에도 간격이 있다. 서용선은, 전시는 관객에게 말할 수 없는 불편한 것도 맞닥뜨리게 하는 수단이라고 본다. 종국에는 /자신이 화면에 펼친 장면에 관객을 익숙하게 한다.
총의 탄환이 강선을 휘돌아 나와 물렁하고 얇은 살갗을 찢고 뼈를 내려앉게 하며 피의 순환을 막아 타깃이 된 희생자들은 고통스럽게 죽는다. 지난 19일, 작가 스스로 피해자가 되어 이미 생명이 끊어져가는 주검과 마지막 교신을 한듯한 작품들을 마주하였다. 대개의 작가들은 작업 초입에서 주저앉았을 법했다.
2004~2006년, 2011년 그린 <희생자> 연작은 자신을 몰입적으로 투사한 작품이다. 시간이 지나 사건 당시 주변과 상황을 유추한 풍경 작품들은 객관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서용선이 사건을 처음 접하고 수년간 받은 충격은 폭발하는 분노로 이어졌음을 알 수 있다.
서용선의 ‘역사 풍경화’는 선이 거칠고 인간은 마치 발가벗은 듯 의례히 굵은 선으로 붉게 칠해져 있다. 그는 궁극적으로 역사 속 인물과 집단, 동시대인들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을 드러낸다.
그의 그림 그리기는 현실 재단과 역사 리뷰의 보편적 기제인 언어(기록된 문자)에 한계가 있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사람의 선혈이 시간이 지나 굳은듯한 붉은색은 입체적으로 와 닿으며, 상징적 풍경과 장소로 적시된 단순·직선적 표현은 정확하고 사실적 묘사가 갖는 제한적 이미지와 결론을 넘어선다.
작가는 한국전쟁(서용선은 ‘6.25전쟁’이 더 실체에 부합한다고 한다) 기간에 태어나 무의식의 유아 시절을 보내고 전쟁은 휴전이라는 이름으로 끝났다. 전쟁 이야기는 전쟁이 끝난 뒤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그림 안에서 사람이나 풍경, 순수한 색들의 조합으로 내용과 느낌을 전달받는다. 작가가 다양한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그리고, 그 경험이 무엇이었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무엇을 그릴 것인가를 결정짓는 중요한 문제이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과 청년기의 경험은 사회 환경과 만나는 과정으로 오래 지속되기 마련이다. 전쟁이나 역사적인 사건은 그 중심에 있다. (…) 언어는 이미지를 불러 일으킨다. 이러한 단어들은 내 몸의 일부가 되어 훗날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환생하였다. 여러 번 반복해 들었던 익숙한 단어들은 역사적 지식으로 바뀌어 졌다.” (※ 2018년 5월 22일 캐나다 토론토 YYZ Gallery에서의 초청 Artist Talks 발표문 중 일부)
한국전쟁을 주제로 한 첫번째 전시는 2009년 접경 지역인 강원도 양구군, 박수근미술관에서 가진 <미래의 기억-서용선>전 이었다. 서로 총을 든 채 대치한 국군과 인민군, 무표정한 모습으로 피난길을 떠나는 사람들, 손으로 양 얼굴을 감싸 쥔 채 울음을 터뜨리는 소년 등의 모습들이었다. 당시 전시를 진행하였던 학예사 엄선미(53)는 노근리국제평화재단으로 옮겨와 학예연구부장으로 <서용선: 노근리+너머> 전시 실무를 책임지고 있다.
두번째 전시는 2013년 고려대학교박물관이 주관한 <한국전쟁 정전 60주년 특별전-기억·재현: 서용선과 6.25>였다.
세번째 전시는 2019년 경기도 파주 화이트블럭에서 가진 <통증·징후·증세: 서용선의 역사 그리기>이다. 개인, 인물, 사건, 풍경이 겹치고 얽혀 다층적인 역사 읽기를 만들어냈다는 평가이다. 이 전시를 관람한 정구도(70) 노근리국제평화재단 이사장(노근리평화기념관 관장 겸직)은 대작 <노근리, 2019년>에 주목하였다.
노근리 사건의 발화는 펜에서 시작되었다. 경영학도 정구도는 부친 정은용(1923~2014) 노근리 미군 양민 학살사건 대책위원회 위원장을 도와 1994년 기록 소설 <그대, 우리의 아픔을 아는가>를 발간하였다. 이후 <한국전쟁기 인권침해 및 역사인식의 문제>등 논문을 발표하여 증거를 보강하였다. 1999년 9월 30일 AP통신이 미군의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을 확인 보도하였다. 미국내 유력 매체 뉴욕타임즈와 워싱턴포스트는 상반된 보도 논조를 유지하였다. 이듬해 AP통신 취재팀은 퓰리처상(탐사보도 부문)을 수상했다. 서용선도 신문 보도를 통해 사건을 처음 접하였다. 한국전쟁 그림의 출발점이 노근리이다. 작품 <노근리, 1999년 10월 31일>, <노근리 사건, 2001년>은 터널 속에서 노란 빛점으로 묘사된 기총 소사 총탄에 죽어간 피난민들의 분노, 공포 어린 표정들을 드러냈다.
정구도는 세계적 이슈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기록 소설, 논문 등 ‘글의 힘’을 확신할 수 있었다고 한다.
노근리 사건은 1950년 7월, 미 제1기병사단 작전 지역 후방인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 쌍굴과 주변 지역에서 북한군과 미군 간에 전투가 없는 상황에서 미군에 의해 발생했다.
“이해가 가지 않는 사건이다. 사흘간 철로 밑 폭과 길이가 제한된 굴 속에 수백명의 사람을 가두어 놓고 자행한 학살은 인종 청소 같은 잔인함이 있었다. 누군가 이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보고를 했어도 지휘관은 사살 명령을 거둬들이지 않았다. 잘못된걸 알고 되려 겁에 질려 더 잔인하게 되지 않았을까?”
서용선은 말을 이어갔다. “한 순간이 아니고 며칠씩 학살이 계속되었다는 게 가장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나고 49년 만에 제대로 사실이 알려지고 세계적 반향을 불러일으켰음에도 공식적으로 사건을 인정하지 않는 국가 체제는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 의문이 들었다”
“가해 당사자인 미국은 정식 사과를 하지 않았고, 평화공원과 민간인 희생 위로금으로 한국전쟁중 일어난 다른 유사 사건 전체를 퉁치려고 한 행위는 1965년 한일협정시 일제 강점 36년 전체를 보상한다는 조건의 대일 청구권 같은 방식이었다.”
“국제 관계로 확대하더라도 이 사건을 적국인 북한이 최초로 공개했으며 사흘간의 기총 소사 이후 북한군이 굴 속에 들어오는 등 북한군이 좋은 사람들로 인식되게 만들었다.”
“자료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철로 밑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해 발굴이 미완성이며 주요 자료 전시도 공식 국가 기념관인 서울의 용산 전쟁 기념관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전쟁기념관은 기념의 대상으로 고대사로부터 한국전쟁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의 전쟁과 군사 관련 내용이다. 컬렉션은 비행기, 소형 군함에 이르기까지 현대전인 한국전쟁 중심이다.
“피해자들은 칼 한 자루 들고 있지 않았다. 평화 공원이 아니라 민간인 학살 공원이라고 지칭해야 한다. 평화를 논하기 전 사실을 밝히는 게 우선이다.”
서용선은 고유명사가 된 ‘한국 전쟁’ 명칭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 전쟁이 아니라 6.25전쟁이다. 한국 전쟁은 전세계에 미군이 개입한 숱한 전쟁 중의 하나로 보는 미국의 시각이 담겼다.”
“이 땅이 전장이었음에도 6.25전쟁 그림을 많이 보지 못했다. 전쟁 그림은 시각적인 증언과 기억의 기록이다. 상처를 덮어놓고 확실하게 얘기하지 못하는 듯 보인다. 전쟁이 있었던 사실 자체를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의 기록을 해 놓아야 한다. 어떤식으로든 목격한 사실의 기억이 있는데, 그 기억을 시각화한 무엇이 있어야 한다. 미술은 문학하고 다르다. 즉각적이고 강렬한 1차 기록이다. 자기 검열이 작동되어서는 안된다.”
“6.25전쟁은 수백만 명이 죽었고, 외국 군대만 150만명이 참전하였다. 이후 30년 이상 지속된 동서 냉전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동시대인이어도 이념적으로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오랜 한미동맹 관계도 현존하지만 어떤 것이 사실인지 알 수 있어야 한다.”
피카소(Pablo Ruiz Picasso·1881 ~ 1973)가 프랑스 남부 발로리스에서 그린 <한국에서의 학살·1951>은 황폐하고 시간을 알 수 없는 풍경 속 강제로 벌거벗겨진듯한 여성들과 아이들을 향해 중세 시대의 기사 또는 로봇의 형상을 한 군인들이 이들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다. 피카소와 달리 서용선의 전쟁을 포괄한 ‘역사 풍경화’는 동시대에 국한되지 않는다. 이 땅의 상고, 조선 시대까지 이른다.
“6.25전쟁은 직전의 2차 세계대전과 달리 과학적으로 발전한 무기체계, 비행기 폭격이 희생을 크게 했다. 과학과 무기 발달의 폐해를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현대미술의 조형적 요소 점검도 중요하지만 이 땅의 무엇이 예술하도록 추동하느냐 생각하면, 서구에 너무 치우쳐 있는 것 같다. 우리 삶과 연관된 미술사를 공부해야 한다.”
서용선은 노근리와 한국전쟁에 대해 20년 이상 지속적으로 작품으로 말하고 있음에도 현대사 전공 역사학자와 같은 언설(discourse)이 가능한 점에 놀랐다. 한국 전쟁 관련 스스로 모아들인 국내외 책에서 접한 방대한 지식과 이미지 자료 때문이다.
2024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은 2017년 7월 뉴욕타임즈에 <미국이 전쟁에 대해서 말할 때, 한국은 몸서리 친다(While the U.S. Talks of War, South Korea Shudders)-부제, 승리로 끝나는 전쟁 시나리오는 없다>를 기고하며 노근리 사건을 언급하였다.
노근리평화기념관은 노근리특별법에 의해 조성된 노근리평화공원의 인권과 평화활동을 위해 2011년 개관하였으며 노근리국제평화재단이 운영 관리한다.
지하 1층, 지상 2층의 기념관 외관은 건물 외피와 이격된 녹슬은 후판이 루버(louver) 역할을 하며 한낮의 강한 햇빛을 차단한다. 처음 방문객은 건물 입구를 찾기 힘들다. 건축가 이종호(1957~2014)가 굴에 갇혀 죽음만을 기다리던 주민들의 절망감을 표현한듯 해 가슴이 먹먹하였다. 박수근미술관 또한 그의 작품이다. 전시 <서용선: 노근리+너머>는 4월 27일까지이다.
심정택은 2009년 상업 갤러리(화랑) 경영을 시작한 뒤 지금까지 국내외 450여 군데의 작가 스튜디오를 탐방했다. 그 이전 13년여간 삼성자동차 등에 근무하였고 9년여간 홍보대행사를 경영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각 언론에 재계 및 산업 기사, 2019년 4월부터 작가 및 작품론 중심의 미술 칼럼 270여편, 2019년~ 2023년, 건축 칼럼(필명: 효효) 160여편을 기고했다. 뉴스버스에는 2021년 창간부터 주1회 미술작가 평론을 게재해왔다. <이건희전, 2016년> 등 3권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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